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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2월 3일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

by 파스칼바이런 2012. 5. 16.

 축일 2월 3일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

(St. Claudine Thevenet)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리옹(Lyon)

활동연도: 1774-1837년

같은이름: 글라우디나, 끌로딘, 메리, 미리암, 이냐시오, 클로딘

 

 

 

리옹의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Claudina Thevenet)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Claudina Thevenet)는 1774년 3월 30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 자신의 두 오빠인 루이(Louis)와 프랑수아(Francis)가 정부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순교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살인자들을 용서하였다.

오빠들의 순교 후 리옹 근방에서 노동일을 하며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1816년 앙드레 코엥드르(Andre Coindre) 신부의 도움을 받아 하나의 신심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818년 이 단체를 모태로 하여 예수와 마리아의 자매 수녀회(Congregation of the Religious of Jesus and Mary)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가난한 젊은 여성들을 돕고 교육하는데 헌신하는 교육 수녀회였다.

이때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성 이냐시오(Ignatius)의 마리아(Maria)라는 수도명을 받고 원장으로서 봉사하였다.

젊은 여성들을 위한 기숙사와 학교를 운영하며 수녀회의 발전을 이끈 그녀는 1837년 2월 3일 리옹에서 선종하였다.

 

1847년 12월 31일 교황 비오 9세(Pius IX)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인준 받은 예수와 마리아의 자매 수녀회는 그 후 인도, 파키스탄, 스페인,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지에 진출하여 학교, 대학교, 피정의 집 등을 운영하며 설립자의 정신에 따른 교육 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리옹에서 생을 마감한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1981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3년 3월 21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 - 젊은 여성들의 보호자이자 조력자

번역 송영웅 바오로(봉명학원 재단이사)

 

 

 

예수와 마리아의 자매 수녀회(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Jesus and Mary) 창립자 성녀 클라우디나 테브네(Claudina Thevenet, 1774-1837)는 1774년 3월 30일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행되던 불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내기 위하여 커다란 아픔을 겪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가정에서 자랐다.

 

클라우디나는 프랑스 대혁명 중에 자신의 두 오빠 루이(Louis)와 프랑수아(Francis)가 신앙을 지키다가 정부 관리들에게 잡히는 것을 보았다.

1794년 1월 클라우디나는 오빠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죽음의 행진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 형장으로 갔다.

오빠들은 자기 여동생의 눈물어린 얼굴을 보면서 큰 위안을 받고 용감하게 순교하였는데 클라우디나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다.

 

오빠들이 순교한 직후 클라우디나는 리옹의 여러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클라우디나 자신도 이러한 노동 현장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하면서 1816년 앙드레 코엥드르(Andre Coindre) 신부의 도움을 받아 신심단체를 결성하였다.

이 신심단체가 모태가 되어 2년 후 예수와 마리아의 자매 수녀회가 창립되었다.

성 이냐시오의 마리아(Marie de St. Ignatius)라는 수도명을 받은 클라우디나는 신앙심이 깊은 동료들을 보아 공동체를 세웠다.

수녀회는 젊은 여성들에게 신앙을 교육하는 한편 변화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 수 있는지 교육하였다.

 

이러한 교육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녀는 기숙학교와 전문학교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노동자 가정의 젊은 여성들을 위한 숙소를 지었다.

클라우디나는 그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가슴 깊이 이해한 여성이었고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펼치는 참모범이었다.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그녀에게 교육을 받기 위하여, 또는 극심한 혼란기에 안전한 숙소를 얻기 위하여, 아니면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클라우디나에게 모여들었다.

클라우디나는 그 시대의 절실한 필요를 알아보고 여성들을 위해 문학 분야를 포함한 여러 학과를 개설하여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수와 마리아의 자매 수녀회는 발전을 거듭하여 르 퓌(Le Puy), 로데(Rodes), 그리고 르미르몽(Remiremont)에 수녀원을 세웠다.

프랑스에서 종교박해가 심해지자 클라우디나는 모원을 로마로 옮겨야만 했는데 모원의 수녀들은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로마에 특수 전문학교를 세웠다.

 

클라우디나는 1837년 2월 3일 리옹에서 선종하였으며 10년 후 교황 비오 9세는 이 수녀회의 회칙을 정식으로 인준하였다.

그리고 1842년 이 수녀원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진출하여 봄베이(Bombay)와 라호르(Lahore) 푸나(Poonah), 심라(Simla) 그리고 아그라(Agra)에서 선교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1850년에는 스페인에 수녀원을 세웠고 1902년에는 멕시코에 진출하였다.

또한 1855년 캐나다에, 그리고 1877년에는 미국에 진출하여 선교 활동을 펼쳐 나갔다.

 

1981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클라우디나를 시복하였고 1993년 3월 21일에는 그녀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눈으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알아보았습니다.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의 충만한 삶을 나누어 갖도록 초대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을 어린아이와 같이 아무것도 담아 놓지 않은 텅 빈 마음으로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자신을 하느님께 맡겨드렸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형제자매들 안에, 특히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안에 현존하심을 잘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었기 때문에 클라우디나 테브네가 생각한 교육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현실적인 조건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눈으로 이를 알아보고 이에 대처할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소녀들을 위하여 세운 집을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이름 부르지 않았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여성들에게 가정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 예를 들면 청소나 빨래 또는 식사 준비 등을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들여 할 수 있게 교육시키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하느님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그들을 주인과 같이 섬기는 자세로 봉사하였기 때문에 그녀에게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자신도 최선의 것을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클라우디나 테브네는 한평생을 끊임없이 하느님의 선하심에 모든 것을 맡겨드리고 청하였습니다."

 

[교회와 역사, 201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