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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9월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28.

축일  9월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St. John Chrysostom

신분 / 총대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344/354?-407년

같은이름 / 요안네스, 요한 금구, 조반니, 존, 크리소스또모, 크리소스토무스

 

 

콘스탄티노플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아버지 세쿤두스(Secundus)와 어머니 안투사(Antusa) 사이에 태어났는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344-354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버지 세쿤두스는 어머니 안투사가 20세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으나,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친구로 후에 타르수스(Tarsus)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Diodurus)와 함께 성서 연구와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71년 안티오키아의 멜리티우스(Melitius) 주교는 그에게 독서직을 주고 자기 곁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그는 인근 광야에 가서 노(老)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생활하였으며, 더 적극적인 수덕 생활을 열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2년간 고행과 성서 독서의 생활을 하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자, 어머니 안투사의 눈물어린 간청 때문에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으며, 386년에는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2년간 안티오키아의 설교 사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강론을 하였다.

그의 강론이 너무 유명해서 크리소스토무스(Chrisostomus), 즉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390년부터는 신약성서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사망하자 황제는 성 요한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거절하였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래서 398년 2월 26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그는 궁중생활과 너무나 밀착되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이 생활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페수스(Ephesus)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다.

 

그러자 총대주교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적대자들이 연대하여 요한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총대주교였다.

한편 처음에는 황실과의 관계가 좋았으나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비난하여 악화되었다.

그는 403년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Quercia)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고발되어 면직되었으며, 소심증이 있던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그를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결정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하였다.

이 첫 번째 유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성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귀환하였다.

그 후 404년에 황제는 그를 다시 쿠쿠수스(Cucusus, 지금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려는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자 황제는 다시 흑해 동편의 피티우스(Pityus)라는 험한 숲속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9월 14일 코마나(Comana)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금구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Roma)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

 

349년경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났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후 수덕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제가 되어 설교직에 헌신했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397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선임되어, 성직자와 신자들의 생활 관습을 개혁하는 데 힘씀으로써 참된 목자임을 보여 주었다.

왕실의 증오와 원수들의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두 차례나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고통에 짓눌린 채 407년 9월 14일 폰투스의 코마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 신앙을 해설하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실천을 독려하는 많은 설교와 저술들로 인해 "황금의 입" 즉 크리소스토모라는 별칭을 얻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강론에서

(Ante exsilium, nn. 1-3: PG 52,427-430)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며 죽는 것도 이득이 됩니다

 

숱한 파도와 험한 풍랑이 위협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삼켜 버릴까 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성낸다 해도 그것은 바위를 쪼개 버릴 수 없습니다.

파도가 탑처럼 높이 치솟는다 해도 예수님의 배를 삼켜 버릴 수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죽음입니까?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혹 유배 생활입니까?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하느님 것입니다."

혹 재산의 손실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나에겐 이 세상의 무서운 것들이 멸시할 만한 것이고 그 좋은 것들도 웃어넘길 만한 것들입니다.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재화를 탐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의 선익 때문이 아니라면 죽음도 겁내지 않고 살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일어나는 일을 여러분에게 단지 유의시키고 여러분이 확신을 가지도록 요구하는 바입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사랑으로 묶인 이 무수한 백성 가운데 주님이 계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분의 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코 내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성서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지팡이요 나의 보호이며 나의 잔잔한 항구입니다.

온 세상이 와중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성서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읽습니다. 그것은 내 성벽이요 내 보호체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파도가 나를 대항하여 일어서고, 바다와 통치자의 분노가 나를 거슬러 밀려와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거미 한 마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나를 막지만 않았다면 오늘이라도 즉시 딴 데로 떠났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 할 뿐입니다.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나의 뜻이 아니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이것은 나의 보루이고 이것은 나의 움직임이 없는 바위이며 이것은 나의 흔들림이 없는 지팡이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면 나는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이 아무데라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정해 주신다면 그분께 감사 드릴 것입니다.

 

내가 있는 데에는 여러분도 나와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데에는 나도 역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몸이므로 몸은 머리에서 분리될 수 없고 머리는 몸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장소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사랑으로 말미암아 연합되어 있습니다.

죽음마저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육신이 죽는다 해도 계속 살아 남을 내 영혼은 내 백성을 기억에 남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동일한 나의 시민이요 나의 아버지요 나의 형제, 나의 자녀, 나의 지체, 나의 몸입니다.

여러분은 보통의 빛보다 더 소중한 나의 빛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나에게 비추어 주는 빛에 비교될 만한 빛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태양 빛은 나의 현세 생활에 유익한 것이지만 여러분의 사랑의 빛은 미래에 얻을 월계관을 나에게 엮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