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다의 음악편지] 쇼팽의 걸작들
2015년은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해였습니다. 지난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리나라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쇼팽 콩쿠르가 얼마나 대단한 대회인지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짐머만, 라파우 블레하츠 등 이 콩쿠르의 주요 역대 우승자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즉,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들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습니다. 이 대회의 우승자로 올해는 한국의 스물한 살 청년 조성진이 당당하게 그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죠.
이 놀랍고 기쁜 소식에 저는 뒤늦게나마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던 이번 쇼팽 콩쿠르 실황을 찾아서 보게 됐습니다. 과연 조성진 우승자는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더군요. 그가 결선에서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다섯 번도 넘게 들으면서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치 스토커처럼 저는 그가 결선에 오르기까지 연주한 본선 1, 2, 3차의 다른 동영상 클립도 찾아보고, 이번 콩쿠르에 관련한 여러 자료들을 검색해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사이트에서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장 카타지나 포포바-지드론(Katarz yna Popowa-Zydroń)이 남긴 아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You are young and amazing artists. If you love music truly and do not care only about career, this unpleasant moment can be valuable for you. The artists need all kinds of experiences. These sad ones even more. Chopin was not a happy person and his masterpieces were not the results of being happy. Please take these results and follow your artistic path, build your personalty and success will come. You do not need to look for it, it will find you.
여러분들은 젊고 뛰어난 예술가들입니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커리어를 쌓는 데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지금의 이런 결과도 당신에게 소중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슬픈 경험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쇼팽만 하더라도 그는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고, 그의 걸작들은 행복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부디 이번 결과를 잘 받아들이고, 예술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세요. 성공을 애써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길을 걷다보면, 성공이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결선에 오르지 못하고 아쉽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의 글이었습니다. 마음이 왠지 이상해졌습니다. 그래서 입상을 하지 못한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동영상도 하나씩 찾아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결선 직전의 본선 3차에 오른 스무 명 중에는 조성진 외에도 한국인 참가자가 두 명이 더 있더군요. 비록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반짝이는 재능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까지 겸비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진지한 자세로 쇼팽의 음악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죠. 그들이 이번 결과를 발판으로 삼아 더욱 더 열심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가기를, 저도 함께 응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 해가 또 기울어 갑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좋았던 순간, 아찔했던 일, 그 하루하루를 오선지에 음표로 기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음악과 닮아 있을까요? 쇼팽의 걸작들이 행복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장의 말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행복하려고 너무 애쓰다보니 오히려 행복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던 거 같아요. 다가오는 한 해는 조금 더 슬기롭게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어떤 크고 작은 일들도 모두가 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고마운 시간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클래식 음악 입문자를 위한 쇼팽 음악 추천
(1) 에튀드 Op. 25 no. 11 ‘겨울바람’ <겨울바람>은 곡의 선율이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제목이다. 바람이 부는 모습을 화려한 비화성음들과 빠른 속도로 쏟아냈기 때문에 상당한 테크닉을 요구한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2008)>에도 이 곡이 등장한다. 김명민이 연기했던 강마에가 독일 유학 시절 연주했던 <겨울바람>은 라이벌 정명환과의 대결구도로 영상에 함께 등장한다. 곡의 드라마틱한 표현력과 함께 주인공의 절박한 심경이 묻어난다.
(2) 환상 폴로네즈 Op. 61 쇼팽의 건강이 악화되고 사랑하는 연인 조르주 상드와의 이별을 앞두고 있었던 1846년 여름 완성한 곡이다. 쇼팽이 작곡한 폴로네이즈 작품 중 마지막 곡이며, 격렬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움 속에 쇼팽이 생애 후반에 견뎌내야 했던 외로움과 고통이 잘 녹아 있다.
(3) 피아노 협주곡 2번 Op. 21 쇼팽이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약 1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성악전공 여학생 콘스탄치아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2악장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쇼팽은 소심한 성격 탓에 그녀에게 고백 한 번 못하고 폴란드를 떠났고,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죽고 난 후에야 모리츠 카라소프스키가 쓴 쇼팽 전기를 읽고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평신도, 2015년 겨울호(VOL.50), 양인용 아가다(KBS 1FM <새아침의 클래식>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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