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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경의 세계] 왕국분열 (1)

by 파스칼바이런 2017. 7. 15.

[성경의 세계] 왕국분열 (1)

 

 

금송아지를 세우고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예로보암 (1792, 프라고 나르 作)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급속히 약화되고 분열한다. 북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라진 것이다. 북쪽 10지파는 새 임금으로 예로보암(Jeroboam)을 선택한다(1열왕 12,20). 기원전 931년의 일이다. 따라서 왕국분열 역시 931년으로 보고 있다. 북쪽 왕이 즉위하자 분열은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주변국 간섭이 노골화된다. 솔로몬 때는 대등한 군대로 맞섰지만 약체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민족끼리 다투면서 군사력을 허비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쩔 수 없이 남과 북은 인근 강대국에 기대게 된다. 남쪽은 이집트 비위를 맞추었고 북쪽은 아시리아 눈치를 보며 다가갔다.

 

분열의 싹은 솔로몬 말기부터 있었다. 학정과 세금에 시달린 군중은 왕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기다렸던 것이다. 마침내 르하브암(Rehoboam)이 왕위에 오르자 지파들은 세금만이라도 낮춰주길 청했다. 하지만 새 임금의 반응은 차가웠다. 부왕께서 그대들의 멍에를 무겁게 하셨는데 나는 더 무겁게 하겠소. 부왕께서는 가죽 채찍으로 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칠 것이오(1열왕 12,14). 르하브암이 이렇게 나오자 북쪽 지파들은 분열을 서둘렀다. 강공에는 강공으로 맞선 것이다.

 

르하브암은 솔로몬과 암몬출신 나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1열왕 14,21). 나아마는 후궁이었다. 솔로몬은 40년간 다스렸고(1열왕 11,42) 르하브암은 41세에 왕이 된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나아마는 총애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마(Naama)는 즐겁다는 뜻이다. 자신의 아들을 끝까지 밀어붙여 후계자로 만들었으니 총명한 여인이다. 솔로몬은 암몬의 민족신 밀콤(Milcom)을 섬겼다고 성경은 전한다(1열왕 11,5). 나아마 영향이었을 것이다. 르하브암이 철권통치를 펴고 우상숭배에 빠진 것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재위 17년 동안 18명의 아내와 60명의 후궁을 맞이했으니(2역대 11,21) 호사스런 왕실이었다.

 

주님의 경고는 르하브암 5년에 일어난다. 이집트 임금 시삭(Shishak)이 침공한 것이다. 6만의 정예군을 앞세워 한순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과 왕궁을 약탈했다(2역대 12,3). 르하브암은 공물을 바칠 것을 약속한다.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다. 이후 르하브암은 몸을 낮추고 예언자의 충고를 듣는다. 시삭은 이집트 22왕조를 창시한 세숑크(Sheshonq) 1세로 보고 있다. 그의 가나안 침공은 나일 강 상류 테베(Thebe)에 있는 신전 벽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2017년 7월 2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교황 주일, 연중 제1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왕국분열 (2)

 

 

 

 

솔로몬이 죽자 12지파 대표는 르하브암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스켐에 모인다(1열왕 12,1). 예루살렘 북쪽 50km 지점에 있던 도시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대한 말씀을 들은 곳이며(창세 12,7) 이집트에서 모셔온 요셉의 유골이 안치된 곳이다(여호 24,32). 여호수아는 임종을 앞두고 12지파를 스켐에 소집한 뒤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이렇듯 스켐은 초기 이스라엘의 상징적 성지였다. 그런 이유로 르하브암은 이곳에서 솔로몬 후계자로 선언되었던 것이다.

 

북쪽 지파는 새 임금에게 부역과 세금의 경감을 청한다. 하지만 차갑게 거절당한다. 그러자 모두들 충성을 거부하고 돌아섰다. 르하브함은 부역 감독관 하도람을 보내 수습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돌로 쳐 죽였다(2역대 10,18). 분노의 표출이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르하브암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정예 18만을 선발해 징벌에 나서려 했지만 내부반발로 무산된다. 이로써 왕국분열은 기정사실로 되었다. 북쪽은 10지파 연합체였고 남쪽은 유다 지파 독주에 벤야민 지파가 참여하는 형태였다.

 

르하브암은 기회를 기다리며 북쪽 지파 응징을 준비했다. 하지만 재위 5년 이집트 침공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성전과 왕궁이 왕창 털렸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영화는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르하브암은 41살에 즉위해 17년간 다스렸고 기원전 915년경 죽었다. 아비얌(Abijam)이 왕위를 이었다(1열왕 15,1). 맏아들이 아닌데도 후계자가 되었다. 어머니 마아카 영향이었다. 르하브암은 어떤 아내나 소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고 성경은 전한다(2역대 11,21). 왕자가 28명이었지만 일찍부터 아비얌을 후계자로 지목해 뒤를 잇게 했던 것이다. 르하브암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아비얌이 왕위에 오를 때 북쪽은 예로보암 1세가 18년째 왕으로 있었다.

 

이후 남과 북은 네 차례 전쟁으로 크게 부딪친다. 첫 전쟁은 아비얌의 등극과 함께 시작되었다. 왕국통합이란 명분으로 북쪽을 공격한 것이다. 남쪽 40만과 북쪽 80만은 이스라엘 중앙산지 에프라임에서 맞붙었다(2역대 13,3). 수적으로는 남쪽이 훨씬 불리했지만 전투에서는 이긴다. 북쪽의 정예군 50만을 궤멸시킨 것이다. 이후 예로보암은 재기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죽음을 역대기는 이렇게 기록했다. 주님께서 그를 치시니 그가 죽고 말았다(2역대 13,20). 아비얌과 예로보암의 전쟁은 군사력이 아니라 주님의 개입으로 판가름 났다는 암시다.

 

[2017년 7월 9일 연중 제1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