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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7월13일 성 에즈라(Ezra) 예언자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연도 / +4/5세기BC 같은이름 / 에스드라스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성문서에,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역사서에 속하는 구약성서 에즈라서의 후반부(7-10장)에 가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에 따라 제목이 붙여진 에즈라서는 느헤미야서와 함께 바빌론 귀양 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도움이라는 뜻을 지닌 성 에즈라(Esdras)는 바빌론으로 귀양 간 유다인들의 사제로서 페르시아 정부의 유다인 담당 기구 안에서 조언자의 직무를 맡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 아르닥사싸 9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다인의 공동체를 다시 이룩할 임명을 받았다. 약 1,500명의 유다인과 그 외의 많은 성전 봉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와서(7장 이하) 법을 선포하고 그것을 의무적으로 지킬 것을 명하며 타민족과의 혼인을 금하였다(9장 이하). 이는 많은 동포가 이민족들과 혼인하여 민족의 순수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페르시아로 돌아갔으리라고 본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에즈라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021-6024쪽.
[성서의 인물] 신앙부흥을 주도한 학자 에즈라
에즈라는 바빌론에서 출생한 스라야의 아들이다. 에즈라는 제사장 계통의 인물이면서 야훼의 율법에 정통한 선비로서 사람들에게 학자 에즈라로 불렸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와 포로생활을 하는 중에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빌론을 점령했다. 고레스왕은 칙령을 반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생활에서 벗어나게 했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는 세상을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주셨다.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하시길 빈다. 너희들은 이제 자유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돌아가라!”
그 후 페르시아를 아르닥사싸 황제가 통치할 때다. 황제는 선비 에즈라 사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칙령을 보냈다. “나 아르닥사싸 황제 짐이 지시하는 바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사제 에즈라와 함께 가도 좋다. 그리고 일곱 고문관과 금과 은을 성금으로 바친다. 예루살렘에 바칠 모든 성금을 가지고 소와 양 곡식과 제주를 사서 예루살렘 그대들의 신전에 바쳐라. 남은 돈은 그대들의 뜻대로 쓰도록 하라. 혹시 모자라면 더 줄 테니 내게 이야기하라.”
드디어 에즈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연설하였다. “우리 가족을 거느리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금식 기도합시다. 돌아가는 길을 보호해 달라고 페르시아 황제에게 부탁하고 싶지만 부끄러워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을 분은 바로 하느님 한분뿐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에즈라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로써 간구하였다. 야훼 하느님 앞에서 3일 동안 금식 기도한 에즈라는 드디어 하느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4만여 명의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대장정을 떠났다.
에즈라는 본래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금·은 보화와 황제가 선물한 보물 백성이 모은 성금 등을 가지고 먼 길을 떠나야 했기에 위험이 많았다. 실제로 많은 도적과 적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넉 달 가량의 긴 여정을 끝내고 오월 초하루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자 여러분 긴 여행길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사히 도착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가지고 온 귀중품은 수량을 점검하여 장부에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씻어버리기 위해 하느님께 번제를 드립시다.”
에즈라는 예루살렘을 돌아보고 모든 것을 개혁하기로 결심했다. 칠월 초하루 에즈라는 법전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에즈라가 높이 책을 펴들자 온 백성이 모두 일어섰다. 에즈라가 율법을 낭독하자 백성들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에즈라는 백성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법전을 설명해 주었다. 백성들은 에즈라의 법전 낭독과 해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에즈라의 율법 낭독은 단순히 낭독한 것이 아니라 유다교의 체계를 확립하는 사건이었다. 율법을 읽고 공부하다 보니 칠월 절기에는 초막에서 지내도록 명령한 야훼의 말씀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즉시 하느님의 율법을 공포하고 초막절을 지켰다. 율법 낭독이 있고 난 후 백성의 지도자들이 찾아와 보고를 하였다.
“나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제나 레위인마저도 이 지방에 사는 이방인들과 통혼하여 거룩한 피가 보존되지 못하고 이방인의 피와 섞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나 관리라는 사람들이 앞장서고 있으니 말이 됩니까?” 에즈라는 이 말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혀 옷을 찢고 수염을 뜯으면서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두 팔을 들고 기도했다. “나의 하느님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악은 키를 넘었고 우리의 허물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벌하여 주십시오.” 울며불며 에즈라가 기도하는 바람에 온 백성들도 따라 울면서 통회의 기도를 올렸다. 드디어 백성들은 이방인 여자들을 내 보내기로 결심했다.
에즈라의 신앙부흥은 율법의 강독과 해설에 따라 삶을 그대로 실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 중에 으뜸은 무엇보다 지적 능력이다. 에즈라는 신앙과 지혜를 겸비한 훌륭한 학자였다. 풍부한 학식과 지혜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고대하는 지도자상일 것이다.
-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평화신문 -
[성서의 세계] 에즈라 ·느헤미야서 -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송재준 (마르코),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역대기와 더불어 역대기계 역사서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과거 역사를 예루살렘 성전 제의와 율법을 중심으로 재해석하여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했던 역대기계 역사가의 신학적 의도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기원전 538년 페르샤 임금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유다인들이 유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던 때부터 성전 재건(기원전 520-515년)과 에즈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 단행되었던 시기까지 약 100년에 이르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 명칭
본래 히브리어 성서에는 한 권의 책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후에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현재의 형태처럼 두 권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이때 각 권의 중심 인물로서 유배 이후 공동체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이름이 책의 명칭으로 고정되게 되었다.
2. 에즈라와 느헤미야
에즈라는 사제이며 하느님의 계명과 이스라엘에 내린 규정에 통달한 율법학자(에즈 7,11)였다. 페르샤 임금 아르닥사싸 제7년(기원전 4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에즈 7,7) 그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근본적 규범인 ‘율법’을 토대로 유다 공동체의 생활을 쇄신하고자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반면 느헤미야는 평신도로서 정열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종교적 신념에 투철하였던 기도와 믿음의 사람이었다. 본래 페르샤 왕궁에서 아르닥사싸 임금의 술을 관리하던 대신이었으나 기원전 445년 경(느헤 2,1)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성벽을 재건하였으며, 유다 공동체의 종교적, 사회적 삶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던 인물이다.
한편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했던 시기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인물을 동일한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최종 편집했던 역사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즉 유배라는 민족적 시련을 겪으면서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렸던 유다 공동체를 복구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역사가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단행되었던 종교적 개혁 운동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3. 전체 구조
에즈 1 - 2장 유다 공동체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에즈 3 - 6장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에즈 7 - 8장 에즈라의 예루살렘 도착 에즈 9 - 10 에즈라의 종교개혁 느헤 1 - 2,10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 느헤 2.11 - 7.72ㄱ 예루살렘 성벽 공사 느헤 7,72ㄴ - 13장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적 쇄신
4. 주요 내용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담겨 있는 유배 이후의 역사서술을 통해 역대기계 역사가는 유배지에서 돌아온 유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역대기에 이어 여기서도 성전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 그리고 율법을 바탕으로 한 유다 공동체의 쇄신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 성전의 재건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공동체의 첫 번째 과제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느님 현존의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표지이며,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참다운 예배가 올려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전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에 있어 모든 삶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즈라서의 서두는 유다 공동체의 귀환을 허락하는 페르샤 임금 고레스의 칙령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제 그들(하느님의 백성에 속한 이들)은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도록 하라.”(에즈 1,3). 즉 공동체 귀환의 목적이 성전의 재건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공동체는 서둘러 성전 공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제시되고 있다.(에즈 3,8).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곧 적대자들의 방해를 받게 되고, 공사는 페르샤 임금 다리우스 제이년(기원전 520년)에 이르기까지 지연되고 만다. 그러나 다시금 성전 공사의 재개를 촉구하며 나선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하깨 예언자와 즈가리야 예언자였다.(에즈 5,1). 또한 바빌론에 보관 중이었던 고레스의 칙령이 발견되어 다리우스 임금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을 공적으로 명하게 된다. 이리하여 기원전 515년 마침내 완공된 성전은 기쁨에 찬 공동체에 의해 하느님께 봉헌되었으며, 이어 과월절 축제가 거행된다.(에즈 6장).
2) 예루살렘 성벽의 복구
이러한 성전의 재건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자 선택하셨던(신명 12장)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의 복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느헤미야서는 하느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읍을 복구하는 사명을 부여하셨다고 밝히고 있다.(느헤 2장). 이것은 직면하게 되는 여러 난관과 분쟁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확신으로 극복하고 완수해 나가야 하는 종교적 사명의 성격을 띄고 있다 하겠다. 이로써 바빌론 제국에 의해 남왕국 유다가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이 파괴됨으로써(기원전 587년) 단절되었던 하느님 백성의 역사가 회복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의 결과로 훼손되었던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역사가 다시금 속개되는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3) 율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쇄신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성벽 복구에 이어 역대기계 역사가는 유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가르침인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 신앙적으로 쇄신되어야 하며, 이것은 바로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유다 공동체의 상황
유배 이후 유다 공동체는 총체적 혼란의 상태였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근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신앙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고, 열정은 식어갔던 것이다. 그 결과 구체적인 생활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삶의 규범으로 주신 계명과 규정들은 소홀히 여겨졌으며, 나아가 이방 종교를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는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다.
공동체의 참회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희망
에즈라의 선포를 통해 하느님의 율법을 듣게 된 온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는데, 특히 하느님을 거슬렸던 선조들의 역사를 회고하는 참회기도(느헤 9장)는 당시 공동체의 삶을 반영하는 참회의 고백이라 하겠다. 또한 공동체가 자신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바른 법규와 진실한 율법, 좋은 규정과 계명을 삶의 길잡이로 주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참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공동체가 참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르침인 ‘율법’을 온전히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이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로써,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공동체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 진정한 내적 쇄신과 이에 맞갖은 외적 생활의 변화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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