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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 (1)

by 파스칼바이런 2015. 1. 27.

[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 (1)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요 중심이신 그리스도 신비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 없이 그리스도를 언급할 수 없다”라고 데살로니카의 시메온은 말했습니다. 이처럼 제대는 전례 거행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1코린 10장 21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교의 제대는 ‘주님의 식탁’입니다. 제대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제직을 통하여 인간 구원과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루는 데 필요한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식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중심점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도 제대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전례 거행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제대이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예배에 있어 그 중심이 됩니다. 이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제대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대가 중요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제대의 변화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대 :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곳

 

우리 신앙의 중심을 이루면서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 되는 미사 곧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신자들은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박해 시대에는 신자 가정집에 모였고 종교 자유를 얻고 나서는 교인들 모임을 위한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곧 성당입니다. 성당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기리는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한 공간이었기에 당연히 제대가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위에서 성찬 전례가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제대가 차지하는 자리가 각별하였기에 교회는 예로부터 제대에 특별한 존경심을 드러내 왔습니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식탁과 같은 형태였으나 점차 돌로 만들어 그 품위를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즉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생명의 물이 솟아나오는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기에는 돌제단이 적합하였고, 이에 따라 제대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심도 커졌기 때문에 항구적인 제대를 선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돌 대신 나무로 만들 경우에도 축성한, 십자가가 다섯 개 새겨진 돌판을 나무 제대 위 홈에 안치할 정도로 제대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져 왔습니다. 8세기까지 제대의 모양은 아주 단순하였습니다. 하지만 순교자 무덤 위에 성당을 세우고, 그 중심에 제대를 세우면서 순교자의 유해 또는 유품을 제대와 연관시키게 됨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해졌습니다.

 

제대에 성인의 유해 또는 유물을 모시는 관행은 1596년 교회법으로 확정되었으나, 지금은 성인의 유해와 상관없이 제대를 축성하여 사용합니다. 16세기까지 성체를 모시는 감실은 성당의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자리를 잡았지만, 16세기 이후 제대 위 또는 제대와 가까운 곳에 감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를 장식하기 위한 꽃, 초, 십자가를 위한 자리도 16세기 이후에나 등장합니다. 원래 초는 빛을 밝히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으며, 11세기 이후 제대 근처에 놓이면서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이고, 꽃은 16세기 이후에나 제대에 놓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성당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요, 또 그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곳이 제대인 까닭에 성당의 중심은 언제나 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돌로 만든 제대는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대가 그리스도의 무덤을 상징한다거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드러낸다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제대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구원의 계약을 갱신하는 장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대는 주님의 최후 만찬, 하늘나라의 잔치가 거행되는 식탁이기도 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미리 천상 잔치를 맛보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 바로 제대입니다. 이처럼 제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온 신도가 같이 친교의 식사를 나누는 곳이며 그리스도의 제사가 바쳐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성당을 축성하는 예식 때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제대 축성입니다.

 

이처럼 제대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대에 걸린 그림이나 조각, 그 위에 놓인 초나 제대 주위를 장식한 꽃을 보고 감탄하고, 제대 자체보다 여러 장식들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런 요소들은 제대로부터 우리 마음을 멀리하게 하는 것으로서 중세 말에나 제대 근처에 등장했던 것들입니다.

 

 

성당의 중심인 감실?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므로 성당 안에 들어설 때 제대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 옳다고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을 일깨우지만 실제 많은 본당에서는 제대가 아닌 감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전례 중에는 제대가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전례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감실이 중심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당의 중심이 때에 따라 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나라 성당들 구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즉, 감실이 제대 뒤 성당 벽 중앙에 놓여 있거나 아니면 제대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대와 감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오늘날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요?

 

 

감실에 관한 간단한 역사

 

제대와 감실 사이에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난 까닭을 알려면 먼저 감실의 존재이유와 그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생겨난 아주 이른 때부터 미사 중에 축성한 빵을 보존하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나 병에 걸려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지금처럼 성당이 있던 것은 아니고 예배드리기에 적당한 가정집에서 미사를 거행하였기 때문에 성당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제의 집에 성체를 보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됨에 따라 성당이 건축되었으나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는 여전히 성당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8세기의 문헌에는 성체가 제의방에 보관되어 있음이 나타납니다. 미사 중에 축성한 빵을 쉽게 보존하고 미사 밖에서 사용될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 아마도 제의방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신심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천사주의” 또는 “윤리적 엄격주의”라 불릴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죄인의 마음으로 어찌 성체를 모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서 미사 중에 영성체를 멀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미사는 라틴어로 바쳤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드려지는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성찬례 자체보다는 대중 신심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미사 중에 축성된 빵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성체 안에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다는, 성체는 그 자체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신자들의 마음을 잡아 당겼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영성체는 하지 않고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영광을 갖고자 열망했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열망은 결국 성찬 전례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 신자들이 볼 수 있게 받들어 올리는 예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신 성체를 성당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 모시고 싶어 하여 그때까지 성당의 중심 자리에 놓여 있던 제대 위에 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실은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제대를 물리치고 성당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감실에는 화려한 장식이 따름은 물론, 예수님이 계심을 알리기 위해 언제나 빨간 등을 켜두는 관행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월간빛, 2015년 1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