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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9월 3일 성 그레고리오 1세(대)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22.

축일  9월 3일 성 그레고리오 1세(대)

(Gregory I the Great)

신분 / 교황, 교회학자

활동연도 / 540?-604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부유한 귀족 고르디아누스(Gordianus)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또는 그레고리오)는 로마(Roma)에서 교육을 받았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의 이탈리아 침략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을 당시에는 로마의 장관이었다.

수도생활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기 때문에 그는 574년경에 로마와 시칠리아(Sicilia)에 수도원을 세우고 35세경에 수도자가 되었다.

579년부터 585년까지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활약하다가, 5년 후에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온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수도자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시켰으며, 막대한 경비를 들여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기근의 희생자들을 구호하였다.

593년 그는 랑고바르드족 침략군을 설득하여 로마를 평정시켰으므로 랑고바르드족의 왕과 함께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위대한 주교이자 정치인이었다.

 

또한 그의 학덕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레굴라 파스토랄리스'(Regula Pastoralis, 주교의 직책과 의무), '모랄리아'(Moralia, 욥서 주해), '대화집'을 비롯하여 800여 통의 서한들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공식 예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잉글랜드(England)의 개종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고,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였으며,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한 설교가였고, 로마 전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 그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는다.

또한 베네딕토 수도회를 면속 시켜 교황의 권위 하에 두었다.

그는 라틴 교부의 일원으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서거 즉시 시성되었다.

 


 

 

 

교사들의 수호성인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그레고리오 성인은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와 함께 서방교회의 중요한 4대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504년 로마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레고리오의 출중한 성덕은 우연이 아니니, 어머니 실비아는 성인 반열에 오른 분이고, 아버지 고르디아노 역시 신심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유스티노 황제의 신임을 받은 그레고리오는 서른 살에 로마 시 총독에 임명되어 5년간 공직에 있다가 베네딕도회의 수도자가 되어 상속받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고 로마와 시칠리아에 7개의 수도회를 세웠다.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을 초월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가진 것을 단념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을 단념하는 일은 많은 것을 요구한다”(그레고리오 대교황, 복음에 관한 설교에서).

 

수도자가 된 그는 전심전력으로 덕을 닦고 회칙을 엄수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지나칠 정도로 금식재를 지켰다.

펠라지오 2세 교황의 뒤를 이어 수도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황(590년)에 추대되었다.

그레고리오는 위대한 로마의 주교요 정치가였으며, 위대한 설교가로 교황권을 확립하고 미사전례를 개혁하였으며, 그레고리오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을 받는다.

 

위대한 성덕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 늘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자처한 그는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마음을 쏟은 교황은 날마다 열두 명의 가난한 사람을 식탁에 초대하여 대접하는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레고리오 성인의 성화에는 흰 비둘기가 속삭이는 모양을 그려 넣는데, 이는 성 그레고리오 교황의 부제였던 베드로가 성인이 책을 쓸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습으로 성인의 머리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고 한 데서 기인한다.

교황직의 아버지라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사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604년 3월 12일에 세상을 떠났다. 축일은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

 

 

540년경 로마에서 태어났다. 공직에 들어가 지사로 임명되었다.

수도원에 입회하여 부제품을 받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 사절 직분을 수행했다.  590년 9월 3일 교황이 되어 모든 일을 운영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 주고 신앙을 전파하며 그것을 견고히 하는 데 참된 목자임을 보여 주었다.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604년 3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에제키엘서에 대한 강론'에서

(Lib. 1,11,4-6: CCL 142,170-172)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에 대해 말하는 데에 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주님이 이 말씀에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견하시는 사람들을 파수꾼이라고 일컬으시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파수꾼은 접근해 오는 것을 먼 데서 보기 위해 늘 높은 곳에 서 있습니다.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워지는 사람도 자기의 열심한 생활로써 높은 데에 서 있으면서 모든 것을 살피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나에게도 정말 마음을 찌르는 말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내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힙니다. 내 입은 설교의 직분을 제대로 이행치 못하고 또 내 생활은 내 입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실행치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죄과를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내 게으름과 등한함을 시인합니다. 이렇게 내 죄과를 인정함이 자비로우신 판관 앞에 아마도 내 죄에 대한 용서의 청원이 될지 모릅니다.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내 입에서 쓸데없는 한담을 막을 수 있었고 또 내 마음을 거의 계속적으로 기도의 정신 안에 몰두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어깨에 사목직이라는 짐을 메게 된 후부터는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일들이 많아서 그것을 내 안에다 자주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수도원들에 대한 소송문제를 상의해야 하고 때로는 개개인의 생활 및 행위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세속사에 관여할 때가 있는가 하면 야만인들의 침범을 우려하여 내 보호에 맡겨진 양 떼를 위협하는 늑대의 무리를 두려워할 때도 있습니다. 한편, 법의 통치를 유지시키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원조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가 하면 약탈자들의 횡포를 참아내고 온갖 사랑 안에서 그들을 만나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도 숱한 중대한 일들에 산산이 흩어져 갈갈이 찢어진 내 이 정신은 어떻게 내 안에 들어가 완전히 설교의 직분에다 바쳐져 그 직분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 지위가 지니는 성격으로 인해 나는 자주 세상 사람들을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내 입을 통제하는 일에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내 직분에 따른 근엄한 외적 자세를 취한다면 약한 이들은 나를 피해 버리어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그 목표에로 그들을 결코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자주 그들의 잡담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약한 자이기 때문에 차차 그 잡담에 끌리어 예전에 듣기조차 싫어했던 그런 것들을 즐겁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한때 넘어지기 싫어했던 곳에서 편히 누워 있기를 좋아하는 셈이 됩니다.

 

열심한 생활이라는 산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내 약점이라는 골짜기에 누워 있는 비참한 이 내 몸은 어떤 종류의 파수꾼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인류의 창조주요 구속자이신 분께서, 내 비록 부당하다 해도, 거룩한 삶의 정상에 서 있을 은총과 내 입이 효과 있게 설교할 능력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그분께 사랑 때문에 그분에 대해 말하는 데에 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