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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박물관 문화 순례]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

by 파스칼바이런 2015. 10. 12.

[박물관 문화 순례]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

‘라파엘호’ 본뜬 외관… 김대건 신부 친서 등 전시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5-09-20 [제2962호, 13면]

 

 

▲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 전시된 김대건 신부의 초상들.

김대건 신부에 대한 공경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충남 당진시 우강면에 위치한 솔뫼성지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솔뫼에서 태어나 16세 때 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공부한 후 1845년 24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1784년 천주교가 한국에 수용된 이후 61년 만에 첫 사제가 서품된 순간이었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솔뫼에는 ‘대건당’(大建堂)이라는 이름으로 생가가 복원돼 있고,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대부분 ‘솔뫼성지’하면 김대건 신부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솔뫼 전체의 모습은 가려져 있는 형편이다. 김대건 신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 아니라 솔뫼 일대에 널리 확산된 내포 천주교의 역사 안에서 탄생했다. 김대건 신부의 신앙은 솔뫼에서 살던 선조들의 모범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의 집안에서 4대에 걸쳐 순교자가 나온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역사 어린 장소이기에 작년 8월 아시아 젊은이들의 큰 축제인 아시아 청년대회(AYD) 개막식이 솔뫼에서 열렸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를 방문하였다.

 

솔뫼성지에는 2006년에 건립된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이 있는 건물은 멀리서 보면 배 모양으로 돼 있다. 김대건 신부의 일생에 있어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꼽히는 서해바다 항해 때 사용한 라파엘호를 떠올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앞부분은 김대건 신부 기념 성당이고, 뒷부분이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위에서 말한 솔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그동안 그려진 김대건 신부의 초상들이 눈에 띈다. 비록 실물이 아닌 상상에 의한 초상들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김대건 신부가 많은 사람들의 공경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상들이 걸린 모퉁이를 돌아서면 솔뫼가 속해 있는 내포 천주교를 소개하는 장이 나온다. 내포(內浦)는 순수 우리말로 ‘안 개’의 한자 표현인데 ‘안쪽으로 깊이 굽어 있는 바닷가’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솔뫼 주변은 바닷가였고, 그 일대에 천주교가 번성하여 내포 신앙공동체가 형성됐다. 여사울, 신리, 배나드리, 신평 원머리 등 솔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지들이 그 역사를 잘 말해준다. 이 장소들과의 연관성 안에서 솔뫼를 볼 수 있도록 조선시대의 지형을 복원한 모형과 지도가 전시돼 있다.

 

내포지역에 대한 개관 다음으로 김대건 신부 집안의 가계가 소개된다. 짧은 글이지만 내포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간 그 집안의 ‘시간’을 읽어낼 수 있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 그림들은 그 신앙 역사가 한 인간을 통해서 세상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대건은 25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육로와 해로를 통해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올곧은 마음으로 살아간 분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전시물은 김대건 신부의 행적과 순교에 관련한 활동도, 모형도, 물품들이다. 진품이 아닌 사본들이지만 그 흔적을 느끼는 데 도움을 준다. 그다음 장소에 마련된 전시물은 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들이다.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쓴 편지 중 19통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분이 살던 시대는 지금처럼 규격이 일정한 종이가 흔하지도 않았고, 김대건 신부가 조선과 중국을 넘나들며 분주한 중에 구할 수 있는 종이에 쓴 편지들이어서 용지의 크기와 질이 일정하지 않다. 이 전시실에는 그것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친필 서한의 원본 크기 그대로를 복사해 전시했다. 편지가 라틴어로 쓰여 있어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념관에는 영상실도 마련돼 있다. 입구에 있는 안내자에게 부탁하면 내포 천주교와 김대건 신부의 역사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 영상실 앞에 기획전시실이 있다. 기념관의 마지막 공간인 이곳에는 선종한 사제들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전구에 힘입어 오늘날 한국교회에 풍성한 사제성소가 생겨났다고 많은 신앙인들이 믿고 있다. 그 첫 사제의 후배들이 뒤를 이어 활동하며 남겨놓은 발자취를 이 공간에서 볼 수 있다.

 

선종 사제들을 위한 이 전시실의 제목은 ‘달릴 길을 다 달리고’이다. 사도 바오로가 남긴 말씀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이 전시실에는 서울대교구 제9대 교구장이며 대전교구 초대 교구장인 라리보 주교, 대전교구 제2대 교구장 황민성 주교, 파리외방전교회 페랭(백문필) 신부, 대전교구 백남익 몬시뇰, 유영소 신부, 유인성 신부, 정용택 신부의 유품과 금사리본당에서 사용하던 전례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분들의 흔적을 보면서 내가 하느님을 향해 달려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졌으면 한다.

 

기념관 통로에는 임시로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관련 사진들이 보인다. 작년 그분의 솔뫼 방문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현실화된 놀라운 사건이었다. 로마에 있는 교황님이 외적으로 보면 별로 보잘것없는 이 장소를 방문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것은 조선시대 솔뫼 일대 내포지역에서 확산된 신앙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솔뫼와 내포지역 천주교의 역사, 나아가 현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의미도 되새길 수 있다.

 

※ 문의 041-362-5021 대전교구 솔뫼성지

 

 

▲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 내에 있는 김대건 신부 생애 그림.

 

▲ 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

 

▲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 기획전시실에 전시된 라리보 주교 유품.

 

▲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 밖 프란치스코 교황 기념물.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 사진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