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다의 음악편지] 음악으로 다가가는 묵주기도의 신비
은은한 촛불 아래 묵주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엮어 바치는 기도…. 우리의 마음에 언제나 고요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묵주기도입니다. 탄생부터 성령강림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신비를 성모님과 더불어 묵상하며 바치는 이 기도는 긴 역사를 갖고 있고, 그 긴 역사 속에서 특히 어려운 일과 맞닥뜨린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 왔습니다. 17세기를 살았던 하인리히 비버(Heinrich Biber, 1644~1704)라는 작곡가에게도 묵주기도는 의미가 있는 기도였는데요. 그가 남긴 일명 <미스터리 소나타>가 바로 그 기도의 산물입니다.
비버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집 <미스터리 소나타>은 <묵주 소나타>라고도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집이 묵주기도에서 묵상하는 신비(미스터리), 즉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그리고 영광의 신비에 따라 총 15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필사본은 단 한 개만 살아남아, 현재는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데요. 그 악보를 살펴보면, 15개 소나타 서두에는 각각의 신비를 묘사하는 정교한 동판화가 삽화로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나타 10번을 보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과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성모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새긴 동판화가 악보 가장 앞쪽에 장식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이 곡이 고통의 신비 제5단‘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음악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스터리 소나타>의 필사본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 작품 안에 ‘포위된 빈’, ‘터키군의 전진’같은 표제가 붙은 악장들을 발견했고, 이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의 하나로 1683년 터키군의 빈 침공을 꼽습니다. 한편 필사본 맨 앞에는 비버의 고용주였던 잘츠부르크 대주교 막시밀리안 간돌프에게 바치는 헌정문이 있습니다. 간돌프 대주교는 묵주기도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어서 잘츠부르크의 로사리오회를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한 학자는 이 로사리오회가 열리던 곳에서 비버의 <미스터리 소나타>가 처음 연주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이 작품집의 사본엔 정식 표지가 없고 따라서 제목도 없습니다. <미스터리 소나타>란 제목은 이 작품이 묵주기도와 구성을 같이하고, 각각의 신비를 묵상하고 있기 때문에 후대인들이 붙인 것입니다. 작곡가 비버가 붙였을 이 작품의 정식 제목은 말 그래도 ‘미스터리’로 남은 셈인데요.
음악적인 면에서 이 작품을 신비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스코르다투라(scordatura)라고 하는 조율방법입니다. 일반적으로 바이올린의 조율은 5도 간격으로 g-d-a-e음으로 정렬하게 되는데, 비버는 여기에서 벗어나는 변칙적인 조율로 각각의 소나타가 저마다 색다른 음색과 분위기를 드러내도록 만들었죠. 예를 들어, 소나타 10번의 악보를 보면, 동판화 옆쪽으로 이 곡은 g-d’-a’-d”로 조율하도록 표시가 돼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조율해서 활을 그으면, 연주자의 입장에선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음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연주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고 하네요.
한편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에 해당하는 15곡의 소나타가 모두 끝나고 나면, 피날레 음악으로 <파사칼리아>라고 하는 변주곡이 등장합니다. 필사본 악보를 보면 파사칼리아 첫머리에는 천사를 그린 동판화가 들어있는데요. 이 삽화를 통해 학자들은 이 파사칼리아가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을 위한 음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곡이 15개의 묵주 소나타와 함께 묶여져 있는 것이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요. 음악적인 면에서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악성과 기교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전체의 백미로 꼽히죠.
전체를 연주하는 데 두 시간이 넘는 대곡이어서, 연주하기도, 듣기에도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음악입니다. 하지만 묵주를 좀 더 가까이 하게 되는 10월, 음악과 함께 묵주기도의 신비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성모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영성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평신도, 제41호(2013년 가을), 양인용 아가다(KBS 1FM <새아침의 클래식>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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