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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6월 3일 성 요한 그란데(John Grande) / 1546-1600년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9.

축일 6월 3일 성 요한 그란데(John Grande)

신분: 자선가

활동연도: 1546-1600년

같은이름: 그랑드,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그란데(Joannes Grande)

 

성 요한 그란데(Joannes Grande)는 1546년 3월 6일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의 카르모나(Carmona) 소읍에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에 부친이 사별하자 세비야(Sevilla)로 가서 포목상을 하는 친척 가게에서 일을 거들며 지냈다. 그는 사업 수완이 뛰어났지만 세상 일이 그의 정신을 빼앗지는 못하였다. 그는 오히려 이런 일들에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2세 때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뒤에 마르세나 교외의 은둔소로 잠적해 버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불우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 자신은 좋은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길가에 누워있는 두 사람의 부랑자를 보자마자 연민의 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움막으로 데려와서 따뜻이 돌보아 주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그는 하느님의 뜻이 이런 데에 있음을 알고 은둔소를 떠났다.

 

그는 세레스(Xeres)로 가서 죄수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3년 동안 그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 그들을 위해 구걸하고 봉사하다가 병원 일을 맡게 되었다. 이를 보고 감동한 어느 부유한 부부가 병원을 지어주자 그는 젊은이들을 모았다. 또한 그는 가난한 처녀에게는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 주었고, 영국과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에스파냐 군인들을 치료하는데 헌신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의 영성생활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죄수들을 위한 그의 헌신 때문에 그는 흔히 요한 죄수(John the Sinner)로도 불린다. 그는 1853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6년 6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후안 그란데 로만 - 죄인의 수호자

번역 송영웅(바오로) · 봉명학원 재단이사

 

 

후안 그란데 로만(Juan Grand Roma'n, O. H., 1546-1600)은 에스파냐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의 카르모나(Carmona)에서 태어났다. 후안은 15살이 되었을 때 친척 한 명과 함께 세비야(Seville)로 가서 아마포를 취급하는 공장에서 도제로 일을 하였다. 그 후 후안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마포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후안은 22살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수도자 성소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마르세나(Marcena) 근처로 가 그곳에서 은수자로 생활하였다.

 

후안은 은수자로 사는 와중에 자기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은거하고 있던 오두막집을 나와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로 갔다. 그곳에서 후안은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들을 3년 동안 돌보아 주었으며, 그 지역에 있는 병원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관심을 촉구하였다. 마침 그 지역에 살던 한 부유한 부부가 후안의 호소에 호응하여 그가 병원을 새로 신축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었다. 후안은 병원을 새로 지은 후 그 병원을 자선 병원 수도회(Order of Hospitallers)가 관리하게 하였으며, 그는 수도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후안은 자신만의 탁월한 능력과 덕행으로 수도회가 펼쳐온 다양한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후안은 신비한 은총을 많이 받았는데 그중에는 예언의 은사도 있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게 대패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후안은 죄인들과 고아들을 계속해서 돌보아 주었으며, 그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여 일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설을 짓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여려 가지 계획들을 세웠다. 또한 그는 결혼을 하지 못한 젊은 여성들에게 지참금을 주어 젊은 여성들이 신랑감을 찾아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후안은 죄인들과 카디즈(Cadiz)에서 도망쳐 나온 에스파냐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기도 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함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고 올바른 신앙심을 갖도록 격려하곤 하였다. 후안은 이러한 봉사를 하면서도 자신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를 바라지 않았다. 후안은 그 지방 관리들에게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자선 기관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를 준수하도록 촉구하였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관리들이 후안에게 여러 가지 압박을 가하였지만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1600년, 심한 역병(疫病)이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를 덮쳐 하루에도 주민이 300명씩 죽어 나갔다. 후안은 환자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자신의 모든 시간과 힘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열심히 구호활동을 하던 중 후안 자신도 역병에 걸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후안이 죽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으며, 사람들은 후안을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 지방의 수호자로 오래도록 기렸다.

 

1853년에 비오 9세 교황은 후안 그란데 로만을 복자품에 올렸고 1996년 6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후안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 영웅적인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그의 치열한 기도생활로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기도는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열정과 깊은 연민의 정, 그리고 모든 은총이 솟아오르는 깊은 샘이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죄인의 수호자' 후안은 에스파냐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인이다.

 

성 후안 그란데 로만의 축일은 6월 3일이다.

 

[교회와역사, 201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