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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6월 27일 성 라디슬라오(Ladislaus) / 헝가리(Hungary)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19.

축일 6월 27일 성 라디슬라오(Ladislaus)

신분: 왕

활동지역: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1040-1095년

같은이름: 라디슬라우스

 

 

헝가리의 성 라디슬라오(Ladislaus)

 

헝가리의 국왕 벨라(Bela)의 아들로 태어난 성 라디슬라우스(또는 라디슬라오)는 1077년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한차례 친척들의 퇴위 요구를 받은 적이 있으나 이를 무사히 진정시켰다. 그는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를 적극 지원하면서, 헝가리의 성왕인 스테파누스(Stephanus, 8월 16일)를 거울삼아 그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바이에른(Bayern)의 공작 웰프(Welf)의 딸인 아델라이드(Adelaide)와 결혼하였고, 쿠만족(Cumans)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으며, 자신의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적극 장려하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당들을 세웠고, 유대인들과 마호메트인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관대함을 보였다.

 

1092년의 자볼릭 교회 회의에서 그는 종교적,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일련의 법을 선포하였고, 제1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었으나 출전하기에 앞서 보헤미아(Bohemia)의 니트라(Nitra)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헝가리의 국가 영웅 중의 한사람이며 헝가리의 영토를 최대한으로 확장했던 위대한 왕임과 동시에 통치자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정의를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덕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사후 바로 공경을 받기 시작하여 1192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유해는 자신이 세운 나기바라드(Nagyvarad)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금주의 성인] 성 라디슬라오(St. Ladislaus, 6월 27일)

헝가리 가톨릭 발전에 기여, 헝가리 교계 제도 정비 앞장...여러 기적 일으켜

  

1040~1095. 폴란드 출생. 헝가리 국왕.

성 라디슬라오는 헝가리 국왕 벨라 1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이 태어났을 때는 성인의 아버지가 사촌들의 핍박을 받아 잠시 폴란드로 피신해 있을 때였다. 성인의 아버지는 1048년 다시 헝가리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고 성인은 1077년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여러 사촌들에게 왕위를 위협받기도 했지만 무사히 지켜냈다. 성인은 재위 당시 강한 헝가리를 내세우며 여러 민족들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 국민들에게 영웅적 존재로 각인됐다.

 

성인은 또 헝가리 가톨릭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적극 후원한 성인은 교구를 신설하는데 힘쓰며 교계 제도를 재정비했다. 또 성당과 수도원 건립을 적극 장려했다. 그러면서도 유다교와 이슬람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베풀며 화합을 도모했다.

성인이 행한 기적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성인이 통치하던 때 페스트가 번졌다. 그때 성인은 치료제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 뒤 하늘에 대고 활을 쐈다. 그때 화살이 페스트 치료제로 쓰인 약초에 꽂혔다고 한다.

 

또 헝가리를 침략한 이들이 헝가리 군인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 군인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전리품인 황금들을 여기저기 뿌렸댔다. 예상대로 헝가리 군인들은 침략자들을 쫓기 보다 황금에 더 눈이 멀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성인이 기도를 드렸더니 황금이 모두 돌로 바뀌었다고 한다. 군인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침략자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성인은 헝가리에서 가장 칭송받는 국왕으로 선종 직후부터 성인으로 추앙받아왔다. 1192년 첼레스티노 3세에 의해 시성됐다.

 

[평화신문, 제1024호(2009년 6월 21일), 박수정 기자]

 


 

 

 

 


 

성화속의 헝가리의 왕 성 라디슬라오(Ladisla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