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6월 30일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20.

축일 6월 30일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

The First Martyrs of the Church of Rome

Santi Primi martiri della santa Chiesa di Roma Martiri

St. Protomartires de Roma

 

 

 

네로 황제 때인 서기 64년 로마가 화재를 입은 후 교회에 가해진 첫 번째 박해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잔인한 고문을 받고 순교했다. 역사가인 타치투스(Annales 15, 44)와 로마 주교 클레멘스의 코린토 인들에게 보낸 편지(5-6장)가 이 사실을 증언해 준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코린토 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적어본다.

 

이제 과거의 예를 떠나 좀더 근래에 있었던 영웅적인 분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우리 시대의 숭고한 모범을 보기로 합시다. 우리 교회의 가장 견고하고 거룩한 기둥이었던 그분들도 질투와 시기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아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투쟁했습니다.

 

먼저 거룩한 사도들을 바라봅시다. 베드로는 이 죄스런 질투심 때문에 한 두 가지도 아닌 여러 가지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수난 받은 후 마침내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얻었습니다. 바오로도 이 질투심과 분쟁 때문에 인내의 상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곱 번이나 사슬에 매이고 피신도 하고 돌로 맞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 서방의 복음 전파자가 되고 신앙으로 말미암아 높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또 온 세상의 정의를 가르치면서 서방의 극변까지 이른 후 통치자들 앞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의 팔마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이 세상을 떠나 성도들의 거룩한 안식처로 올라가 우리에게 인내의 가장 위대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생활을 영위한 이분들 외에 질투심 때문에 생긴 고문과 고초를 당한 수많은 성도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에게 놀라운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질투심 때문에 다나이다와 디르체아 같은 여인들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지독히 잔인하고 가증스런 고초를 당한 다음 신앙의 목적지에 다다라 연약한 몸을 지니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고귀한 상급을 받았습니다.

질투심은 아내의 마음을 남편에게서 멀어지게 하여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라는 우리 선조 아담의 말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질투심과 분쟁은 큰 도시마저 뒤엎었고 강대한 민족들을 뿌리째 뽑아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다만 여러분이 지켜야 할 의무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으로 나 자신도 교훈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같은 경기장에 서 있고 같은 싸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쓸데없고 헛된 걱정거리는 뒤에 제쳐 두고 영예롭고 거룩한 우리의 전통에로 방향을 돌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즐거우며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인지 분간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의 피에다 우리 시선을 두도록 하고, 우리 구원을 위해 흘리심으로써 온 인류에게 회개의 은총을 얻어 준 그 피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보배로운지 깨닫도록 합시다.

 

(대구대교구 홈에서)

 


 

 

 

순교자  殉敎者

라틴어: martyr / 영어: martyr

 

신앙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순교자는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증인'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만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음의 내용을 보증한다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되며(사도 10:41) 스테파노(사도 22:20)와 바오로(사도 22:15)에게 적용되었고 묵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증인이라 불린다(묵시 1:5,3:14).

 

그밖에 묵시록(6:9,12:17,19:10)에는 예언자의 신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내는데 위험한 시대에 증언을 한 증인들이(묵시 2:13,11:3,17:6) 순교자가 된 것이다.

 

2세기 중엽부터 교회는 재판소에 끌려가서 말씀의 증언을 하고도 죽지 못한 자들을 증거자(confessor-es)라 부르고 피로써 증언을 낸 자들을 증인(mar-tyres)이라 불러 양자를 구별하였는데 이는 죽음 자체 가 지니는 특수한 의미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순교자를 처음으로 증인이라 부른 것은 폴리카르포주교의 순교전(165년경)에서였다. 여기서 순교자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곧 하느님의 아들의 그것임을 피 흘려 증거한 자 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편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순교자란 피 흘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의 실재성을 입증한다고 하여 예수의 죽음을 부정하는 가현주의자(假顯主義者)들의 주장을 논박하였다.

 

2세기 말엽 이레네오도 순교자를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를 배격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교회 내 순교자들의 특수한 지위를 확인하게 되었다.

 

순교자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초인적 용기는 순교자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때문에 가능하다(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 순교는 모든 죄를 없애주는 행위이므로 제2의 세례이며(테르툴리아노) 순교자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순교자는 죽은 후 바로 천국의 영광을 누린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신앙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순교자는 악의 세력을 쳐 이긴 승리를 증거하고 다시는 고통이 없는 부활을 선포한다(오리제네스).

 

그러므로 순교자는 완덕(完德)에 이른 자이며 이들로 인하여 역사상 그리스도 교인의 숫자가 놀랍게 증가하였다. 그래서 "순교자는 그리스도 교인의 씨앗이다"라고 테르쿨리아노가 일찍이 설파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 인류의 빛

CONSTITUTIO DOGMATICA DE ECCLESIA

LUMEN GENTIUM

- 강대인 번역 -

 

제5장 교회의 보편적 성화 소명

 

성화의 수단과 방법

 

42.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신다"(1요한 4,16).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다(로마 5,5 참조).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첫째 은혜는 사랑이며, 그 사랑으로 우리는 만유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좋은 씨앗처럼 영혼 안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으려면, 모든 신자가 각기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채워 드려야 하며,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와 거룩한 전례에 자주 참여하고, 기도와 극기, 형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봉사와 모든 덕의 실천에 꾸준히 헌신하여야 한다.

 

완덕의 끈이며 율법의 완성인 사랑은(골로 3,14; 로마 13,10 참조) 모든 성화 수단을 이끌고 가르쳐 그 목표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시가 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시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으므로, 주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1요한 3,16; 요한 15,13 참조).

 

사랑의 이러한 최대 증거를 모든 사람에게 특히 박해자들에게 보여 주도록,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첫 시대부터 부름 받았고 또 언제나 부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진다.

 

그러한 은혜가 소수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모든 제자는 그 준비를 갖추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교회가 늘 겪고 있는 박해 가운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또한 교회의 성덕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서 복음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제시하신 여러 가지 권고로써 증진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천상 은총의 고귀한 선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으로(마태 19,11; 1고린 7,7 참조), 동정이나 독신 생활 안에서 갈리지 않은 마음으로(1고린 7,32-34 참조) 더욱 수월하게 오직 하느님께만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 하늘 나라를 위한 이 완전한 금욕은 교회에서 언제나 특별한 영예를 누려 왔으며, 사랑의 표지와 자극제로 또 세상에 있는 영적 풍요성의 어떤 특별한 원천으로 여겨졌다. 교회는 또한 사도의 권고를 상기한다.

 

그는 신자들에게 사랑을 촉구하면서,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죽기까지 순종하셨으며"(필립 2,7-8) 또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2고린 8,9 참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랑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제자라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과 겸손을 언제나 본받고 증언하여야 하므로, 어머니인 교회는 그 품안에서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구세주의 자기 비움을 더욱 철저히 따르고 더욱 명백히 보여 주며,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 안에서 가난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 그들은 곧 순종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완전히 닮고자, 계명의 척도를 넘는 완덕의 문제에서 하느님 때문에 사람에게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다.

 

모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덕과 자기 신분의 완성을 추구하도록 권유받으며 또 그러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모든 이는 자기 마음을 바로 다스리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며, 복음적 청빈 정신에 어긋나는 현세 사물의 사용이나 재산에 대한 집착으로 완전한 사랑의 추구를 가로막지 않게 하여야 한다. 사도는 권고한다. 이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결코 그 안에 안주하지 마라.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1고린 7,31 그리스어 참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