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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9월16일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교황 / +253년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29.

축일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San Cornelio Papa e martire

St. Cornelius (Papa dal 03/251 al 06/253)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연도 / +253년

같은이름 / 고르넬리우스, 꼬르넬리오, 꼬르넬리우스,

코르넬리오, 코르넬리우스

 

 

교황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고르넬리오는 251년에 로마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노바시아누스 이단에 맞서 열심히 싸웠고 치프리아노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화할 수 있었다. 갈로 황제는 그에게 유배형을 내렸다. 고르넬리오는 253년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 근교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나중에 그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져 갈리스토 묘지에 안장되었다. (buried at the cemetery of Saint Callistus at Rome)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파비아노 성인의 순교 이후 14개월 동안 교황이 없었다. 그 기간 동안 사제단이 교회를 다스렸다. 고르넬리오의 친구인 치프리아노는, 고르넬리오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판단에 따라, 대부분 성직자의 증언에 따라, 신자들의 투표로써, 원로 사제들과 선한 사람들의 동의로써 교황에 선출되었다."고 적고 있다.

 

교황으로서 2년간의 재임 기간 중 고르네리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박해 시기에 배교했던 그리스도인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과 고해 성사에 관한 것이었다. 극단적인 두가지 견해로 결국 둘 다 단죄받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대주교인 치프리아노는 배교자는 주교의 결정에 따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확립시키려고 교황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고르넬리오는 로마 주교의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노바시아노(교회를 다스리던 사람 중의 한 사람)라는 한 사제가 로마의 주교가 되어 그와 맞서 대항했다. 그가 바로 최초의 대립 교황이다.

 

그는 교회가 배교자뿐 아니라 살인, 간통, 간음, 축첩 등의 죄를 지은 자들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부인했다. 노바시아니즘이 비록 몇 세기 동안 지속되기는 하였지만, 고르넬리오는 노바시아니즘을 배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아프리카의 치프리아노)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는 251년 로마에서 주교회의를 열고 배교자들도 관례적인 ’참회의 처방’으로써 교회에 되돌아올수 있다고 지시했다.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의 우정은 치프리아노의 반대자 가운데 한 사람이 치프리아노를 고발했을 때 얼마 동안 긴장 상태에 있었으나 문제는 해결되었다.

 

고르넬리오 문서는 3세기 중엽의 교회 조직의 범위를 보여 준다. 그 문서에 의하면 46명의 사제와 7명의 부제, 7명의 차부제가 있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수는 약 5만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고르넬리오는 오늘날 치비타 베키아라고 하는 곳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고생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Cornelio는 고대 로마 가족의 이름이며 전투 경적(battle horn)이라는 뜻이다.

 


 

 

 

교황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로마(Roma)의 사제이던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는 성 파비아누스(Fabianus)의 순교 이후 거의 14년 동안이나 지연되어 오던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황 선출이 지연된 것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룬 주요 업적은 박해 동안에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과의 화해 정책이다. 그는 배교자들의 합당한 통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한 반면, 배교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죄하고, 교회가 그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일파를 공격하던 카르타고(Carthago)의 주교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를 끝까지 옹호하였다. 한편 그는 배교자를 용서하는 권한이 교회에는 없을 뿐더러, 이제 자신이 교황이라고 선언했던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와 그를 정점으로 모인 엄격파들을 단죄하여 교회의 평온을 회복하였다. 노바티아누스는 첫 번째 대립 교황이었다.

 

노바티아누스의 극단주의를 옹호하는 무리들은 재차 힘을 규합하였고, 동방에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코르넬리우스는 교회가 통회하는 배교자들을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재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코르넬리우스의 제의로 251년 10월에 개최된 서방 주교들의 시노드(Synod)는 노바티아누스 일파의 가르침을 단죄하고,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

 

황제 갈루스가 253년에 또 다시 그리스도교 박해를 재개하자, 그는 첸툼첼레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순교자로서 삶을 마감하였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

 

고르넬리오는 251년에 로마의 주교가 되었다. 노바시아누스 이단을 거슬러 열렬히 투쟁했고 치프리아노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갈로 황제는 그를 유배형에 처했고 253년 치비타베키아 근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져 갈리스도 묘지에 안장되었다.

 

치프리아노는 210년경 카르타고의 이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개종하여 사제가 되고 249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었다. 매우 다난한 시대에 자신의 모범과 저술로써 교회를 탁월하게 다스렸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시에 먼저 유배당했다가 258년 9월 14일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의 편지에서

(Epist. 60,1-2. 5: CSEL 3,691-692. 694-695)

 

열렬하고도 확고한 신앙

 

나 치프리아노는 고르넬리오 형제께 문안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는 귀하께서 신앙을 용맹히 또 영광스럽게 증거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귀하께서 보여준 영예로운 신앙 고백의 소식을 큰 기쁨으로 접수하고서 우리 자신마저도 그 공로와 그 영예의 동참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또 한마음 한뜻을 이룬다면, 동료 사제가 칭송받는 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칭송받는 듯 즐거워하지 않을 사제가 있겠습니까? 또는 형제의 기쁨을 보고 함께 기뻐하지 않을 형제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보여 준 용기의 증거 소식을 듣고 또 형제들이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귀하께서 그들의 지도자로 거기 계셨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큰 기쁨과 마음의 용약을 느꼈는지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지도자로서의 귀하의 신앙 고백은 모든 형제들의 신앙 고백으로써 한층 더 찬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하께서는 다른 이들을 영광의 길에 앞세움으로써 많은 형제들을 같은 영광에로 인도해 주었으며 또 귀하께서 다른 이들에 앞서 가장 먼저 신앙 고백을 함으로써 온 백성에게도 같은 신앙을 고백할 것을 설득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열렬하고도 확고한 신앙과 형제들의 갈림 없는 사랑 가운데 무엇을 칭송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서 온 백성의 지도자인 주교의 용맹이 환히 나타나고 그들 따라가는 신자들의 연대성도 잘 드러났습니다. 한마음 한 목소리가 된 여러분 안에서 로마의 온 교회가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바오로 사도가 극구 칭찬하셨던 여러분의 신앙은 이렇게도 찬란히 빛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용기와 불굴의 기백을 미리 내다보셨고, 여러분이 장차 거둘 공로를 전하셨으며, 부모들을 칭찬하시면서 자녀들을 독려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도 완전한 화목과 용맹으로 다른 모든 형제들에게도 용기와 일치의 좋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주님은 당신의 섭리로써 시련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우리에게 훈계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배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시련에 대해 필요한 권고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상호 사랑의 일이므로 서로 도와주며 모든 백성과 함께 단식과 밤샘과 기도 안에 항구하도록 합시다. 이것들은 우리를 용감히 서 있게 하고 인내하도록 도와주는 천상의 무기들입니다. 이것들은 영신적 방어체이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거룩한 활들입니다.

 

화목과 영적 사랑 안에서 서로 기억해 주고 서로서로를 위해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며 서로의 사랑으로 우리의 고통을 가볍게 하도록 합시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 순교자

Roma (?) - Centumcellae (Civitavecchia), maggio 253

Died :martyred in 253; buried at the cemetery of Saint Callistus at Rome

Cornelio = nome di antica famiglia romana(name of ancient roman family)

Name Meaning : battle horn

 

 

교회사에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오류가 수시로 제창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사실인 것 같다. 3세기에는 우리가 별로 고려하지 않던 문제 하나가 해결되었다. 그것은 성찬의 전례 전에 고해를 한다는 것과 대죄를 범한 후에 교회와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 같은 사람은 엄격주의와 방임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발견함으로써 교회를 도운 하느님의 도구였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으로 새로운 경험을 평가하고, 그리스도께서 시작한 것을 계속 지키면서 영원히 살아 있는 교회 전통의 흐름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롤리너)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며 교회의 으뜸도 하나이다.

이 으뜸 주교좌는 본래 주님의 권위로 베드로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제단이나 다른 제관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격정이나 무모함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짓이고 속된 것이며 독성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성치프리아노, '가톨릭 교회의 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