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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금주의 성인] 성 파트리치오(St. Patrick, 3월 17일)

by 파스칼바이런 2012. 3. 5.

 

[금주의 성인] 성 파트리치오(St. Patrick, 3월 17일)

아일랜드 교회의 아버지…성인 축일을 국경일로 정해 현양

 

 

387~461. 스코틀랜드 출생. 주교.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파트리치오는 우상숭배에 젖어있던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전파하고 가톨릭교회를 다시 세운 성인이다.

성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하면서 개종자가 잇따랐고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가 됐다.

 

스코틀랜드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성인은 10대 때 해적에게 납치돼 아일랜드에서 6년간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노예생활 동안 현지인들의 말을 배웠고 이는 훗날 아일랜드에서 선교할 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노예로 지내면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늘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사제가 돼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파하기로 마음 먹는다.

 

성인은 어느 날 꿈 속에서 해안가로 가면 영국으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탈출하라는 하느님 음성을 듣는다.

이튿날 성인은 하느님 말씀대로 아일랜드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 또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아일랜드 백성들이 나타나 아일랜드로 돌아와 아일랜드 국민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꿈을 잊지 않았던 그는 사제가 된 뒤 아일랜드로 선교를 위해 떠난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펼친 선교와 관련된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은 세 잎 클로버의 비유다.

이교도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의 삼위일체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던 성인은 세 잎 클로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한 개의 클로버에 세 잎이 붙어있듯 성부, 성자, 성령도 이와 같다고 설명한다.

 

그의 강론은 이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가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늘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아일랜드에서는 성 파트리치오 축일을 국경일로 정해 성인을 현양하고 있다.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로 불리는 이날에 사람들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초록색 의상을 입고 성인의 세 잎 클로버 비유를 기억하며 세잎클로버 배지를 달고 행진을 벌인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미국과 호주, 영국 등에서도 3월 17일을 성 패트릭 데이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평화신문, 제1010호(2009년 3월 15일), 박수정 기자]

 


 

 

아일랜드의 성 파트리치오(Patricius)

 

로마-브리텐의 관리인 칼푸르니우스의 아들인 그는 아마도 반나벰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듯 한데, 이곳은 골 지방이 아니면, 스코틀랜드의 던 바톤 교외의 킬 패트릭인듯 하다.

 

그는 16세 때에 해적들의 포로가 되어 아일랜드의 어느 이교인에게 노예로 팔렸다가, 6년 후에 도망하여 골 지방으로 갔다.

그리고 22세 경에 그는 브리텐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레린스의 수도원에서 공부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15년 동안 오세르에서 지내다가, 417년에 사제로 서품 되었고, 432년 경에는 성 제르마노에 의하여 주교로 축성되어 아일랜드로 파견되고, 성 바울리노를 계승하였다.

 

그는 크리스챤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 추장 등을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를 뿌리 깊게 심었던 것이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를 방문하였고, 아르마그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교회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30년 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는 "고백론"을 썼는데, 이것은 일종의 호교론이다.

성 파트리치오의 문장은 뱀과 토끼풀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축일 3월 17일 성 파트리치오(Patr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