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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8월 25일 성 루도비코(Louis) / 프랑스(France)

by 파스칼바이런 2012. 3. 29.

축일 8월 25일 성 루도비코(Louis)

신분: 왕, 3회원

활동지역: 프랑스(France)

활동연도: 1214-1270년

같은이름: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프랑스의 성 루도비코(Ludovicus)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금주의 성인] 프랑스의 성 루도비코 9세(St. Louis IX)

신심도 진정한 '왕'이셨네 ... 어려운 이들 돕는데 앞장, 신앙생활도 충실히

 

 

1215~1270, 프랑스 포아시 출생, 국왕,

프란치스코회 제3회

 

성 루도비코 9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국왕으로 생전에 이미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렸다. 성인은 어린 나이(11~12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깊은 통찰력과 성덕에 모두 그를 칭송했다.

 

성인은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돌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성인은 매일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줬고 자주 병원을 찾아가 환자들을 위로하곤 했다. 또 고아원, 무료급식소, 거리 여성들을 위한 쉼터 등 어려운 이들을 돕는 시설 건립을 적극 지원했다.

 

성인은 신하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줄여달라고 간청했을 정도로 기도에 몰두했고 매일 미사에 참례했다. 성무일도도 빠트리지 않았으며 여건이 허락되는 한 자주 영성체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같은 성인의 신심은 성인의 어머니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비롯했다. 성인은 특별히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며 그와 같이 살려고 노력했다. 성인은 프란치스코회 제3회 회원이기도 하다.

 

성인은 통치기간에 두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지만 모두 패했다. 그리고 두 번째 전쟁에서 열병에 걸려 숨졌다.

 

성인 유해는 생드니수도원에 안장됐고 이후 성인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성인은 1297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평화신문, 제1032호(2009년 8월 23일), 박수정 기자]

 


 

 

 

성 루도비코(Ludovicus)

 

 

1214년에 태어났다. 스물두 살 때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결혼하여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고 친히 그들을 잘 길러냈다. 성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하고 기도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탁월했다. 왕국을 다스릴 때 국민들의 평화와 물질적 진보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신적 진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스도의 무덤을 자유로이 참배할 수 있도록 두 번 십자군 원정에 나섰다. 1270년 카르타고 근처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 루도비코가 자기 아들에게 남긴 영적 유언에서

(Acta Sanctorum Augusti 5 [1868], 546)

 

의로운 왕이 이 지상을 진보시킨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무엇보다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아들아, 하느님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 즉 온갖 대죄를 멀리해야 한다. 어떤 대죄를 범하기보다는 온갖 고통을 당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네게 시련이 닥쳐오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너는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그것을 인내로이 견디어 내고, 그 시련은 네 유익을 위한 것이고 아마도 네가 그것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너에게 어떤 좋은 선물을 베풀어 주신다면 주님께 겸손히 감사드리고, 헛된 영광이나 또는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해 그 선물이 너에게 더 해로운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님께서 네게 주신 바로 그 선물을 가지고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바치는 기도에 기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여하여라. 그리고 교회 전례에 참여하는 동안 시선을 흩트리지 말고 잡담하지 말며 염경 기도를 바칠 때나 묵상 기도를 바칠 때나 경건히 주님께 기도하여라.

 

가난한 사람과 비참한 사람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네 힘이 닿는 데까지 그들을 돕고 위로해 주어라. 하느님께서 네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감사드려라. 그러면 한 층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리라. 네 수하 사람들을 언제나 정의롭게 대하며 좌우 어느 쪽으로건 기울어지지 말고 중도를 택하라. 옳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못할 때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자 편에 있어라. 너의 모든 수하 사람들 특히 성직자나 수도자들 가운데 평화와 정의가 깃들이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여라.

 

우리 자모이신 로마 교회와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신 교황 성하께 공경심을 가지고 순종해야 한다. 네 왕국으로부터 온갖 죄악 특히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와 이단을 몰아내는데 힘써야 한다. 지극히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제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강복을 너에게 내린다. 성삼위와 모든 성인들께서 너를 온갖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주께서 너에게 당신의 뜻을 이행할 은혜를 내려 주시어 네가 그분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 드리며 현세 생활이 끝난 후 우리 함께 그분을 뵙고 사랑하며 영원토록 찬미 바칠 수 있게 해주시기를. 아멘.

 


 

 

 

 

 


 

성화속의 프랑스 왕 성 루도비코(Louis) 1

성화속의 프랑스 왕 성 루도비코(Louis)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