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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9월 28일 성 시몬 데 로하스(Simon de Rojas) / 1552-1624년

by 파스칼바이런 2012. 2. 5.

축일 9월 28일 성 시몬 데 로하스(Simon de Rojas)

신분: 신부, 수사

활동연도: 1552-1624년

같은이름: 사이먼

 

 

시몬 데 로하스(Simon de Rojas)

 

1552년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 지방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태어난 성 시몬 데 로하스는 12세 때 그곳의 삼위일체회에 입회하였다. 1573년부터 1579년까지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수학한 후 1577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581년부터 1587년까지 톨레도(Toledo)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고, 158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여러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는 삼위일체회의 모범적인 수도자로 뽑혀서 에스파냐의 국왕 필리페 3세의 궁에서 지내기도 했다.

 

1622년 그는 왕비인 이사벨라의 고해신부로 큰 활동을 하였는데, 마드리드(Madrid)에 흑사병이 만연하자 희생자들을 돌볼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그가 병균을 옮겨올까 두려운 나머지 이를 금지시켰다. 이에 그는 궁중을 떠나 선교사로 활약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성모 성명(姓名) 축일의 성무일도를 만들 정도로 성모 성명 신심에 불탔던 인물이었다.

 

1624년 9월 29일 사망한 성 시몬 데 로하스는 사후에 그의 높은 성덕을 기리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결국 그는 1766년 3월 19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8년 7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위대한 성모의 종이자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였던 그를 성인들의 반열에 올렸다.

 


 

 

Simon de Rojas (1552-1624) O.SS.

Basilica Vaticana, 3 luglio 198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 시몬 데 로하스 - 궁정 고해사제

번역: 송영웅 바오로(봉명학원 재단이사)

  

삼위일체회(Trinitarians)의 신부이면서 교수였으며, 재속 신심단체를 창설하였다.

 

시몬 데 로하스(Simon de Rojas, 1552-1624) 성인 1552년 10월 28일 스페인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4남매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그레고리오 루이스 데 나바마누엘(Gregorio Ruiz de Navamanuel)과 어머니 콘스탄사 데 로하스(Costanza de Rojas) 모두 귀족이었다.

 

그는 자라면서 명석한 두뇌와 묵상을 깊이 하는 특별한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시몬은 12살에 삼위일체회에 입회하였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572년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수도원에서 서원하였다. 서원 후에는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고 1577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살라망카에서 공부할 때 그는 복되신 성모님께 자신의 전 생애를 봉헌하였다.

 

학문적 명성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로하스 신부는 삼위일체회의 수도자들을 돌보는 직책을 맡게 되었고 그 후 여러 수도원의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시몬 신부의 감동적인 강론과 뛰어난 신심이 널리 알려지면서 당시 스페인의 통치자로 경건한 신심을 지닌 필리페 3세(Philippe III, 1598-1621)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필리페 3세는 국정에 관한 모든 일을 우세다(Uceda) 공작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별로 관여하지 않았지만, 시몬 신부의 경건한 신심을 흠모하여 직접 그를 궁정 고해사제로 초빙하였다. 머지않아 시몬 신부는 왕세자 필리페 - 1621년 필리페 4세로 등극하여 1665년까지 스페인을 통치하였다 - 의 개인 교수로 임명되었고, 부르봉(Bourbon)가의 이사벨라(Isabella) 왕후의 고해사제로도 임명되었다.

 

시몬 신부는 그처럼 궁정에서 여러 임무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삼위일체회의 수사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그 직분을 충실히 지켜 나갔다. 그리고 주교 임명을 두 차례나 사양하였고 가지고 있던 돈도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하여 내놓았다.

 

그는 특별히 성체신심이 깊은 분이었으며 스페인과 독일 전역에서 성모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을 널리 확산시켰다. 그리고 이 신심을 널리 전파하고자 성모님의 지극히 아름다운 이름 마리아를 공경하는 재속 신심단체인 ‘성모 성명의 종들의 회’(Congregation of the Servants of the Most Sweet Name of Mary)를 창설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5세(1621-1623)도 이 재속 단체에서 성모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였다.

 

시몬 신부는 연로해지면서 더욱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몰입하였고 개인적으로 많은 고행을 하였다. 1624년 9월 28일 그가 마드리드(Madrid)에서 선종하였을 때, 스페인 전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왕족의 죽음 못지않은 예우를 받았다.

 

1766년 시몬 데 로하스 신부는 복자로 선포되었고, 1988년 7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시성식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 탄생한 이 성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시몬 데 로하스 성인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제로서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을 ‘로하스 신부’라고 부를 만큼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자비와 구속적이 카리스마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생생히 알고 있었으며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이들의 어려움에 가슴 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로서 시몬 데 로하스 신부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자신들을 지켜 주고 인도해 주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이분이 얼마나 오래 기도하였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데 로하스 성인은 사도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지만 그러한 활동이 그의 기도와 관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분은 수도자들이 자정에 드리는 찬미경을 바친 후에도 밤이 늦도록 기도하셨고 낮에도 오랜 시간을 기도와 관상에 몰입하셨지만 그렇다고 사도직 활동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시몬 데 로하스 성인의 축일은 9월 2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