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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자비의 성모 (1) ‘블라디미르의 성모’

by 파스칼바이런 2016. 11. 28.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자비의 성모 (1) ‘블라디미르의 성모’

가톨릭신문 2016-11-27 [제3021호, 13면]

 

 

‘블라디미르의 성모’, 비잔틴 이콘, 12세기,

러시아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미술관.

 

 

이 성화는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 이콘(Hodegetria)의 한 변형으로, 어머니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애정과 친밀감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뺨과 예수님의 뺨을 마주 대고 힘 있게 포옹하고 있고, 오른팔로 아기 예수를 받치면서 왼손은 예수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는 우리를 위한 중재의 기도를 바치고 계신다. 아기 예수는 한 손으로 어머니 마리아의 목을 잡고 있다. 또 한 손으로는 어머니의 수건(마포리온)을 힘 있게 잡아당기고 있고, 허리를 구부려 마리아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이 성화에서 보여주는 마리아와 예수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신비적인 일치를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제작된 지 오래되고 여러 차례 화재와 잦은 보수를 거치면서 성모님의 겉옷이 검게 보여, 한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이를 ‘검은 성모’라 부르지만 모스크바에 보관된 원화를 보면 검은색이 아닌 짙은 갈색임을 알 수 있다.

 

이 형태의 이콘은 9세기에서 10세기경에 생겨나 비잔틴 제국과 러시아에까지 확산됐다. 이 성화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져 1131년 키예프로 가져왔는데,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크리소베르게스(Chrysoberges)가 유리 돌고루키(Yury Dolgoruky)대공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후 1155년 안드레이 보골륩스키(Andrey Bogolyubskiy)대공이 블라디미르라는 도시에 이 이콘을 가져가 보관하게 되면서 ‘블라디미르의 성모’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395년 8월 26일 모스크바가 타타르의 공격을 받게 되자 바실리 1세 대공은 이 블라디미르 성모 이콘을 모스크바로 옮겨와, 성화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도움을 청했다. 이때 큰 전투 없이 기적적으로 적들이 퇴각하면서 성화는 더욱 유명해졌고, 모스크바 사람들은 이 이콘을 크렘린의 성모승천 성당에 모시고 자신들의 수호자로 공경하기 시작했다. 이후 1451년과 1480년 타타르 무리의 침입 때도 반복적으로 이 성모님의 성화를 통한 중재의 기도가 승리로 이어졌다. 이에 러시아에서는 해마다 3회, 즉 5월 21일, 6월 23일, 8월 26일에 블라디미르의 성모를 기념하면서 러시아의 수호자로 공경하고 있다.

 

이후 블라디미르의 성모 성화를 근거로, 톨가의 성모와 돈의 성모, 페오도르의 성모, 야로슬라블의 성모, 꼬르순의 성모,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 등 여러 변형된 이콘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이 이콘들의 공통된 모습은, 모두 성모님과 아기 예수가 뺨을 마주 대고 있는 형태로 제작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이콘들을 통틀어 ‘자비의 성모’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