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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2월 13일 성녀 가타리나(Catherine)

by 파스칼바이런 2012. 5. 29.

축일 2월 13일 성녀 가타리나(Catherine)

St. Catherine dei Ricci

Santa Caterina de’ Ricci Vergine

신분: 수녀 / 활동지역: 리치(Ricci)

활동연도: 1522-1590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리치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성녀 리치의 카타리나(Catharina de Ricciis,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프라토(Prato)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수녀이다.

그녀는 좋은 감각과 정성을 다하여 맡아온 수련장과 장상직을 사임하였는데, 그녀의 놀라운 신앙 체험들은 많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매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탈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성녀 카타리나의 영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타난 그대로 교회의 개혁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그리고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아왔다.

성녀 카타리나는 1590년 2월 2일 선종하였고,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46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축일은 지역에 따라 2월 2일 또는 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인들의 발자취] 리치의 성녀 가타리나

 

깊은 신심의 소유자, 십자가의 길 따르기를 갈망 - 축일은 2월 13일

 

 

리치의 가타리나 성녀는 1522년 이태리의 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난 가타리나 성녀는 4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잠시 대모의 손에서 장성한 후 교육을 받기 위해 도미니꼬회 수도원에 갔다.

 

가타리나 성녀는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신심상으로도 크게 진보, 아버지가 집안을 맡겼을 때도 신앙생활을 잘 이끌어 갔다.

 

그녀가 12세가 됐을 때 아버지는 그녀를 좋은 곳에 결혼시키려 했으나 그녀는 주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심으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자 아버지는 그가 프라토에 있는 도미니꼬회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수녀원에 들어간 그는 영세 때 받은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 대신 가타리나로 개명하고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한 일도 기꺼이 해냈다.

 

가타리나 성녀는 깊은 신앙심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행실로 모범을 보여 젊은 나이에 수련 수녀장이 됐던 그녀는 30세 때 수도장이 되어 죽을 때까지 원장직을 맡았다.

 

늘 그리스도와 같은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가타리나 성녀는 20세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모습을 매우 또렷이 보는 비범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12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해 네리의 필립보 성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필립보 성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또한 가타리나 성녀는 성흔을 받았으며 1542년 부활절에는 그리스도로부터 반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치의 가타리나 성녀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는 사람에게도 많은 시간을 바쳤다.

아울러 프라토 지방의 가난한 사람과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1590년 2월 오랜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1747년 시성돼 성녀의 품에 올랐다.

리치의 가타리나 성녀의 축일은 2월 13일이다.

 

[가톨릭신문, 1983년 2월 13일]

 


 

 

The Virgin Appearing to Dominican Saints-TIEPOLO, Giovanni Battista

1747-48. Oil on canvas, 340 x 168 cm. Santa Maria del Rosario (Gesuati), Venice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철학자 성녀 가타리나가 법정에서 교회 옹호의 웅변을 토하고 순교한 후 그 성녀를 보호자로 삼고 그의 이름을 자기 본명으로 짓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성녀 중에서도 같은 본명을 가진 이도 몇 분 계시다.

그러므로 이를 구별하기 위해 그 이름에도 보통 고향이나 도시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교회에서 기념하는 리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녀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이 성녀는 1522년에 태어나 세례 때에는 알렉산드라라고 이름 지었다.

4세 때 어머니를 잃고 잠시 대모 손에서 자라난 후 아버지 베드로의 두 숙모가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으로 갔다. 그녀는 수녀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교육을 받기 위함이었다. 수도원에서 수녀들의 교육을 받은 알렉산드라는 학문만이 아니라 신심상으로도 대단히 진보했다.

 

4, 5년 후 아버지는 그녀를 집에 다시 불러 모든 가정 일을 그녀 손에 맡겼다.

그녀는 아버지의 마음에 들도록 집안일을 잘 처리해 나가는 동시에 수도원에 있었을 때와 같은 신심의 의무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 알렉산드라의 나이도 찼으므로 아버지는 딸도 필연코 즐거우리라는 생각에 어느부잣집 아들에게 출가시키려는 생각을 그녀에게 전했다.

기뻐하리가 생각했던 그녀는 오히려 우울한 안색을 하며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하느님께 일생을 바치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간청했다.

 

의외의 그녀 말에 아버지는 처음에는 대단히 놀라 여간해서 들어줄 것 같지 않았지만 확고

부동한 그녀의 결심을 안 후에는 단념하고, 그녀를 위해 도미니코회의 플라도 수녀원에 입회 신청까지 해주었다.

수녀가 된 알레산드라는 가타리나라고 이름을 바꾸고 오로지 완덕의 길에만 노력하고 원래는 귀족이었음에도 가장 천한 일까지도 기꺼이 해 나갔다.

 

그녀가 가장 즐거워한 것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고, 그녀 또한 주님과 더불어 고통을 당하고 싶은 희망이 언제나 불과 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수녀원에 들어오자 곧 중병에 걸려 몹시 고생했지만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주님을 본받는

데 가장 좋은 기회라는 생각으로 조금도 신음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병고를 참았다.

그녀의 병은 약을 먹을수록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므로 그녀는 점점 그것이 인내의 시련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신념을 더욱 굳게 가졌다.

 

고신 극기하며 수덕에 노력한 그녀는 자매들에게도 존경을 받아 25세 때 원장이 되었다.

원장이 되어서는 말보다 실천으로 좋은 모범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했다. 가타리나는 모든 수녀들에게 신망이 두터워 존경받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더욱 겸손하며 자기를 자매들의 종으로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탐하는 명예 등에는 일절 무관심해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했다.

 

경건한 오랑캐꽃은 몸체는 비록 그늘에 숨어있어도 그 향기를 사방에 퍼뜨리는 것처럼 그녀 덕행의 향기도 숨은 데서 나타나 어느덧 세상에 퍼져 유명한 추기경, 주교, 귀족 등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겸손한 그녀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 되었는지 이러한 것들이 없어지도록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때는 자매들이 자기의 언행록(言行錄)을 편찬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몹시 놀라며 "보잘것없는 나 같은 사람을 대단한 인물처럼 서술하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며 원고를 빼앗아 찢고 불에 태워 버렸다고 한다.

가타리나가 십자가를 손에 들고 사랑하는 주님의 품에 자기의 정결한 영혼을 바친 것은 67세 때였다.

 

(대구대교구홈에서)

 


 

묵상

 

현대 의학은 수천 년 동안 성인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수행해 온 묵상법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규칙적인 묵상은 혈압을 낮춰 주고 면역 체계를 강화시키며, 우울한 마음을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묵상은 의학적인 이로움보다도 영적으로 더 귀한 가치를 지닌다.

 

묵상은 더 높은 깨달음과 성찰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영혼의 창문을 열어 준다.

성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죽음과 수난을 관상의 기초로 삼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적인 합일을 통해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타리나는 피렌체의 명문가 출신으로 열세 살에 도미니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묵상했다.

스무 살이 되던 어느 날, 그는 깊은 무아지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사건을 보았고 이를 연극으로 재현하게 되었다.

 

그의 뜨거운 열정은 연극을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묵상 시간은 일상적인 스트레스와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규칙적인 묵상은 갈수록 바쁘고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거룩함이 솟아나는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나는 규칙적으로 묵상하는가? 오늘 단 5분만이라도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존재하는 자로 지내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