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 김대건 사제

김대건 성인 축일 바로잡고 순교신심 '본받자'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21.
[특별기고]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 맞으면서

[특별기고]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 맞으면서

 

김대건 성인 축일 바로잡고 순교신심 '본받자'

최석우 몬시뇰(한국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사진설명)

최석우 몬시뇰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60주년을 맞아 2000년 교회 전통에 따라 김대건 신부 축일을 그의 순교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96년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거행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50주년 신앙대회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김대건 신부는 기해박해(1839)와 병오박해(1846) 순교자 중 79명과 함께 1925년 7월5일 로마에서 시복된 후 그 축일이 9월26일로 정해졌다. 시복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당시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는, 이듬 해 9월26일에 처음으로 맞은 복자 축일을 미사와 유해 친구, 복자 성화 전시회와 순교자 찬양 강연 등으로 매우 성대하게 경축했다.

 

1946년 9월16일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이었다. 이 뜻 깊은 해를 기념해 '한국 천주교 순교자현양회'라는 순교 신심 단체가 발족했고, 동시에 김대건 신부를 한국 성직자들의 주보로 해 그 축일을 7월5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그 제안이 누구의 발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7월5일 축일 안건만은 순교자현양회 위원장 윤형중 신부의 편지 발견으로 현양회측 제의였음이 확실해졌다. 왜냐하면 이 편지에서 윤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축일을 9월16일로 정하면 기존의 9월26일 복자 축일과 불과 10일 밖에 차이가 없기에, 다른 날 즉 시복일인 7월5일을 택하게 됐다며 신부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7월5일 축일은 1949년 11월5일 교황청 허락으로 확정됐다. 이는 79위 복자 축일과는 별도로 김대건 신부 고유 축일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처음 축일인 1950년 7월5일은 6ㆍ25 한국전쟁의 돌발로 완전히 그늘지고 말았다.

 

1968년 10월6일 로마에서 거행된 두 번째 시복식에서 병인박해(1866) 초기 순교자 중 24명이 새롭게 복자로 탄생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 복자 수는 103명으로 늘어났다. 이 103명 복자는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은 5월6일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식을 거행하고 그들을 성인으로 선포했다. 이렇게 교황은 200주년의 값진 선물로 한국 순교 성인 103명을 한국 천주교회의 품에 안겨줬다. 103위성인 축일은 기존 9월26일 복자 축일이 승격되지 못하고 9월20일로 새롭게 제정됐다. 그래서 이 축일과 9월16일 김대건 신부의 순교일과의 거리는 종전의 복자 축일 때의 10일 간격에서 4일로 좁혀졌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시성 후에도 그 복자 축일을 김대건 신부의 성인 축일로 지냄으로써 그야말로 넌센스가 돼 버렸다.

 

이렇게 한국 천주교회는 김대건 신부 축일을 9월16일 그의 순교일로 환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이나 지나쳐 버렸다. 그 원인은 첫째 순교자 축일 전통에 대한 인식 부족에 있었고, 둘째 축일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면 두 축일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한 소심증에 있었다. 이 우려는 전자보다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소심증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 거기에는 일리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는 새로운 103위 성인 축일로 거리가 더욱 좁혀진 데다 올해는 103위 성인 축일의 경축 날짜가 9월17일 주일로 앞당겨졌기 때문에 우려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두 축일을 어떻게 조화시켜 이틀 동안에 진행시키느냐가 당장 시급한 문제로 등장했다. 물론 일정한 시점으로의 집중은 두 축일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러한 예로 교회 초기에 관행화된 사도 축일의 통합을, 특히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축일을 하루에 결합시켜 지낸 것을 모범 사례로 지적하면서 접근에 따른 장애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사도들을 함께 한 날에 공경하는 것은 이미 초기 교회에서 관행으로 나타났다. 특히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같은 날에 순교했다는 증명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나 그들 사이에는 네로 황제(64~67년)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했고, 로마에 그들 무덤이 있으며 같은 사도이고 또 같이 으뜸 사도라는 점 등 유사점이 많다. 그래서 3세기부터 로마에서 6월29일에 같이 공경하기 시작했고, 8세기부터는 그 다음날인 6월 30일에 바오로를 기념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날이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 축일'로 축일이 바뀌었고, 네로 황제의 박해시기에 순교한 순교자들을 모두 여기에 포함시켜 공경하고 있다.

 

이것을 모범으로 해 올해 9월16일 토요일은 김대건 신부 축일로, 또 순교 160주년 경축일로 지내고 다음 날인 17일 주일은 103위 성인 축일로 지낼 것을 제안한다. 서울대교구에서는 올해 9월16일에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을 맞아 혜화동 신학교 운동장에서 '2006년 서울대교구 성체대회'를 거행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순교로써 증거한 김대건 성인의 거룩한 삶과 신앙을 본받고자 마련"된 이 성체대회는 사실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나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고 성찬례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성체성사의 의미를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를 순교로 증거한 김대건 신부를 본받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김대건 신부 경축 행사가 금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날을 기해 매년 9월16일을 김대건 신부의 축일로 지내도록 결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또 17일 103위 성인의 경축일에는 축일의 관례대로 103위 순교자들의 유해가 제일 많이 안치돼 있는 절두산 순교 성지 순례를 겸해 그곳의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서 교구장이 집전하는 장엄 미사로 103위 성인 축일을 경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전에는 김대건 신부 순교 영성을 중심으로 한 연구 발표회를 첨가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과 교구 성체대회가 연결되고, 성체대회를 구체적인 삶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9월16일의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이 성체대회로만 끝나거나 또 그것에 치중되거나 단순히 160주년이라는 '모양새'로만 언급된다면, 일찍부터 우려해 온 대로 김대건 신부 경축과 103위 성인 축일이 모두 퇴색할 위험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순교의 공통성, 특수성, 경축성, 상호 보완의 필요성 등에 대한 교육으로 두 축일은 떨어질 수 없는 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전 계몽을 절대로 등한시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김대건 신부는 비단 성직자만이 아니고 한국 교회 전체의 보호자이다. 여기에는 순교자들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즉 그들의 전구력에 대한 굳은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사실 김대건 신부는 성직자만의 귀감이 아니고 평신도들의 귀감이기도 하기에, 별도의 성직자 주보로서 축일은 필요 없고 김대건 신부 축일로 지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성인 축일은 '무리'로서의 축일이다. 그러므로 김대건 신부를 대표격으로 별도의 축일을 지낸다 하더라도 김대건 신부 단독의 찬미보다는 '무리' 전체의 찬미가 더욱 값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눈부신 순교자들의 무리가 당신 하느님을 찬미하나이다"(성 암브로시오 「사은찬미가」 중에서).

 

그렇기에 이것으로 남은 순교자 성월이 위축돼서도 안 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한국의 순교자들은 9월에 가장 많이 탄생했다. 103위 성인 중 9월에 순교한 분은 총 33명이며, 그중 26일에 순교한 분이 9명으로 가장 많다. 그래서 이 날이 처음에 복자 축일로 정해졌고, 이 축일 때문에 9월이 복자 성월로, 시성 후에는 순교자 성월로 이어지고 있다. 또 그 날은 조신철(가롤로), 김제준(이냐시오), 김효임(골룸바) 등 유명한 평신도들이 순교한 날이므로 그 날을 특별히 '평신도의 날'로 기념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날로 식어가는 순교 신심의 열기를 북돋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순교자 공경에는 감사와 전구와 본받음 등의 세 가지 요소가 포함돼 있다. 감사는 순교로 순교자들을 현양한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것이다. 보호는 보호를 청하는 전구, 그리고 순교자를 신앙의 증인으로 여겨 그 모범을 본받는 것이다. 이러한 본받음, 즉 모방은 순교 신심의 행동인 동시에 그것이 도달해야 할 절정이다. 그러므로 순교 신심은 현양이 아니고 보호를 구하는 전구와 신앙의 모범을 따르는 모방에 있다. 현양은 이미 하느님에 의해 순교자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하느님께 그 영광을 돌릴 뿐이다. 그러므로 순교자 공경은 본받고 실천하는 데에 있지 현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양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순교자 축일을 그의 순교일로 지내는 것은 200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확고부동의 전승이다. 그렇기에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을 맞은 이 해부터, 그의 '천상탄일'(天上誕日)인 순교일에 김대건 신부를 기념할 수 있게 되기를, 그분의 강력한 전구로 꼭 이뤄지기를 확신하고 싶다.

 

[출처 : 평화신문, 제860호(2006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