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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9월 6일 성 즈카르야(Zachary)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24.

축일 9월 6일 성 즈카르야(Zachary)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연도 / +6세기BC

같은이름 / 자카리아, 자카리아스, 자카리야,

재커리, 즈가리아, 즈가리야

 

 

얀 반 에이크의 겐트 제대화: 예언자 즈카르야

Jan van Eyck, The Ghent Altarpiece: Prophet Zacharias, 1432, Oil on wood

Cathedral of St Bavo, Ghent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에 하나인 즈카르야서는 자카리아(Zacharias, 또는 즈카르야)라는 한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이야기를 하면서, ‘은전 서른 닢’과 관련된 예레미야(Jeremias) 예언자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밝혔다(마태 27,9-10). 그런데 이 표현은 즈카르야서 11장 12-13절에 나온다. 이로써 즈카르야서 전반부와 11장을 중심으로 한 후반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즉 이사야(Isaias)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카르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예언자 자카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즈카르야서 제1부(1-8장)에 의하면 예언자 자카리아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기야의 아들"(1,1. 7)로 전해진다. 그는 예언자 하까이(Haggai)와 동시대 인물로서, 기원전 520년 8월 또는 9월부터(1,1) 518년 11월까지(7,1) 활동했다. 하까이가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불러일으키는 데 헌신했다면(하까이 1,14), 자카리아는 성실성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이 이상을 실현시키는데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전의 역할을 그처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단식문제에 대한 답변 장면(7,1-3; 8,18-19), '거룩한 땅'과 성성(聖性)에 대한 깊은 관심(2,16; 5,1-4. 5-11) 등으로 미루어 자카리아의 신분이 사제였음이 거의 확실하며(느헤 12,16 참조), 또한 옛 예언자들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6; 7,4-14; 8,16-17).

 


 

 

예언자들 - 성 말라키(Malachias)와 성 즈카르야(Zacharias)와 성 아모스

 

[성서의 세계] 유배후 시대 예언자 - 하까이와 즈카르야

“성전재건을 독려한 예언자들” - 하까이와 즈카르야

 송재준(마르코)|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바빌론에서 50년 동안 절망적인 유배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원전 538년 마침내 페르샤 임금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귀환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리라는 제2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성서의 세계’ 참조)

 

그러나 해방의 감격을 안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했던 가나안의 실정은 황폐한 채 내버려져 있는 성읍들, 이주해 온 이방인들의 득세, 남아있던 동족들의 냉담한 신앙생활이었다. 이처럼 혼란했던 당시 상황 안에서 이스라엘의 당면과제는 무엇보다 공동체를 새롭게 재건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먼저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엇 때문에 사회제도의 개혁이나 경제 부흥에 앞서 성전 재건에 나섰던 것일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기원과 존재의 의미를 결정짓는 근거에 있었던 바,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민족, 그분의 소유인 민족,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백성이란 하느님이 그들의 유일한 주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 그들의 삶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민수 2장 참조)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있어 모든 삶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느님 현존의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표지이며,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참다운 예배가 올려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유배 후 새롭게 탄생하게 될 공동체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은 이미 유배 초기시대 에제키엘 예언자에 의해 예고된 바 있었다.(에제 40-48장)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원전 520년(페르샤 다리우스 임금 제2년) 당시의 상황을 에즈라서 5장 1-2절은 잘 전해주고 있다. :

 

“그 때에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 예언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그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그러자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나서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그들 곁에서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그들을 도왔다.”에즈라서의 보도처럼 성전 재건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 유다 총독 즈루빠벨, 대사제 예수아였다. 여기서는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서를 중심으로 성전 재건을 위한 예언자들의 활동과 성전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1. 하까이 예언서

 

단 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예언서는 성전 재건에 대한 하까이 예언자의 열정을 잘 전해주고 있다. 예언자의 출신이나 개인 신상에 대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하까이는 다리우스 임금 제2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1,1), 곧 기원전 520년 8월 29일에 처음 활동을 시작하여 아홉째 달 스무나흗날(2,10)인 12월 18일까지 약 넉 달 가량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예언자는 먼저 당시 백성들이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1,2)고 하며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할 성전의 재건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에만 안주하고 있음을 통탄하고 있다. :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이냐?”(1,4) 비록 그들이 먹고 사는 일에 집착하고 온 힘을 다할지라도 이러한 노력들이 삶의 진정한 충만함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지적하면서, 예언자는 그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이켜 보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세상과 모든 인간의 주인이시며, 삶의 참된 진리, 행복의 원천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깨닫고, 이제 그들이 하느님을 만나 뵙고, 가르침을 들으며, 그분과 친교를 이루는 자리, 곧 성전을 세우라고 열정적으로 선포하고 있다.(1,8)

 

이에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 그리고 백성들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새롭게 하며,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1,13)는 하느님의 말씀에 힘입어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기원전 520년 9월 21일의 일이었다.

 

이어 예언자는 10월 18일, 성전 재건에 나선 이들을 격려하며 어떠한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한다. :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에 따라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2,5) 나아가 하느님께서 성전을 당신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실 것이며, 평화를 주시리라(2,6-9)는 약속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12월 18일 예언자가 마지막으로 선포했던 말씀(2,10 이하)에 의하면 백성들이 성전 재건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금 실의에 빠진 듯하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집을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여건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예언자는 하느님의 일에 나선 이들이 외적인 행동뿐 아니라 하느님께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돌리는 내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할 때 하느님께서 진정 그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2,15-19)

 

2. 즈카르야 예언서

 

모두 1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즈카르야 예언서에는 저자와 저술 시기가 상이한 문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원 즈카르서라 불리우는 1-8장은 기원전 6세기 말엽 하까이 예언자와 더불어 성전 재건을 독려했던 즈카르야 예언자의 활동을 전하고 있다. 반면 9-14장 부분에는 ① 즈카르야란 이름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② 기원전 515년에 완공된 성전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되고 있으며, ③ 훨씬 후대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9-11장을 제2 즈카르야서, 12-14장을 제3 즈카르야서라 부르며, 기원전 4-3세기 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는 성전 재건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1-8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예언자와 활동시기

 

즈카르야 예언자는 본래 사제 집안 출신이며, 바빌론 유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한 인물로 전해진다.(느헤 12,16)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다리우스 임금 제2년 여덟째 달(1,1), 곧 기원전 520년 10/11월이며, 다리우스 임금 제4년 아홉째 달(7,1)인 기원전 518년 11월까지 약 2년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2) 원 즈카르야서(1-8장)의 구성

 

즈카 1-8장에는 문학유형과 내용에 있어 뚜렷이 구별되는 세 부류의 자료들이 나타난다. ① 즈카르야 예언자가 본 8개의 ‘환시’ : 전체 문헌의 핵심 부분 ② 환시의 전후에 제시되는 신탁들 ③ 영화로운 메시아 시대의 미래적 전망을 전하는 마지막 부분(8장)

 

3) 환시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

 

‘환시’란 히브리어로 ‘보다’의 명사형인 ‘봄’을 의미하는데,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주로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의도를 내적으로 전달하시는 계시의 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원 즈카르야서에 전해지고 있는 8개의 환시는 매번 ‘어떤 장면의 목격’ - ‘질문’ - ‘답변’의 순서로 전개되고 있으며,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주제로 묶을 수 있다.

 

첫째,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복구 준비

 

이 주제는 처음 세 환시를 통해 제시된다. ① ‘말을 탄 기사 환시’(1,8-17)는 예루살렘에 커다란 열정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돌아오시어 그 곳을 선택하실 것이며, 마침내 당신의 집을 다시 짓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② ‘뿔과 대장장이 환시’(2,1-4)는 교만한 이방인들을 징벌하시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③ ‘측량줄의 환시’(2,5-9)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와 그분의 영광이 머물게 되리라는 약속을 전한다.

 

둘째, 새로운 공동체의 지도자

 

유배 후 새롭게 형성될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로서 ④ 네 번째 환시(3장)는 다시 정화되고 착복의식을 통해 대사제로 임명된 예수아를, ⑤ ‘등잔대와 두 올리브 나무 환시’(4,1-14)는 하느님의 집 기초를 놓고 완성하게 될 즈루빠벨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새로운 시대의 전망

 

이제 새롭게 맞게 될 시대의 모습으로 ⑥ ‘두루마리 환시’(5,1-4)는 도둑질하거나 거짓 맹세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새 시대의 도덕성을, ⑦ ‘뒤주 환시’(5,5-11)는 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근절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⑧ ‘병거 환시’(6,1-8)는 장차 온 세상이 하느님의 지배 아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임을 전하고 있다.

 

4) 신탁들

 

즈카르야 예언자가 선포한 첫 번째 신탁(1,1-6)은 지금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도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던 백성들에게 그분께로 다시 돌아오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두 번째 신탁(2,10-17)은 바빌론에 머물고 있는 유다인들의 귀환을 촉구하는 한편, 장차 많은 민족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보편사상과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실 하느님의 의도가 선포된다.

 

5) 메시아 시대의 미래적 전망

 

마지막 부분인 8장에서는 미래에 다가올 메시아 시대에 대한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장차 하느님께서 예루살렘 한 가운데 머무르시게 될 때 그 곳은 ‘진실한 성읍’, ‘거룩한 산’이라 불리게 될 것이며, 사방에 흩어져 있던 이들을 다시 모아들이시어 진실과 정의 안에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8,8) 또한 이방 민족들도 만군의 주님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 “많은 민족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8,22)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는 유배에서 돌아온 직후 황폐와 혼란 가운데 자신의 일에만 급급해 있던 백성들에게 하느님 현존의 가시적 표지인 성전을 재건하도록 촉구하고 격려함으로써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즈가리야 예언자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이방민족들이 평화 속에 그분을 찬미하는 새로운 시대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예언서 여행] 즈카르야서 (1)


1. 즈카르야 예언자는 누구인가?

‘주님(야훼)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를 지닌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크야의 아들”(즈카 1,1.7) 또는 “이또의 아들”(에즈 5,1; 6,14; 느헤 12,16)로 불린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주민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즈카르야 예언자는 선임자 하까이 예언자가 시작한 이스라엘의 재건 운동을 더욱 강화한다.


2. 즈카르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역사적인 배경

즈카르야 예언자는 기원전 520년 10월/11월(1,1)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봉헌(기원전 515년)되기 삼년 전인 기원전 518년 11월 중순까지(7,1)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기원전 537년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기원전 539∼529년)의 칙령에 따라 바빌론에 유배 중이던 유다인들 가운데 일부가 ‘하느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처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귀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대내외적인 여러 난관에 부딪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1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된다. 기원전 520년 여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의 설교를 들은 유다인들이 그해 9월 21일에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한 공사를 시작한다(하까 1,14-15a 참조).


3. 즈카르야서의 구분 - 제1 즈카르야서와 제2 즈카르야서

성경학자들은 즈카르야서 1-8장을 하까이 예언자와 동일한 시대(기원전 6세기 말경)에 활동했던 즈카르야 예언자에 의해 직접 쓰인 ‘제1 즈카르야서’라고 부르고, 9-14장을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 사이에 활동한 ‘익명의 예언자’에 의해 쓰인 ‘제2 즈카르야서’라고 구분한다. 왜냐하면 즈카르야서 1-8장과 9-14장이 비록 사용하는 용어와 문체는 서로 비슷하지만, 그 안에 표현된 신학사상과 역사적인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① 첫째로 전반부에서는 세 번에 걸쳐(1,1.7; 7,1) 하느님의 말씀이 즈카르야 예언자에게 선포된 정확한 시점이 언급되지만,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시점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또 한 후반부에는 ‘즈카르야’라는 예언자의 이름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전반부의 특징인 단수 1인칭 서술 형식도 사라진다.

② 둘째로 전반부에서는 유다인들이 비록 가난에 시달리기는 해도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내부적으로 별다른 분열없이 평화롭게 지내지만, 후반부에서는 내부적인 분쟁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10,1-3; 11,4-17; 13,7-9) 전쟁의 기운마저 느끼게 한다.

③ 셋째로 전반부에서 강조된 유다 공동체와 예루살렘 성전의 복구, 그리고 즈루빠벨이라는 인물과 결부된 메시아 시대에 대한 희망은 후반부에서는 ‘평화를 가져오는 겸손한 임금 - 메시아’(9,9-10), ‘배척받는 선한 목자’(11,4-14), ‘찔려 죽은 신비로운 존재’(12,1-13,1) 등 그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사라진다.

④ 넷째로 후반부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포로들은(9,11-12; 10,8-11) 전반부에서처럼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아니라, 이방인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을 가리킨다.


4. 제1 즈카르야서(즈카 1-8장)

1) 구조와 내용

제1 즈카르야서는 크게 두 부분, 즉 ‘환시의 책’(1,7-6,15)과 ‘설교의 책’(7,1-8,23)으로 나눌 수 있다.

① 머리글과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촉구(즈카 1,1-6)

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에 주님의 말씀을 들은 즈카르야 예언자는(1,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을 저버린 조상들의 과오를 답습하지 말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를 촉구한다(1,2-6).

 




[예언서 여행] 즈카르야서 (2)


② 환시의 책(즈카 1,7-6,15)

첫 번째 환시(1,7-17)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돌아보라고 보내신 말을 탄 기사들에 관한 환시이다. 기사들은 하느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중에 있는데 반해, 세상은 평온하다고 보고한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에 지나친 폭력을 행사한 것에 진노하고 계시며, 예루살렘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1,14-15).

두 번째 환시(2,1-4)는 ‘네 개의 뿔’과 이 뿔들을 징벌하러 나타난 ‘대장장이’에 대한 환시이다. 본문에서 네 개의 뿔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민족들, 그리고 네 명의 대장장이는 그들을 징벌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파괴자를 상징한다.

측량줄에 관한 세 번째 환시(2,5-17)는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예루살렘이 더 이상 인간이 만든 성벽이 아니라, 불벽처럼 둘러진 하느님의 현존을 통해 보호될 것이라고 예고한다(2,9).

네 번째 환시(3,1-10)에서는 주님의 천사가 예수아 대사제를 고발하는 사탄을 나무라며, 예 수아 대사제에게 더러운 옷 대신 그의 머리에 깨끗한 터번을 씌우고 새로운 예복을 입혀준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고이다.

다섯 번째 환시(4,1-14)에서는 일곱 개의 등잔을 갖춘 등잔대와 그 등잔대 좌우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등장한다. 여기서 등잔대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일곱 등잔은 온 세상을 완벽하게 지켜보고 돌보시는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를 상징한다. 또한 등잔대 좌우에 하나씩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는 바빌론 유배 이후에 유다 공동체를 이끌던 정치 지도자 즈루빠벨과 종교 지도자 예수아 대사제를 가리킨다.

여섯 번째 환시(5,1-4)는 온 세상을 두루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에 관한 환시이다. 이 두루마리에는 도둑질하는 자들과 거짓 맹세하는 자들에게 내릴 저주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과 심판을 상징한다.

일곱 번째 환시(5,5-11)는 뒤주와 그 한가운데에 앉은 여인에 관한 환시이다. 천사는 그 여자를 죄악이라고 말하면서 그 여자를 뒤주 속으로 밀어 넣고는 그 아가리를 납덩어리로 덮어버린다. 그다음 날개가 달린 다른 여자 둘이 나타나 그 뒤주를 들어 옮기는데, 예언자가 천사에게 “저들이 뒤주를 어디로 가져가는 것입니까?” 하고 묻자, 천사가 예언자에게 그것을 신아르 땅으로 가져간다고 알려준다. 성경에서 신아르 땅은 권력을 탐닉하는 대제국을 가리키는데(창세 10,10; 11,2; 이사 11,11; 다니 1,2 참조),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갖 재난을 가져온 바빌론 제국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환시는 유다가 지은 죄악들이 안전하게 밀봉되어 거룩한 땅에서 바빌론 제국의 중심부로 옮겨짐으로써 악의 세력이 거룩한 땅에서 추방될 것임을 의미한다.

여덟 번째 환시(6,1-8)는 온 세상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두 청동산 사이로 병거 넉 대가 나왔는데, 저마다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점박이 말들이 매여 있었다. 이 병거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순찰하도록 파견하신 천사들을 상징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병거들을 북녘 땅으로 보내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당신의 영을 바빌론에서 유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시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일깨우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덟 번째 환시에 이어지는 신탁(6,9-15), 즉 하느님께서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의 머리에 금과 은으로 만든 왕관을 씌워주신다는 것은, 그분께서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아 대사제를 중심으로 한 유다 공동체를 온전히 복구하실 구원의 시대가 다가왔음을 예고한다.

③ 설교의 책(즈카 7,1-8,23)

여덟 가지 환시에 이어 단식 규정과 메시아 시대에 관한 신탁이 이어진다. 7장에서 백성들은 음력 7월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 방화 사건(기원전 587년)과 음력 9월에 있었던 그달야의 살해를 애도하기 위해 그들이 지켜온 단식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는 지금도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묻는다(1-3절).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 예언자를 통해 과거 조상들의 그릇된 모습을 예로 들면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참된 회개와 단식은 정의와 공정, 그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4-14절).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하여라. 서로 자애와 동정을 베풀어라. 과부와 고아, 이방인과 가난한 이를 억누르지 마라. 서로 남을 해치려고 마음속으로 궁리하지 마라’”(9-10절).

8장은 매우 밝고 희망찬 어조로 메시아 시대를 묘사한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온 세상에 흩어져 사는 당신의 백성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사실 것이며,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기념하는 단식이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로 변화될 것이다. 그들은 진실과 정의를 실천하는 남은 자들이 되어 주님께 복을 받을 것이다.





[예언서 여행] 즈카르야서 (3)


5. 제2 즈카르야서(즈카 9-14장)

1) 구조와 내용

‘메시아 시대’를 선포하는 제2 즈카르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운문이 주를 이루는 전반부(9-11장)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평화로운 통치를 강조하고, 산문이 주를 이루는 후반부(12-14장)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메시지가 중심 주제를 이룬다.

① 제1 신탁 : 메시아 시대의 도래에 대한 희망(즈카 9,1-11,17)

제2 즈카르야서는 모든 민족들이 정화되어 하느님을 섬기는 그분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신탁으로 시작된다(9,1-8). 저자는 이 구원의 시대를 이루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임금 메시아가 예루살렘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한다(9,9-10).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신탁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사순절 성지주일의 복음(마르 11,1-11와 그 병행 구절 참조)으로 묵상한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적들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전사(戰士)로 등장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이 전쟁을 통해 흩어진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로 모으시고 그들에게 풍요와 번영을 안겨 주실 것이다(9,11-17).

메시아 시대의 도래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대한 선포는 10,3-11,3에서 구원을 약속하는 ‘참된 목자의 신탁’으로 연결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던 지도자들을 치시고 유다 가문에서 새 지도자를 뽑으시어 그를 도와 원수들을 짓밟으실 것이다. 10장 4절의 ‘유다 집안에서 나올 모퉁잇돌’은 백성의 우두머리를 가리키고(판관 20,2; 1사무 14,38), ‘천막 말뚝’은 왕궁의 주인인 임금을 가리킨다(이사 22,23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셨듯이(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 참조), 이방 민족 사이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을 데려오실 것이다(10,8-12).

사악한 통치자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위협을 선포하는 즈카르야서 11장 1은 에제키엘서 34장 3과 37장 3을 그 배경으로 한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서 34장 3처럼 양 떼를 착취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들을 고발하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이 나쁜 목자들 대신 예언자가 양 떼를 돌보기로 하고 지팡이 두 개를 가져왔는데, 하나를 ‘호의’, 또 다른 하나를 ‘일치’라고 불렀다.

하느님에게서 양 떼를 돌보라는 소명을 받은 예언자는 목자 셋을 고용했는데, 그들이 양 떼를 제대로 돌보지 않자 그들을 그만두게 한다. 그런 다음 예언자는 양 장사꾼들(이스라엘을 집어삼키려는 이방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호의’라는 지팡이를 부러뜨려 당신께서 그들과 맺으신 계약이 깨졌음을 알린다. 이어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종의 몸값인 삼십 세켈을 성전 금고에 넣고 ‘일치’라는 이름의 다른 지팡이도 부러뜨리는데,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형제 계약이 깨졌음을 뜻한다.

② 제2 신탁 : 예루살렘의 종말론적인 재건(즈카 12,1-14,21)

예루살렘의 종말론적인 재건을 선포하는 제2 신탁에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적들의 어떠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상태로, 즉 종말론적인 구원의 상태로 변화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시작한다(12,1-9).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술잔으로 만드시어, 주변의 모든 민족들이 취해 비틀거리게 하실 것이다(12,2-3). 여기서 술잔은 주님의 진노가 가져오는 징벌을 상징한다(참조 이사 51,22; 예레 25,15; 하바 2,16).

이방 민족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그날’이 오면,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온 주민들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사자를 거부하고 배척한 그들의 죄를 뉘우치며, 외아들을 잃은 것처럼 탄식하며 슬퍼하게 될 것이다(12,10-14).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회개하는 당신 백성들의 죄를 씻어 정화시켜 주시고 그들 가운데에서 백성을 죄로 이끈 우상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없애주실 것이다(13,1-6). 백성들을 위한 하느님의 정화 작업은 칼을 일으켜 목자와 양 떼를 치시고, 그 중에 남은 자들을 금과 은을 제련하듯 정화시키는 작업으로 묘사된다(13,7-9).

주님의 날이 오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내려오시어 친히 그곳을 공격하던 이방 민족들을 무찌르실 것이다(14,1-5). 그런 다음 완벽한 기후와 어둠이 없는 대낮이 지속되고 예루살렘에서 마르지 않는 생수가 솟아날 것이다(14,6-9). 이어서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서 주님께 얻어맞고 살아남은 이들이 모두 주님을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와 초막절, 즉 창조주이신 주님의 절대주권을 경축하는 종말론적인 축제를 거행할 것이다(14,10-21).

 




[예언서 여행] 즈카르야서 (4)


2) 제2 즈카르야서의 중심 신학사상

제2 즈카르야서에 등장하는 ‘겸손한 임금 - 메시아’, ‘배척받은 목자’, ‘찔려 죽은 이’에 관한 신탁들은 유다교의 메시아 사상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그리스도론을 확립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① 겸손한 임금 메시아(9,9-10)

‘가난한 이와 의인’이라는 예언자적인 이상과 연결되는 ‘겸손한 임금 - 메시아’는 ‘주님의 가난한 이들’의 종교적인 이상으로 표현되는 메시아이다(시편 22,27; 69,33-34; 이사 49,13; 57,15; 61,1-2; 스바 2,3; 3,11-13).

② 착한 목자(11,4-17; 13,7-9)

제2 즈카르야 예언자가 선포하는 목자는 목자이신 주 하느님의 표상(에제 34,11-21 참조)과 연결된다. ‘착한목자’는 사람들의 배척을 당하고 팔아 넘겨져 제거되며 또 그의 희생(13,7)이 계약의 복구에 이바지함으로써(13,9) ‘찔려 죽은 이’의 모습을 향하기도 한다.

③ 찔려 죽은 이(12,9-14)

즈카 12,9-14은 이름 모를 신비스러운 인물, 즉 ‘찔려 죽은 이’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묘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본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 주민들 위에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 그날에 므기또 벌판에서 하닷림몬을 위하여 곡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도 곡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12,10-11). 이사 52,13-53,12에 언급된 ‘고통받는 주님의 종’처럼 ‘찔려 죽은 이’ 역시 의인이요 주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그분께 얻어맞고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12,10)와 정화(13,1)의 근원이 되어 하느님의 용서를 이끌어냈다.

④ 신약성경과의 관계

제2 즈카르야서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평화를 가져오는 겸손한 메시아에 대한 신탁’(즈카 9,9-10)은 예수님을 겸손과 위엄을 동시에 갖춘 메시아로 제시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부분(마태 21,4-5와 요한 12,15)에서 인용되었다. 또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유다인들의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예수를 팔아넘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은전 서른 닢’과 관련된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밝히는데(마태 27,9-10), 사실 이 표현은 즈카르야서 11장 12-13절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목자를 쳐서 양 떼가 흩어지게 하여라.”는 즈카 13,7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에게 체포되시어 십자가에 처형되실 때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인용되었다(마태 26,31; 마르 14,27; 요한 16,32). 하느님께서 흩어진 양 떼를 정화하시어 남은 자들의 새 공동체를 만드실 것이라는 즈카 13,8-9의 내용처럼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하느님의 신앙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를 창조하실 것이다(마태 26,32; 마르 14,28).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