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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12월 23일 성 요한 칸시오(John Cantius) / 켕티(Kenty)

by 파스칼바이런 2012. 4. 12.

축일 12월 23일 성 요한 칸시오(John Cantius)

St.John Cantius(JOHN of Kanty)

San Giovanni da Kety (Canzio) Sacerdote

신분: 신부, 성서학자 / 활동지역: 켕티(Kenty)

활동연도: 1390-1473년

같은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칸시우스,

칸티오, 칸티우스, 한스, 후안

 

 

켕티의 성 요한 칸시오(Joannes Cantius)

 

성 요한 칸티우스(Joannes Cantius, 또는 요한 칸시오)는 1390년 6월 23일 폴란드 슐레지엔(Schlesien) 지방의 켕티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형편인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Stanislaus)와 어머니 안나(Anna)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한은 태어난 마을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고 1413년 크라쿠프(Krakow) 대학에 입학하여 1417년에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143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모교에서 성서 강의를 맡았다. 1443년경에 그는 터키에서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했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Roma)를 걸어서 순례하였다.

 

그는 설교로 매우 유명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비해 명성이 너무 높아 그만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올쿠스즈의 본당사제로 봉직하게 되었다. 영혼들을 돌보는 사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는 재차 크라쿠프 대학의 성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운명할 때까지 평생 동안 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면서 16권의 방대한 강의록을 남겼다. 또한 그는 위대한 신앙인으로 처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 교수 그리고 생활의 엄격성은 물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증거하며 살았다.

 

켕티의 요한은 1690년 시복되었으며, 1737년에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폴란드(Poland)와 리투아니아(Lithuania)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현재 그의 유해는 크라쿠프(Krakow)의 성 안나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켕티의 성 요한 사제

 

1390년 크라쿠프(폴란드) 교구의 켕티시에서 태어났다. 사제가 되어 크라쿠프 대학에서 수년 간 강의한 후 올쿠츠 본당의 사목을 담당했다. 자신이 탁월하게 가르친 올바른 신앙 위에다 여러 가지의 덕행들 특히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쌓아 자기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참된 모범이 되어 주었다. 1473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 클레멘스 13세 교황의 편지에서

(2 febr. 1767: Bullarii romani continuatio, IV, pars II, Pratis 1843, pp.1314-1316)

 

 

그가 입으로 전한 하느님과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켕티의 복된 요한은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고 이단자들이 공격하던 정통 신앙을 옹호함으로써 그 가르침과 거룩함에서 뛰어났던 지극히 훌륭한 이들의 반열에 드는 사람임을 의심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 근방에 이단자들과 분열주의자들이 우글대던 가운데 그는 크라쿠프 대학교에서 가장 순수한 원천으로부터 받은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겸손과 정결, 자비와 극기 그리고 거룩한 사제와 열의에 찬 선교사들이 지니고 있는 온갖 덕행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백성들에게 행한 강론에서 열렬히 설명했던 윤리 교리를 확증했습니다.

 

그래서 복된 요한은 그 대학의 교수들에게 영예와 영광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사명을 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놀라운 모범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학자가 되는 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고 또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을 위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께 대한 지식과 다른 모든 학문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온갖 노력을 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주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그 내용에 대한 공경심과 함께 자신의 깊은 겸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식 면에서 다른 모든 이들을 앞섰지만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더 경천히 여기고 자신을 아무에게도 앞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든 이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기를 원했고 자신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이들을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대했습니다. 이 겸손과 더불어 성 요한은 거의 어린이와 같은 뛰어난 단순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과 말에는 어떤 애매 모호성이나 가식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입으로 밝히 전했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할 때에는 미사를 봉헌하기 전 자신의 오류에 앞서 타인의 오류에 대해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낮에는 자기 과업을 마친 후 강의실에서 곧장 성당으로 가 성체 안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 앞에서 기도와 관상에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입으로 전한 하느님과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켕티의 성 요한 칸시오(Joannes Cantius)의 무덤

 

Tadeusz Kuntze-Konicz / 켕티의 성 요한(Joannes)의 기적

 


 

 


 

[금주의 성인] 성 요한 칸시오

성 요한 칸시오 사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