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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8월15일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 신비가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14.

축일  8월15일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 신비가

Stanislaus Kostka

활동지역 / 폴란드(Poland)

활동연도 / 1550-1568년

같은이름 / 스타니슬라우스, 쓰따니쓸라오, 코스트가

 

 

폴란드의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Stanislaus Kostka)

 

폴란드 로스트코보(Rostkowo) 성에서 태어난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트카(또는 스타니슬라오)는 폴란드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었다.

그는 개인교수로부터 교육을 받고 14세 때에 비엔(Vienne)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근면과 신심 그리고 고행으로 유명하였고 또 수 차례에 걸쳐 환시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회 회원이 되고자 했으나 비엔의 관구장은 너무 어린 나이 등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러자 그는 집을 몰래 빠져나와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 당시 독일의 예수회 총장인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 12월 21일)가 있는 딜링엔(Dillingen)까지 350마일을 걸어가 입회를 청하였다.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는 그가 비록 17세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착실하고 열성적인 모습에 반해 입회를 허락하고 로마(Roma)의 수련소로 보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1567년에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더욱 엄격한 고행을 하였고, 미사 중에 자주 탈혼 하였으며, 거룩한 삶을 살다가 예수회 수련자로서 단지 9개월 정도 지낸 뒤 성모 승천 대축일 새벽에 선종하였다.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서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축일은 11월 13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인들의 발자취]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Stanislaus Kostka)

 

 

 

타인보다 수덕에 열중, 모든 이의 귀감 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죽음 예언 - 축일은 11월 13일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는 1550년 폴란드의 '꼬스또꼬프'에서 출생했다.

그는 14세 때 그의 맏형 바오로와 '빈'에 있는 가톨릭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얼마 후 페르디난도 황제가 서거하자 예수회가 그 학교에서 손을 떼게 되었는데 그 결과 기숙사 운영을 중단하게 돼 할 수 없이 하숙생활을 하게 됐다.

 

기숙사 생활의 규율에서 풀려난 그의 형 바오로는 좋지 못한 행동에 마음을 기울이고 코스트카를 못살게 대했다. 그러나 코스트카는 개의치 아니하고 더욱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그 후 코스트카는 중병에 걸려 위독 상태에 빠졌으나 그의 영성적인 기도를 감지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녀 바르바라가 성체를 모신 두 천사를 데리고 나타나 그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어 병은 쾌유됐다.

이에 더욱 자극받은 그는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예수회를 선택했다.

'로마'의 수련 수도원에 입문한 그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수덕에 열중하여 모든 이의 귀감이 됐다.

 

수련자가 된 지 10개월째인 1568년 8월 5일 성모 설지전 축일 예식에 참석키 위해 성 마리아 대성당으로 가는 도중 동반한 엠마누엘 신부로부터 『너는 진심으로 성모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받고 『성모께서는 진실로 나의 어머니시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읍니까』고 대답, 평소에 성모께 대한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게 했다.

 

코스트카는 자기가 성모 몽소승천 축일에 죽을 것을 예언했는데 마침내 적중되어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돌아온 지 열흘째 되는 날, 즉 8월 15일 새벽에 하느님 품안에 안겼다.

그는 1726년 12월 31일 성인의 품에 올랐으며 축일은 11월 13일이다.

 

 

피에르 르 그로의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의 죽음

Pierre le Gros, The Death of St Stanislas Kostka, 1705, Marble

Sant'Andrea al Quirinale, 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