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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새로 보는 교회사] 새로운 형태의 여자 수도회

by 파스칼바이런 2010. 12. 29.

[새로 보는 교회사] 새로운 형태의 여자 수도회

구본식 안드레아 / 신부 / 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여자 수도회의 쇄신을 위한 규정을 만들었다.

그 동안 중세사회의 관습과 사회혼란으로 생성된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정이었다.

그 폐단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수녀원의 봉쇄생활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장상들이 너무 젊은 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었다.

 

15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고 교회 역시 일치해 가면서 쇄신의 길이 열리게 된다.

공의회는 기존의 수도회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 수녀들의 안전과 재산보호를 보장할 수 없는 시골보다는 도시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봉쇄구역을 철저히 지키는 한편, 마흔 살 이전이나 대서원을 한 지 팔 년이 되지 않은 수녀는 장상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어린 소녀가 수녀회에 입회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또한 주교나 그 대리인이 심사한 뒤에 첫서원을 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만들었다.

여성 수도생활은 기존 수도회의 쇄신에서 비롯되기도 하였으나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이 탄생하면서 크게 바뀐다.

 

 

환경의 변화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사회에서 교회가 할 일이 다양해지고 여성의 소임도 필요해졌다.

이제 여성은 더 이상 중세 때처럼 사회에서 격리되거나 노예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문예부흥시대를 거치면서 여성관이 많이 변했고 여성의 사회지위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경건한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여성 수도자들은 대부분 관상수도생활을 했지만 환자방문이나 병원 등에서 봉사하는 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도직에 대한 비중이 더욱 커지면서 교육과 선교 그리고 자선활동에 여성들이 더욱 큰 몫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여성들도 봉쇄구역이나 남편이라는 보호막 없이도 활동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성의 삶의 새로운 양식이 생겨난 것이다.

시대의 새로운 요구가 새로운 형태의 수도회가 탄생하는 바탕이 된 것이다.

 

 

우르술라(Ursula)회

 

새로운 여자 수도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르술라(Ursula)회를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우르술라회 창립자는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1470-1540년)이다.

성녀 자신은 어떤 단체나 수도회를 세울 생각을 전연 가지지 않았지만 성녀의 활동으로 새로운 수도단체가 생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메리치 성녀가 활동한 지역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로나 사이에 있는 브레시아(Brescia) 지방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벌인 전쟁의 여파가 심각하게 남아있던 곳이다.

사회기강은 무너졌고 성병인 매독이 젊은 여자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우르술라회는 바로 이때 소녀들을 이 병에서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메리치 성녀는 과부와 친구들과 함께 매독에 걸렸거나 다른 병에 걸린 여자들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드나들고 있었다.

메리치 성녀 일행은 환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가정도 방문할 필요성을 느꼈다.

가정을 방문하고는 더 어린 소녀들이 물질적으로나 윤리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사는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1532년경부터 메리치 성녀는 친구와 함께 매독이 나은 아가씨들과 어린 소녀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집을 마련하기가 무섭게 초만원을 이뤄 이 수용시설을 지탱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소녀들이 자기 집에 그대로 살면서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법으로, 동정녀 선생들이 이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순결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메리치 성녀가 하는 이 일을 함께하면서 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처녀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1535년에 '성녀 우르술라의 동정녀회'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1536년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인가하고 1544년에 교황 바오로 3세는 수녀회 설립을 인가하였다.

이 새로운 수녀회는 두 가지 방향으로 활동을 한다. 하나는 한 장소에서 봉사하는 일과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 동정생활을 하는 형태였다.

 

메리치 성녀의 이러한 생각은, 초대 공동체의 하느님께 바쳐진 삶의 형태라는 점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성녀가 봉쇄수도생활을 가볍게 여겨서라기보다는 바로 그 시대 그 장소가 요구하는 영적이며 사도적인 소임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의 다른 수도회 역시 그 당시의 사회적이며 교회의 요청에 따라 세워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르술라회 역시 시대상황이 요구하는 여성의 소임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형식의 수도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녀는 이런 사도적 삶을 살기 위해서 복음삼덕을 강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도록 강조했다.

먼저 순결을 강조하는데, 동정으로 산다는 것은 그 높으신 분의 각시가 됨을 뜻한다는 것이다.

성녀는 동정성을 바로 완덕과 동일시했다.

따라서 사랑이 부족하거나 질투, 태만, 하느님의 아들이신 신랑에 대한 충성의 부족 등 어떤 결함도 다 동정성을 거스리는 일로 여겼다.

이런 이유로 창립 초기부터 동정성은 입회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요건이 되었다.

따라서 입회하기 위해서는 동정성이 증명되어야만 하였다.

 

순명 역시 성스런 삶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다. 순명은 하느님의 뜻에 동조하는 것으로 영혼의 빛과 같은 덕이라고 하였다.

또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법과 그리고 수도회의 장상과 가정의 부모한테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심지어 일상사조차 하느님 뜻의 표현이므로 순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 새로운 형태의 수도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것이 바로 가난이다.

특히 정신적인 관점에서 강조되었다.

가난을 따르는 데는 가난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신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재산을 전적으로 포기하도록 형식으로 요구하지도 않았고 일을 하기 위해서 또 이웃을 돕기 위해서는 오히려 재산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스스로 일을 하며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가난의 정신의 본보기로 삼았다.

 

메리치 성녀의 영성과 삶의 특징은 사랑이다.

밤에는 신랑인 하느님과 일치하는 긴 시간의 기도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낮에는 소녀들을 교육하고 도와주는 이웃 사랑의 생활이었다.

이렇게 해서 기존의 수도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던 소녀들이 우르술라회로 몰려들었고 나아가 이들이 가정의 소녀들을 교육함으로써 가정환경이 타락한 많은 가정들을 개선할 수 있었다.

 

우르술라회는 이렇게 가정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보호하고 또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브레시아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명문가의 과부들을 각 지역의 책임자로 세웠다.

성녀는 위원회와 함께 각 지역의 활동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남자 교육자와 보호자와 여자 교육생과는 아주 엄격한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구역의 책임자들은 과부들이었지만 동정녀 선생들은 영적 지도를 담당했다.

처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규칙을 가르치는 일은 동정녀 선생들이 하였다.

또한 나이 지긋한 남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필요에 따른 논의를 함께하고 경제적인 일에 대해서는 상담을 했으며 가정에서 사는 젊은 동정녀들을 보호하는 일도 하였다.

 

처음에 이들은 다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가난과 순명과 영원한 동정을 지키며 살겠다고만 하였지 어떤 서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가정에 살고 있었지만 진정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실천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 동정으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동정녀 선생들은 보름마다 소녀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더욱이 축일 때는 꼭 방문을 함으로써 올바로 살아가도록 지도를 하였다.

 

우르술라회는 소녀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사도적 사업과 동정으로 봉헌된 삶을 사는 두 가지 형태를 가졌는데, 창립자가 죽고 난 후에 봉헌된 동정의 삶에 대해서는 큰 반대가 따랐고 심지어 이단으로 의심받기까지 하였다.

본당신부들의 불신이 있었고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반대였다.

이러한 주변의 편견에 대해서 옹호하는 책자를 내는 한편, 새 총장 로드로네(Lodrone) 수녀는 아무런 표시 없이 평상복으로 사는 회원에게 가죽띠라도 매게 하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러자 메리치 성녀의 이상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과 변화해야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바깥에서는 공격을 받고 안에서는 분열이 일었다.

1544년에 수도회 인가칙령이 났지만 혼란이 계속되자 새 총장 수녀가 반대자들을 몰아내고 가죽띠를 착용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수도원의 형태를 띠게 된다.

 

1566년, 밀라노에 부임한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우르술라회를 창설하고 ‘밀라노 우르술라회의 규칙’을 만들었다.

우르술라회가 세워지던 당시의 밀라노는 우르술라회가 창립될 당시의 브레시아와 상황이 비슷하였다.

성 가롤로는 동정녀들의 우르술라회와 과부들의 안나회 두 회를 창설하여 사회에서 사도적인 일을 하게 하였다.

1580년에 성 가롤로가 사목감사 일로 브레시아에 갔을 때, 어렸던 동정녀들이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럼으로써 장상의 일이 과부들한테서 이들 동정녀들한테로 넘어가면서 오늘날의 재속수도회와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된다.

 

15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여성들의 사도적 활동이 크게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독자적인 모임은 메리치 성녀가 활동한 초기의 활동정신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한 집에 모여 살기도 하였고 처음엔 모여 사는 사람이 적었지만 해가 거듭하면서 숫자가 불어났다.

결국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수도생활이, 복음삼덕을 따르고 회개와 기도의 삶을 살지만 장엄한 서원을 하지 않고 간단한 서원만 하고 여러 가지 사도직 활동을 위해서는 쉽게 봉쇄구역을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수도형태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우르술라회는 세 가지 형태의 수도생활을 확산시켰다.

즉 재속단체나 교구소속 단체로서 재속회 같은 것이 그 하나이고, 수도회로 분류되는 단체생활을 하며 간단한 서원을 하는 형태가 그 두 번째이며, 세 번째 형태로서 아주 전형적인 수도생활을 하는 장엄서원을 하는 수도형태였다.

 

[경향잡지, 1997년 1월호]

 


 

축일 1월27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