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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2월 17일 성모의 종 수도회의 일곱 성인들
성 알렉시우스 팔코니에리(Alexius Falconieri)는 베르나르두스 팔코니에리(Bernardus Falconieri)의 아들로 그의 집안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에서 부유한 상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6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피렌체의 성모 형제회에 입회하였다(1225년).
1233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그들은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이때 마리아께서는 그들에게 은수자의 기도와 고독한 생활에 대해 말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피렌체 교외 라 카마르치아(La Camarzia)에 집을 짓고 살다가 몬테 센나리오(Monte Sennario)로 이주하였는데, 1240년에 또 다른 마리아의 환시를 보고 '성모의 종'(The Servites)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이때 성 보니필리우스 모날디(Bonifilius Monaldi)가 초대원장이 되었다.
성 알렉시우스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은 모두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그 자신은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느껴 수도원의 재정관계 일을 맡았으며 카파지오(Cafaggio)에 수도원 성당을 짓는데 전념하였다. 성 알렉시우스는 이 수도회가 교황 베네딕투스 11세(Benedictus XI)로부터 인가받을 때까지 생존했던 유일한 설립회원이었다. 그는 110세까지 장수하다가 몬테 센나리오에서 운명하였다.
성 알렉시우스와 그의 여섯 동료들, 즉 성 보니필리우스 모날디, 성 요한(Joannes Bonaiuncta), 성 마네투스(Manettus dell'Antella, 또는 마네토), 성 아마데우스(Amadeus degli Amidei), 성 후고(Hugo Uguccione), 성 소스테네(Sosthenes Sostegno)는 1887년 성모의 종 수도회의 일곱 설립자 이름으로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달의 성인] '성모의 종' 수도회의 일곱 성인들(+1310) 윤 클레멘트 신부
'성모의 종' 수도회의 창설자 일곱 사람은 이탈리아의 피렌체(플로렌스)에서 태어나는데, 그들은 1233년에 세나리오 산에서 성모의 종 수도회를 설립했다. 그들은 상인들이었는데, 그 이름들은 봉필리오 모날도,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베네딕도 델 안텔라, 바르톨로메오 아미데이, 리코베로 우치오네, 쟈르디노 소스테니, 그리고 죠반니 봉아진타 등이다.
이 일곱 사람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기도와 덕행의 삶을 통하여 사회를 개혁하려고 결심을 한다. 그러다가 1233년 성모승천 축일에 그들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기도와 고독의 삶으로 떠나라는 비전을 받는다. 그들은 즉시 가진 것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얼마간의 재산만을 남겨둔 채 자신들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들은 매우 엄격한 생활을 세나리오 산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적인 도우심을 기도하였는데, 얼마 후 그들은 성모님의 두 번째 비전을 받는다. 그 두 번째의 비전의 때에 성모님은 검은 망토를 두르고 계셨고, 한 천사가 '성모의 종'들이라고 적힌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계셨다. 그리고 성모께서는 그들에게, "그녀의 종들 - 봉사자들로 불리움 받았으니, 검은 수도복을 입고, 성 아우구스틴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으라는 요청을 받고 모두 사제가 된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전교에 힘쓰기도 하는데, 1304년에는 사도좌로부터 공식 수도회로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성모의 종' 수도회 축일을 2월 17일에 지내는 것은, 설립자 일곱 분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알렉시오 팔코니에리가 1310년 이날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일곱 별의 성좌와도 같이, 일곱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수도회를 만들기를 원하였던 성모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거룩한 일곱 사람들에 대하여, 공동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그들의 전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첫째, 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평생 동정을 하느님께 서원했었고, 어떤 이들은 혼인계약 중이었고, 어떤 이들은 아내를 사별한 이들도 있었다.
둘째, 그들은 상인들이었지만, 하늘나라의 진주 - 성모의 종 수도회 - 를 발견한 후, 가진 것들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자신들을 바치기로 하였다.
셋째, 그들은 성모의 종 수도회로 모이기 전부터 성모님께 깊은 신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넷째, 그들은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했고, 모든 생각과 모범들로 하느님을 경배했으며, 주님과 성모님을 섬기는 데에 자신들의 생활 전체를 다 바쳤다.
[2009년 2월 15일 연중 제6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성모의 종 수도회 설립자 7성인
설립자 7성인은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면서 세나리오산에서 은수 생활을 하다가 그 후에는 토스카나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전교했고, 성모의 종 수도회를 창설하여 1304년 사도좌의 인준을 받았다. 그들의 축일은 창설자 7성인중 하나인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가 1310년에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전해지는 오늘 지낸다.
성모의 종 수도회의 기원에 대한 전기에서 (Monumenta Ord. Serv. B. Mariae Virginis, 1,3.5.6.9. 11, pp. 71 ss.)
거룩한 분들을 찬양합시다
내가 이 수도회에 입회했을 때 일곱 분 중 알렉시오라고 하는 형제 외에는 생존해 있는 분이 없었다. 성모님은 우리 수도회가 어떻게 창립되었는지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도록 오늘까지 이 형제의 육신적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이 형제는 내 눈으로 직접 본 바와 같이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거룩한 모범으로써 착한 생활로 이끌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생활로써 자신과 첫 형제들이 이룬 완덕 및 수도회 초기에 있어서 생활의 경건함을 증거해 주었다.
공동 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들의 생활 형태를 다음 네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로, 교회와 관련해서 보자. 어떤 이들은 평생 동정의 생활을 하느님께 서원한 이들이었고, 어떤 이들은 혼인 계약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아내를 여의고 혼인 계약에서 해방된 이들이었다.
둘째로, 그들의 직업을 보자. 그들은 모두 상인들로서 현세 사물의 매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값진 진주 곧 우리 수도회를 찾았을 때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큰 기쁨으로 자신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바치고 그분들을 충실히 섬기기 시작했다.
셋째로, 동정 마리아께 대한 공경과 신심을 보자. 피렌체에는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해 설립된 오래된 단체가 하나 있었다. 오랜 전통과 거기에 속한 남녀 회원들의 많은 수효와 그 성덕 때문에 그 단체는 다른 단체들보다 더 알려지고 더 위대한 칭호를 갖고 있었다. 그 단체는 "대 성모회"라 했다. 우리가 언급한 이 일곱 분은 함께 모이기 전에 동정 마리아를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이 단체에 속해 있었다.
공동 생활을 하기로 확고히 결의한 후 하느님의 감도와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자신들의 집과 가족들을 떠났다. 가족들에게는 필요한 것만을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다음 슬기롭고 모범적인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기들의 계획을 말해 주고 성실히 조언을 구했다. 그 후 세나리오산에 올라가 산꼭대기에다 알맞는 작은 집을 하나 짓고 거기서 살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분들은 자신들만이 성덕에 도달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므로, 자신들을 통하여 성모 마리아께서 세우실 이 새로운 수도회가 커지도록 다른 사람들도 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분들은 새 회원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고 또 몇 명을 받아들여 우리 수도회를 설립했다.
이 수도회는 시초부터 성모 마리아께서 세우신 것으로서 형제들의 겸손으로 기초가 놓여졌고 형제들의 사랑으로 건립되어 그들의 가난으로 보존되었다.
(가톨릭홈에서)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St. Alexis Falconieri
1233년 성모몽소승천 축일에 그들은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이때 마리아는 그들에게 은수자의 기도와 고독한 생활을 계시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플로렌스 교외 까마르찌아에 집을 짓고 살다가, 몬떼 세나리오로 이주하였는데, 1240년에 그들은 또 다른 마리아 환시를 보고, 성모의 종(the servites) 수도회를 창설하였으며, 부온피글리오 모날도가 원장이 되었다.
알렉시오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은 모두 사제로 서품 되었는데, 그 자신은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느껴 수도원의 재정관계 일을 맡았으며, 카파지오에 수도원 성당을 짓는데 전념하였다. 그는 이 수도회가 교황 베네딕또 11세로부터 인가될 때까지 생존했던 유일한 창설회원이었다.
그는 110세까지 장수하다가 몬떼 세나리오에서 운명하였다. 그와 그의 동료 6명은 일곱 창설자 이름으로 레오 13세로부터 1888년에 시성 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1233년 8월 15일 프로렌스는 구엘피와 기빌리니로 분열되었다. 이 내전에 가담하기 위해 투구로 무장한 청년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이 발현을 지켜본 알렉시오, 아마디오, 보나준따, 본필리오 그리고 마네또는 성모님의 말씀대로 모든 무기를 버리고 투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 수도회 이름은 성모님께 바쳐진 마리아의 종 수도회였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그들이 부딪힌 최초의 난관은 그들의 가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들 중에 두 사람은 결혼한 처지였고 두 사람은 홀아비였다. 그들의 목적은 참회와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이었으나 방해를 받게 되자 그들은 몬테 세나리오라는 황량한 산기슭으로 다시 피해 갔다.
이 작은 단체는 1244년에 도미니코회 회원인 베로나의 성 베드로의 지도하에 도미니코 수도복과 비슷한 수도복을 채택하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규칙에 따라 살며 마리아의 종들이란 이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과거의 여러 수도원보다는 프란치스코회의 청빈 생활에 더 가까운 생활 형태를 취했다. 이 수도회는 이탈리아와 유럽에 널리 퍼졌으며 베네딕토 11세 께서는 1304년 이들을 '성모의 종' 수도회로 부르게 하였다. 레오 13세는 이 일곱 수도자를 1888년 1월 12일에 성인으로 공표했다.
수도회 회원들은 수도 생활과 사목 활동을 결합시켰다. 그들은 수도원내에서 기도와 일 그리고 침묵 생활을 하며 외부 활동으로는 본당 사목, 교리 교육, 설교, 기타 다른 사목 활동에도 종사한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지금 말하려고 하는 7성인이 일치 합심해 성모의 종 수도회를 창립하고 수덕에 매진한 것도 생각하면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7성인은 모두 북 이탈리아에 있는 플로렌스의 대 상인(商人)들로 13세기 중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성 본필리오 모날디오, 성 보나줌다 마네도, 성 마네도 안델라, 성 아미데오 데 아미데이, 우구치오의 성 우구치오, 성 소스데네오 데 소스데네이 그리고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이들의 축일은 창설자 7성인 중의 하나인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가 1310년에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독일 황제 프리데리히 2세의 군대에게 침입 당해 국민은 겔프인과 기베린인의 두 파로 갈려 도시와 도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우게 되어 참으로 불안한 시대였다. 이때에 7성인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세속을 떠나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려 원하게 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1233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성모 마리아께서 그들 각자에게 발현하셔서 집을 떠나 수덕의 길을 닦도록 권했으므로 그들도 이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같이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교의 허가를 얻어 9월 8일 성모 성탄 축일을 계기로 교외에 마련한 가마르자라는 초막에서 그립던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그들이 초라한 옷을 입고 읍을 걷고 있으니까 조그만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대단히 즐거워하듯이 "성모의 종, 성모의 종"하며 떠들었다. 그들의 수도회가 후에 주교에게 "성모의 종 수도회"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이러한 아이들의 말을 따라 지은 것이다. 그 아이들 중에 어린 필립보 베니디오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성모의 종 수도회에 들어와 총장의 중책을 맡아 회의 발전에 전력하고 성인이 되었다는데,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금요일의 일이다. 그들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으니까 성모 마리아가 재차 발현하셔서 아우구스티노회의 규칙을 사용하고, 검은 수도복을 입고 또한 성자의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의 고통을 존경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7성인들이 즉시 그 말씀을 순종한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사방을 순회하면서 강론도 했다. 이것은 회의 창설시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묵묵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플로렌스 시 가운데에 아논자드라는 수도원을 건설했다.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강론을 하는데 사제가 아니고서는 다소 곤란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의 6명은 주교의 승낙을 얻어 신품성사를 받았지만, 나머지 한 사람 알렉시오만은 겸손한 마음으로 절대로 사제의 권리를 받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평수사로서 걸인생활을 계속하며 은혜 베푸는 자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면서 일생을 보냈다.
7성인 중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은 보나줌다 마네도였다. 그는 1251년 8월 13일 미사에 봉헌 한 후 자신이 죽을 것을 형제들에게 알리고 제의를 입은 채 성서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읽어 달라 부탁을 하고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하는 구절에 왔을 때 팔을 펴고 그 말씀과 같이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의 손에 맡겼다고 한다. 반대로 가장 오래 산 성인은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인데 그는 1310년 2월 17일, 110세의 고령으로 플로렌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들 7성인의 출생과 죽음은 동일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무덤에 묻혔고, 다같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 마침내 모두 똑같이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 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마리아의 종 대 수도원(수도회 창설지)
다양한 신분을 살고 있던 성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 초대 공동체처럼 완전히 '한 마음 한 뜻'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전 생애를 바쳤다. 마리아의 종 대 수도회는 남자 수도회, 관상 수녀회, 활동 수녀회, 재속회로 구성된 10,000여명의 회원들이 전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은 영성을 살지만 창설자의 설립 목적의 차이에 있어서 수녀를 구분 짓기 위해 설립지명을 명칭에 연결시킨다.
(마리아의 종 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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