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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2.

축일 7월 25일 성 야고보(James) 사도

Apostle St James the Greater

St. Jacobus

San Giacomo il Maggiore Apostolo

44년경. 갈릴래아. 첫 순교 사도.스페인의 수호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 활동연도: +44년?

같은이름: 대야고보,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장야고보, 제임스

  

 

 티에폴로 / 무어족을 공격하는 성 대 야고보

 

성 야고보(44년) 사도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신약 성서의 저자인 요한이 그의 동생이다.

이들 형제는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4,21-22)

예수께서는 이미 비슷한 직업의 다른 형제들인 베드로와 안드레아도 부르셨다.

그들이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을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낫게 하신 현장을 목격하였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야이로의 딸 소생과 겟세마니의 고통을 증언할 특권을 누리며 총애받던 세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복음서에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야고보와 그의 동생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마태오는 야고보의 어머니가(마르코는 형제들이 예수께 직접 물었다고 한다.)

그들이 왕국에서 어떤 영광의 자리(한 사람은 예수 오른편에, 한 사람은 예수 왼편에)를 차지할 것인지를 물으러 왔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가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구나!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죽음의 잔을 마시고 고통의 세례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특권은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를 일깨워 주셨다.

 

다른 사도들이 그와 같은 요한과 야고보의 야심에 분개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겸손의 교훈들을 가르치셨다.

권력의 목적은 봉사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예수님 자신의 입장이다. 그는 모든 이의 종이었으며, 그에게 부과된 봉사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절대적인 희생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그들에게 붙여 준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마리아 인들은 자기들이 미워하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를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알고는"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을 질책하셨다.

 

야고보는 최초로 순교한 사도임에 틀림없다.

그 당시 헤로데 아그리바 1세는 신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헤로데는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예루살렘에서 참수했고, 이것이 일부 유대인들을 기쁘게 했음을 알고 베드로까지 감금시켰다.

야고보를 야고보 서간의 저자나 혹은 예루살렘의 지도자인 야고보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성인의 유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지금 이곳은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사도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시다.

 

복음서가 사도들에 관해서 언급한 것을 보면 그들의 거룩함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들이 천상의 보상을 받을만한 자격에 합당한 미덕을 가졌는지 아닌지에 관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크게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것, 예수 탄생을 인간적으로 증거하도록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권능에 관한 것, 기쁜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들이다.

예수께서는 도량이 좁고, 소심하고, 변덕스러운 그들의 인간적 생활을 정화시키는 일에 관해 더 많이 언급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주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대로 당신이 완수하시어 친히 선포하신 그 복음을 구원의 모든 진리와 규범의 원천이라고 모든 이에게 설교하며 천상 은혜를 전해 주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이 명령은 충실히 이행되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대화와 업적에서 받은 것과 그리고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배운 바를 설교와 모범과 교훈으로 전했다." (계시헌장 7항)

 

천국에 있는 성 야고보에게 그가 후대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 준다면 아마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캘커타의 데레사 수녀에게 와서 물었다.

"불쌍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고 일할 사람은 당신 혼자인데 어떻게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계속 일할 수 있습니까?"

데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 소명은 성공하라는 것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성공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각자 맡은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3개월 전 일이다.  주님께서 다시금 수난 기일이 가까워 옴을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한 세 번째의 훈계였다.

그러나 세속적 정신의 탈을 벗지 못한 그들은 주님의 이 말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께서 로마를 상대로 유다 민족의 해방을 위한 정의군을 일으킬 때가 왔다.

그 성전에서 주님께서는 불행한 전사를 하시지만 곧 부활에 대승리를 획득, 그리고 전세계를 통치해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고 영원히 이를 통치하신다.

그때는 자기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대단한 권리를 누리게 된다"며 오해를 했다.

그들은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수난의 말씀이 끝나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그 두 아들을 주님께 데리고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했던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천하를 통치하실 때에 그 보필로서 좌우 대선을 형제들이 차지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으나, 자신들의 입으로 하기에는 곤란하니 그 어머니에게 의뢰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오해를 한탄하셨다.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  잔을 마신다는 것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두 분은 주님께서 모병(募兵)을 하실 때에 겪으실 전투의 고통인 줄 알고 "마실 수 있습니다."하고 용감히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비애에 젖은 눈으로 그들을 잠깐 바라보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을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마태 20, 20-28 참조) 하셨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이미 3년 전의 일이다.

그 아버지는 갈릴레아 어부 제베데오이고, 그 어머니는 방금 말한 살로메로서 성모와 인척간이요, 신심이 매우 두터운 부인이었다.

이 두 분이 두 젊은 아들을 주님의 제자로 바친 것은 나자렛의 예수를 자기네가 갈망하던 구세주로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야고보 형제를 그 순직한 품성 때문에 매우 사랑하셨고, 성 베드로와 더불어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신임하시고 사랑하셨다.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킬 때나, 타볼 산에서 변모하실 때나, 또는 게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실 때나, 항상 이 세 사도는 자기에게 가까이 있도록 하신 것으로 보아 뚜렷하다.

 

그러나 그와 같이 주님의 애호를 받았다고 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자는 아니었다.

예컨대 주님께서 사마리아 어떤 마을에서 일숙(一宿)을 청했다가 거절당했을 때의 일이다.

본래 성질이 급한 야고보 형제는 심히 분개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카 9, 54)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을 엄히 책망하시며 "당신들이 어떤 정신인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인자는 사람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오직 구하러 왔습니다."하셨다.

또 예수께서 수난 당하시던 날 사도와 더불어 어디론지 사라져 숨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을 보더라도 야고보는 얼마나 용덕이 결핍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신 것이 야고보에게도 현실로서 나타났다.

즉 이 잔은 그들이 생각하던 지상 대왕국 건설, 그것이 아니고, 오직 영적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신앙 선포에 있어서의 고통의 잔이었다.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은 성령으로 다시 용덕을 받고 적극적 포교활동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사도들을 일차로 투옥했으며 천사로 말미암아 구출된 것을 다시 체포해 무수한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난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는 티끌만한 시련이었다.

예수 승천 후 6,7년이 지나서 헤로데는 마치 빌라도가 주님께 하듯이 그 부정한 요구를 들어서 마침내 야고보를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44년 파스카 축일 전날 야고보 사도는 참수로써 장렬한 순교를 했다.

성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제일 먼저 순교하였던 것이다.

그날은 역시 성 금요일로서 주님께서 마신 쓴잔을 나누어 마신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보수로서 그가 청했던 세상 왕국의 대신 자리보다 오히려 더 큰 자리이며, 영원한 천국에서 불멸의 영광을 누리는 성자(聖者)의 좌를 차지한 것이다.

성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그 후 스페인의 콤보스텔라에 이장되었고, 알폰소 왕은 그 묘지위에 웅대한 성당을 건축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례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그는 또한 영국 근처에서는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의 수많은 교회가 그를 기념하여 봉헌되었다.

뿐만 아니라 성 야고보는 과테말라와 니카라과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그 외 야고보라는 이름의 사도가 도 한 분 있다.

그는 바로 예수의 사촌이며 5월 3일에 그의 축일을 지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마태오 복음서에 대한 강론

(Hom. 65, 2-4: PG 58,619-622)

 

그리스도 수난의 동반자들

 

제베대오의 아들들은 "주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 졸라댑니다.

이 말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그분은 제자들이 청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고 또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감히 청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깨닫도록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즉 그것은 얼마나 크고 엄청난 것이며 하늘의 권세들까지 얼마나 초월하는지 모르고 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즉,"너희는 영예와 월계관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지만, 나는 투쟁과 수고에 대해서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상급을 받을 때가 아직 안 왔고 나의 영광도 아직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생활은 죽음과 전쟁과 위험의 생활이다."

그 다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시면서 어떻게 그들을 권고하시고 또 당신께로 이끄시는지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죽음을 견디어 낼 수 있느냐?"고 물어 보시지 않고 "너희가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당하실 것을 그들도 당할 때 더 잘 준비되어 있도록 용기를 주시면서, 너희의 그 잔은 "내가 마시게 될 잔이다."라고 덧붙이십니다.

또 수난은 온 인류를 씻어 줄 것임을 보여 주시려고, 그것을 "세례"라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예,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청하는 것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열성에 넘쳐 즉시 약속합니다.

 

주님은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고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기는 할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큰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순교를 받을 영예를 누리겠고 내가 당하는 것을 너희도 당할 것이며 포악한 죽음으로 너희 생명을 바칠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너희는 내 동반자들이 되리라."

"그러나 내 오른편이나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의 마음을 드높이시어 그들이 좀 더 고귀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슬픔을 이겨내도록 하신 후 마침내 그들의 잘못된 청원을 고쳐 주십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습니다."

그 제자들 모두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보십시오.

다른 열 제자보다 더 높은 자리를 탐하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이 두 제자를 시기하는 나머지 열 제자들도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훗날의 이 두 사람을 보십시오, 그때에는 그들이 이 모든 경향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을 앞서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요한은 그 후 설교할 때나 사도행전에서 보는 봐와 같이 기적을 행할 때나 항상 베드로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야고보는 이 일이 있은 후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열성으로 불타올라 세속의 온갖 관심사를 버리고 덕행의 정상에 도달하여 즉시 치명당할 수 있었습니다.

 

 


 

 

 

성 야고보(James) 사도

 

성 야고보(Jacobus)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형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출신으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였다.

그들은 부친과 함께 겐네사렛 호수에 배를 띄워 고기잡이로 살던 사람들이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카 5,10-11).

 

그들은 예수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Andreas)의 집에 갔을 때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예수께서 낫게 해주신 현장에도 있었다(마르 1,29-31).

그들은 또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0-28) 하고 청했던 사람들이다.

또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얻었고(마르 3,17),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카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는 베드로(Petrus)와 그들 형제만 따라오게 하셨으며(마르 5,37),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 순간에도 베드로와 그들 형제만 함께 자리하게 하셨고(마태 17,1-8), 게세마니(Gethsemane)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러하셨다.(마태 26,36-46).

 

성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냐에서 설교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후일 이곳에 대 야고보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전승에서의 야고보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에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다시 유다 지방으로 돌아왔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스페인 서북부 지방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 대성당에서는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스페인 북부 지방에 모셔져 있던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을 받은 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발견돼 그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 도시 이름을 '별의 들판' 곧 콤포스텔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9세기쯤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이 도시는 또 이슬람교도들에게 침공 받았다가 재건됐는데 그때부터 야고보 사도 이름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불렀습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이후 야고보 사도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순례하는 성지가 됐고, 오늘날도 유럽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더불어 3대 순례성지 중 하나로 꼽히지요.

 

다른 한편 사도 야고보는 중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 중북부 지역을 침공했을 때 백마를 탄 투사가 돼 이들을 앞장서서 무찔렀다는 전설도 전해져 옵니다.

그래서 스페인 예술작품들에서 종종 말을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사도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순례자의 수호성인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요.

로마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있는 야고보 사도 조각상도 지팡이를 든 순례자 모습입니다.

 

 


 

 

두 명의 사도 야고보(James or Jacobus)

 

루벤스의 사도 성 야고보(대)

Pieter Pauwel Rubens, St James the Apostle

1612-13, Oil on panel, 108 x 84 cm

Museo del Prado, Madrid

 

① 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St. James the Greater. 장(대)야고보. 축일 : 7월25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야고보라 불러 왔으나, 성서에서 붙인 호칭은 아니다.

갈릴레아의 어부였으며 삯꾼을 고용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며, 이들 형제가 `천둥의 아들’이라 불린 이유는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를 참지 못해 하던 과격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44년 헤로데 왕에 의하여 죽음으로써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전승은 야고보의 스페인 여행 시기를 예수님의 죽음이후, 야고보의 순교이전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바오로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에 안치된 유해가 야고보의 것인지에 관하여 교황레오 13세가 칙사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어지고 있다.

회화에서 순례자의 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루벤스의 사도 성 소 야고보(Jacobus)

 

② 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St. James the Less. 차(소)야고보. 축일 : 5월3일

 

고대 전승은 작은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 보는데 `작은’이란 신장이나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차야고보라 불러왔다.

전승은 나아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클레오파는 동일 인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름이며, 더구나 클레오파 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이므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뻘인 야고보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최근의 다수 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이 구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별은 사도 1:14와 1고린 15:7에서도 드러난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같으며 바오로가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열거한 것도 갈라 1:19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정경인 야고보의 편지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것이다.

예루살렘의 야고보는 62년 혹은 66년경에 순교하였다.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현대인의 영성수련장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신정환 토마스(한국외대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 

 

 

서기 813년, 오늘날의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 살던 펠라요라는 은수자가 별빛에 이끌려 무덤 하나를 발견하고 그 지방의 주교였던 테오도미로에게 알린다.

발굴한 결과 그것은 폭 4미터가량의 정사각형 구조에 지하에는 무덤이, 지상에는 제단이 있는 경당 형태의 유적이었다.

 

 성 야고보, 스페인을 지키소서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연구자는 이것이 이단으로 박해받았던 프리실리아노의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고 다른 연구자는 부유한 유다인의 것이라 추정했다.

아무튼 그것이 로마제국 말기의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에 테오도미로 주교가 역사적인 선포를 한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의 무덤이다.”

 

야고보 사도가 누구인가?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친동생 요한 역시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는 ‘천둥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알패오의 아들 소 야고보와 구별해 대 야고보라 불린다.

베드로,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그는 서기 44년에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열두 사도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갈리시아 지방을 복음화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참수형을 당했으며 이후 제자들이 그 유해를 갈리시아로 옮겨 안장했다고 한다.

 

전승으로만 내려오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무덤의 발견은 당시 주교에게 안성맞춤의 호기였을 것이다.

무덤이 발견되기 약 100년 전인 711년, 이베리아 반도는 아프리카 북부에 살던 무어 족의 침략을 받고 불과 7년 만에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당하고 만다.

1492년 이사벨 여왕 때 무어족을 완전히 몰아내기 전까지 스페인은 약800년 동안 국토수복전쟁을 했다.

스페인의 중세를 구성하는 이때는 민족의식이 희박했던 스페인 인들의 정체성이 수립되는 시기였고 서유럽 국가들이 이슬람교도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에 기반을 두고 결속력을 다지는 기회였다.

이베리아 반도의 국토수복전쟁은 실로 지중해 서쪽에서 벌어진 십자군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유럽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교황 레오 3세 역시 이를 모든 그리스도교 국가에 일대사건으로 알렸고, 야고보는 곧 성전을 치르고 있던 스페인 군대, 나아가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야고보 성인이 클라비호 전투에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 무어 족 군대를 무찔렀으며 이에 힘입어 열세에 있던 그리스도교 군대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후 스페인 병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돌격,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발음)! 스페인을 지켜라!”라고 외치며 싸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야고보 성인은 ‘마타모로스(무어 인을 죽인다는 뜻)’라는 별명을 얻었다.

  

거룩한 도시, 교류의 통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역화 작업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의 무덤이 있는 곳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성당이 건축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된다.

현재의 대성당은 1078년에 짓기 시작해 1124년에 완공된 것이다.

무어 족의 위협이 남쪽으로 물러나는 12-13세기에 이르러 이 도시는 절정기를 맞는다.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은 이곳을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거룩한 도시’로 명명하였고 갈리스토 2세 교황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줄 수 있는 성지로서의 최고 영예를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야고보 축일인 7월 25일이 주일과 겹치는 성년에 이곳을 순례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614년 예루살렘이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당하는 바람에 그리스도인들의 순례길이 막히자 산티아고는 더욱 각광받았다.

유럽 전역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들었고 갈리시아는 세상의 끝(피니스테레)에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립되어 있던 스페인이 유럽과 연결되고 개방되는 문화와 기술교류의 길이자 상품교역의 길이었다.

 

이후 산티아고 길을 중심으로 도로가 정비되고 숙박시설과 병원 등 순례자를 위한 많은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순례에 한번 나서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모험이어서 출발하기 전에는 유언장을 작성하곤 했다.

길은 여전히 험했고 풍토병이 돌았으며 산적과 강도가 횡행했다.

때문에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사단도 여럿 생겨났다.

보통 순례자는 거친 옷을 두르고 짧은 망토, 차양 모자, 표주박, 그리고 순례자 신분을 표시하는 가리비 껍데기를 몸에 걸쳤다.

왕과 귀족 또는 성직자도 예외가 없었다.

순례를 완수하여 속죄행위를 하고 부과된 일련의 계율을 지키면 순례를 수행한 증거로 ‘콤포스텔라’라는 증서를 받았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길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대에 있는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하여 팜플로나, 부르고스를 거쳐 산티아고에 이르는 약 800km의 ‘프랑스 루트’이다.

  

현대인의 순례길이 된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20세기 말부터 다시금 대대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13세기 이후 순례자 수가 급감했고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 이후 급속히 쇠퇴한 이 길이 1960년대 한 프랑스 사제에 의해 복원이 시도되더니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계기로 새로운 관심을 받았다.

1987년에는 유럽 연합에 의해 유럽 문화길로,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히 브라질 작가파울로 코엘료가 1986년 이 길을 순례한 뒤 쓴 소설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산티아고는 이제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 되었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산티아고 순례자는 11만 4천 명에 이르며 그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십자군 시대의 순례길이 21세기에 들어 세속 도시의 순례객으로 넘쳐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중세의 순례와 요즈음의 순례는 목적 자체가 다른 경우도 많다.

어떤 이에게 이 길은 종교적 고행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운동을 겸한 극기체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실제로 순례자들의 상당수가 가톨릭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목적은 달라도 그곳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동일하고 약 40일간의 고된 일정에서 공유하는 감정도 비슷하다.

그 길은 타인과 좋든 싫든 부대껴야 하는 관계의 장이고, 몸에 있는 것을 최대한 버려야 하는 무소유의 도량이다.

 

순례의 목적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받는 증서가 아니라 길을 걷는 과정 자체이며, 길은 곧 하느님을 향한 인생 여정이다.

그곳의 무덤이 프리실리아노의 것이든 야고보 성인의 것이든 중요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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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환 토마스 - 한국외대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 저서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지평”, 역서 “현대 카리브의 삶과 문화” 등 많은 책을 쓰고 번역했으며, 바로크 미학과 중남미 문학에 대한 논문들을 썼다.

 

 


 

 

 

 

 


 

축일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화보)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