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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9) 주님 세례 (하)

by 파스칼바이런 2018. 1. 31.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9) 주님 세례 (하)

옷 입고 두 손 모은 채 세례받는 예수, 인간적 면모 부각

가톨릭평화신문 2018. 01. 28발행 [1450호]

 

 

▲ 지오토 작 ‘주님 세례’, 프레스코화, 1304~1306, 이탈리아 파도바 스코로베니 성당.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주님 세례’, 템페라, 1442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베로키오, '그리스도의 세례’, 목판에 유화, 1472~1475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주님 세례 도상(圖像)은 주님의 세례 모습과 요한 세례자의 태도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네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 세례 장면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주님 세례 도상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성미술 도상에서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서열

 

예나 지금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전례 거행 장소와 전례 목적에 적합하게 성미술 작품을 배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2세기 사도 교부시대 문헌인 헤르마스의 「목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반드시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가 있어야 하고, 최후의 심판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도상에서는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성모 마리아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님과 사도들의 좌우 서열상 배열뿐 아니라 성인들의 서열 배치도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의 도상 서열은 전례력의 축일 급수에 따라 구약성경의 인물, 예언자, 증거자, 순교자, 동정녀 순으로 배치합니다. 또 수의 조화를 강조해 구약의 열두 예언자와 신약의 열두 사도, 구약의 이사야, 에제키엘, 다니엘, 예레미야 네 예언자와 신약의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 네 복음사가 등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869/870)에서 니콜라오 1세 교황으로부터 이교로 단죄받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시우스 총대주교는 예수님과 관련한 구세사(救世史)의 열두 장면을 성당 벽면에 꼭 그리게 했습니다. 그 열두 장면은 주님 탄생 예고, 주님 성탄, 주님 공현, 주님 봉헌, 주님 세례, 주님의 거룩한 변모, 라자로 소생,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주님 수난, 주님 부활, 주님 승천, 성령 강림입니다. 이처럼 주님 세례 도상은 구세사의 주요 사건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그려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주님 세례와 주님 수난을 대비시켜 구세사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세례는 이제까지의 죄스런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부터 새로 삶을 바꾸러 나선다는 뜻”이라며 “다시 말하면 그것은 죽음과 부활이요, 앞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님 세례 도상과 주님 수난 도상은 종종 좌우로 배치해 장식하기도 합니다.

 

그림에 나타난 ‘손’, 성부 현존을 상징

 

6세기부터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해석들이 주님 세례 도상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손’이 등장했습니다. 손은 천주 성부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손은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의 꼬리를 잡고 있거나 세례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손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왔다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성부의 목소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천주 성부를 상징한 손의 형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인 15세기 화가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 작품 등에도 표현되지만 12세기 이후 주님 세례 도상에서 점차 사라집니다. 대신 천주 성부께서 직접 얼굴이나 상체를 황금빛 구름 사이로 드러내며 등장하십니다. 이 도상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해 서방 교회까지 널리 확산했습니다. 또 이 시기부터 의인화한 요르단 강의 형상은 천사로 대치됩니다. 천사는 주로 둘씩 짝을 지어 등장하는데 물가에서 주님의 옷을 받쳐 들고 시중을 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14세기 때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성당에 그린 ‘주님 세례’ 프레스코화입니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과 비둘기 형상의 성령, 그리고 상반신을 드러낸 천주 성부가 중심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오른손으로 예수를 가리키며 당신이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성부께서는 왼손에 당신 외아드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그리스도 왕으로 재림하실 때 들고 오실 생명의 책을 안고 계십니다.

 

지오토는 알몸으로 요르단 강에 잠겨 세례를 받는 예수님의 모습과 요르단 강을 무덤의 봉분 모양으로 그린 것도 주님 세례 도상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요한 세례자와 대화하는 듯 두 손을 들고 몸을 요한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 세례자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하고 대답하시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합니다. 세례 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하신 말씀을 앞당겨 하신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오토의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요한 세례자의 옷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낙타 털옷에 분홍 망토를 걸치고 있습니다. 분홍 망토는 사순 제4주일에 사제들이 입는 분홍 제의를 연상시킵니다. 분홍색은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14세기 초부터 주님 세례 도상에는 또 한 번 변화의 바람이 붑니다. 주님께서 물속에 잠기지 않으시고 옷을 입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가 주님의 머리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는 장면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과거 이콘 화가들은 내적인 순결함과 초월적인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알몸을 선택했으나 이 시기 서방 교회의 화가들은 주님의 인간성을 강조한 듯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께 옷을 입혔습니다. 아마도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성미술에도 접목돼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표 작품이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가 1451년에 그린 ‘주님 세례’입니다. 원근법이 적용된 이 그림은 요한 세례자의 수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중심선으로 비둘기 형상의 성령, 예수님의 정수리, 이마, 코, 입술, 손바닥 사이, 배꼽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님 왼편에 손을 잡고 서 있는 세 천사는 믿음, 희망, 사랑을 상징한다고 일부 미술가들은 설명하지만 이들 세 천사가 입은 붉고 푸른 색 옷과 흰색, 분홍색 옷으로 짐작하면 각각 주님의 수난과 영광, 희생을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주님 오른편에는 한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로마 6,3)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