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메달 성당 (Chapelle Notre Dame de la Medaille Miraculeuse)
성모 마리아가 1830년 1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바오로 자비 수녀회 내 소성당에 발현하여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직접 준 메달을 '기적의 메달'이라고 한다. 기적의 메달은 인간 모두에게 내려준 은총과 구원의 상징이며 메시지이다. 이 메달은 1947년 7월 2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자기 직분에 충실했던 침묵의 성녀'로 명명된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의 일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는 1806년 5월 2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1남매 중 아홉 번째였던 그녀는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하여 소녀가장 노릇을 했다. 19살이 되던 무렵 수녀회에 입회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좌절된 그녀는 1830년 초 파리 근교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수련생활 중 그녀는 성모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성모님은 그녀에게 "불행이 프랑스를 덮칠 것이고, 왕좌가 뒤집힐 것이며, 전 세계가 온갖 종류의 불행에 의해 뒤집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 제대로 걸어 나와 믿음과 열정을 갖고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이 널리 내려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성모님은 두 번째 발현에서 라부레 수녀에게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둥근 물체는 나에게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내리는 은총의 상징"이라며 "이 모형대로 메달을 새기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1832년 6월 30일 최초로 주조된 메달 전면에는 죄를 상징하는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상태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조각되어 있으며, 그 주위로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십자가가 "M"이라는 글자를 들어 올리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M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수난의 신비에 깊이 동참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그 밑에는 두 개의 심장, 즉 왼쪽의 가시관에 둘러싸인 것은 '예수 성심', 오른쪽의 칼에 찔린 모양을 한 것은 '성모 성심'을 의미한다. 그 주위의 12개의 별은 예수님의 12제자,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도가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메달은 신덕, 망덕, 애덕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가톨릭 교리의 정수를 담고 있다.
기적의 메달 성당 제대 위편 벽에는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정면에는 메달과 같은 모양의 성모상이 있다. 우측에는 두 번째 발현 모습을 조각한 성모상이 있으며, 그 밑에는 사망 후 57년이 지나 시복을 위한 시신 발굴 당시(1933년)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라부레 수녀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e) 신분: 수녀, 환시자 활동연도: 1806-1876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축일 11월 28일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Catharina Laboure)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Catharina Laboure, 또는 가타리나)는 프랑스의 디종(Dijon) 근교 팽-레-무티에(Fain-les-Moutiers)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서 조에 라부레(Zoe Labour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8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고 또 언니인 루이자(Louisa)가 파리(Paris)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자 어린 나이에 삼촌의 카페에서 일을 하며 가사 일을 돌보아야만 했다. 그녀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처지라 읽고 쓰는 것조차 배울 수가 없었다.
14살 때부터 수도성소를 느낀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언니를 뒤따라 1830년 샤티용쉬르센(Chatillon-sur-Seine)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의 파리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여 카타리나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지원기를 마친 그녀는 파리의 뤼 뒤박(Rue du Bac) 수도원으로 갔다. 그녀는 수도원 성당에서 일련의 성모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이 환시에서 성모님은 당신이 원죄 없이 잉태하셨음을 표시하고 공경하는 메달을 만들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하셨다. 그녀의 고해신부인 알라델(Aladel) 신부는 이 메달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를 파리의 켈랑 대주교로부터 받고, 1832년에 처음으로 1500개의 만든 것이 즉시 백만 개의 메달로 불어나면서부터 유명한 기적의 메달이 된 것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환시는 파리의 대주교가 임명한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1836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이 결과 기적의 메달은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1831년부터 죽을 때까지 파리의 앙기앵(Enghien) 요양원에서 천한 일을 하면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고, 고해신부에게만 자신의 환시를 늘 말씀드리고 지도를 받으면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193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
기적의 메달성당 입구 "빈첸시오 성인"의 동상
[기적의 메달 성당] 성 빈첸시오 바오로와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아 수녀에 의해 새원진 자비 수녀회에 소속된 이 소성당은 파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도 많은 순례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성당 내 제대 위편 벽에는 성모의 첫번째 발현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정면에는 메달과 같은 모양의 성모상이 있다. 우측에는 두번째 발현 모습을 조각한 성모상이 있으며, 그 밑에는 사망 후 57년이 지나 시복을 위한 시신 발굴당시 (1933년)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수녀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기적의 멜달 모양] 타원형으로 된 이 메달의 전면에는 죄를 상징하는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상태로 두팔을 벌리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조각되어 있다. 그 주의에는 이미 언급한 대로 "오" 원죄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십자가가 "M"이라는 글자를 들어올리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M"은 성모 마리아 즉 예수의 십자가와 수난의 신비에 깊이 동참하고 있는 성모님을 상징 한다. 그 밑에 두개의 심장, 즉 왼쪽의 가시관에 둘러쌓인 것은 예수 성심, 오른쪽의 칼에 찔린 모양을 한 것은 성모 성심을 의미한다. 또한 그 주위에는 12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예수의 12제자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도가 될 것을 권고 하는 것으로 해석 된다. 이 메달은 신덕, 망덕, 애덕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가톨릭 교회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하 기념관 내 석판위에 한국 순교자 성인 103인의 명부가 적혀 있다.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릴락 의 유리로 만든 관
성녀 카타리나 라보레의 유리로 만든 관
프랑스에서 온 사제들은 조선인 사제를 양성 하려고 소년 셋을 뽑아 중국 마카오로 보냈고, 그 중 김대건이라는 소년이 1845년, 조선 최초로 사제가 되어 돌아왔다. 사진 중앙의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분이 성인 김대건 사제이시다
외방 전 성당 내 제대 앞
천상 모후의 관을 쓰신 성모 자상
천상 모후의 관을 쓰신 성모 상
외방 전교회 건물과 정원
"죽음의 문" 앞에 보이는 저 문을 나가면 살아서는 돌아 올수 없다 하여 죽음의 문이라 부른다 한다.
성인 김대건 사제와 정하상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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