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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7월21일 성 다니엘 예언자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29.

축일  7월21일 성 다니엘 예언자

San Daniele Profeta

 

 

 

  

구약의 다니엘서에 나오는 인물로서 모함에 처한 수산나를 하느님의 지혜와 신앙으로 구해주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불속에 던져지나 여기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구해지고, 사자굴에서도 아무런 생명에 지장없이 지낸 인물로 등장한다.

유일하신 하느님을 증거하고 당대의 묵시문학을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예언자이다.

 


 

 

 

다니엘서는 구약성서에 속한 예언서이다.

히브리어 경전은 다니엘서를 성문서(聖文書)에 포함시켜 에스델서와 에즈라서 사이에 배치시키고 있으나, 70인역(Septuaginta)이나 그 밖의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를 예언서로 취급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열하고 있다.

 

다니엘은 '감사'를 나타내는 뜻으로 아이들이 출생할 때 많이 붙여진 이름이다.

다니엘서의 기록에 의하면, 다니엘은 유대 왕 여호야킴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 함께 갔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우스 왕과 고레스 왕의 치하에서 궁중의 조언자로, 포로로 끌려 온 자기 민족을 위한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구약성서에 담고 있는 다니엘에 관한 보도들은 일관되지 못하며, 역사성도 결여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니엘은 결코 포로 시대의 역사적 인물로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서 비로소 형성된 상징적 인물이다.

이 상징적 인물의 기원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렇듯 다니엘서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하시딤(Hasidim, '경건한 자들'이란 뜻)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본다.

하시딤 사람들로 구성된 유태교 일파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대략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 이전이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으며, 이방민족들의 영향력을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당초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을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반란이 종교성을 상실한 순수 정치적 실력행사로 판단되는 순간 이들은 거기에서 이탈하여 그들 고유의 행동노선을 밟아 간다.

이들의 직접적인 후예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다니엘서 저자는 그리스화 움직임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율법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 셀류쿠스 왕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동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박해에 직면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고취시키고 있다.

다니엘서 9,4-19절과 3,26-45절이 하시딤 사람들의 정신을 잘 반영해 주는 기도문들이며, 본 기도문들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선성만을 호소하고 있다.

사후(死後)의 상선벌악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교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명해 내고 있는 것 역시 저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다니엘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1485-1489쪽.

 


 

 

다니엘은 유다교 신앙을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상황, 곧 이방인 궁정 안에서도 어떻게 유다교 신자로서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방인 임금의 궁정에서 시종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방식 이름을 갖게 마련이다.

히브리말로 ‘하느님은 나의 판관이시다.’라는 뜻의 다니엘은 벨트사살,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의 아자리야는 아벳-느고라 불렸는데, 벨과 느고는 바빌론 신들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이 이름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이름이 뜻하는 바가 뭐 그리 문제인가?

 

그러나 유다교의 음식 규정을 따르는 문제는 어떤가?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내시장에게 채소와 물만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다니 1장).

이로써 다니엘서 저자는 유다인들이 이교도들 밑에서 살게 될 때, 이교도 주인이 내주는 음식을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에 답변한다.

그런 경우 유다인들은 다니엘처럼 채식 요리를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은 좀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그 청을 들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다 종교 자체에 반대되는 명령 앞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유다교의 일상 기도(다니 6장)와 정해진 규정대로의 예배를 막는다면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교도 통치자들이 유다인들에게 우상을, 특히 신격화된 임금(안티오쿠스는 자신을 ‘에피파네스’ 곧 ‘신의 현현<顯現>’이라고 하였다.)을 섬기라고 강요하면 온 힘을 다해 저항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불가마 속에서도 함께 계실 것이다(다니 3장). 그러나 주님의 도움이 없으면 어찌 될 것인가?

주님의 도움이 없더라도 그들은 우상을 섬겨서는 안된다(다니 3,18).

기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느님의 구원이 있든 없든 율법의 처음 두 계명을 결코 어길 수 없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박해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유다교의 믿음과 전통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모든 시대의 인류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 다른 묵시문학 저자들처럼 다니엘서 저자도 하느님 위업의 우주적 규모를 강조한다.

지혜와 힘은 하느님에게 속한다(다니 2,20). 따라서 세상은 임금이나 장군 또는 금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혜와 권능으로 다스려진다.

둘째, 다니엘서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결정을 요구한다.

세상은 그 주인이신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장소이다.

셋째, 결정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잠시 후에는 하느님에게 결정권이 돌아가고, 그때 가서 사람들이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결정은 순간적이지만 영원한 운명이 거기에 달린 만큼 돌이킬 수 없다.

구약성서에서 죽음 이후의 생에 대한 생각은 다니엘서에 와서야 본격화된다(다니 12,2).

이처럼 중요한 메시지들이 담겨있는데도 다니엘서를 비롯하여 묵시문학은 처음에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점차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신 · 구약성서 정경에 묵시문학이 차지하는 분량과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예수님 자신의 언어에는 묵시문학적 표현과 개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이런 묵시문학적 표현과 개념들은 후대의 신학 용어인 ‘종말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느님에 관한 지식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앞선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유다교의 묵시문학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왕국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알려준다.

우주의 창조주이시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고 사랑하려면 먼저 그분이 누구신지 또 그분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알아야 한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급변하는 박해와 격동의 한복판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느님의 왕권을 찬미하였다.

“그분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고 그분의 나라는 대대로 이어지리라”(4,31).

 

정태현 갈리스도/ 익산 성 글라라 수도원 거주 신부

 


 

 

 

 

 


 

축일  7월21일 성 다니엘 예언자 (화보)

불가마 속에 있는 세 명의 히브리 청년들

다니엘서 입문

[성서의 세계 - 구약] 다니엘 : 이방인들을 위한 예언자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하느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