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어떤 구도자가 있었다. 그는 도를 얻기 위해 매일같이 일심으로 정진했지만 도무지 공부의 진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에 대한 흥미도 사라지고 잡생각에 사로잡히는 날이 늘어갔다.
그는 스승을 찾아가 자신의 좌절감을 털어놓았다. "많은 구도자들이 발심이 나서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불행하게도 공부에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도를 얻겠다는 희망을 버리고 산을 내려갈까 합니다."
그러자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당 근처의 작은 집을 가리켰다. "기왕 그리 마음먹었으니 며칠간이라도 푹 쉬다가 내려가게." 스승은 날마다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날라다 주면서 빙그레 웃기만 했다.
오랜 세월 수도를 하느라 지친 제자는 스승의 분에 넘치는 관대함에 의아해하며 며칠을 쉬었다. 이윽고 산을 내려가기로 한 마지막 날 저녁, 늘 나타나던 스승 대신 이번에는 한 아리따운 소녀가 음식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제자는 의아한 마음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곧 모습을 감췄다.
밤새 제자는 소녀 생각으로 몸을 뒤척였다. 아침이 와도 그는 산을 내려가지 못했다. 스승도, 소녀도 더는 제자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는 아리따운 소녀를 생각하며 몇 날 며칠 작은 집에 앉아 있었다. 소녀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딱딱하게 얼어 있던 가슴에 사랑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제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생각 속으로 몰입했다. 시간이 흘렀다. 제자는 여전히 소녀를 생각하며 그 집에 머물렀다.
봄이 되어 스승이 찾아왔다. 스승이 문을 열었을 때 제자는 벽을 향해 앉아 깊이 수도에 몰입하고 있었다. 제자의 얼굴엔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의 빛이 감미롭게 감돌았다. 스승은 조용히 문을 닫으며 미소를 지었다.
불은 쇠도 녹일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불길은 굳어 있는 가슴을 녹인다. 녹은 가슴속에 진리의 꽃이 피어난다.
『덕담』(한바다 지음 | 랜덤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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