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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엘리야 (1)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열왕기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임금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여러 예언자의 이야기가 그 흐름을 끊으며 등장합니다. 다윗 때부터 활동을 시작해 솔로몬의 등극에 결정적 역할을 한 나탄, 예로보암에게 임금의 자리를 약속한 아히야, 르하브암 임금을 저지한 스마야, 예로보암 임금 앞에서 베텔의 제단을 무너뜨리는 무명의 예언자와 베텔의 나이든 예언자, 아합 임금 시대에 바알의 예언자들을 물리치고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만난 엘리야, 아합 임금의 패전을 예언한 미카야, 엘리야의 제자로 여러 이적을 하고 특히 나아만의 병을 치유한 엘리사,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활동을 시작한 저 유명한 이사야 등 여러 예언자가 활동하며 주님의 뜻을 전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른 삶을 살 것을 역설했습니다.
열왕기의 여러 예언자 중 가장 인상적인 예언자는 단연 엘리야일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은 주님(야훼)이시다.” 그의 이름에는 이미 주님께 대한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 이, 불타는 열정의 예언자, 그래서 마침내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 그토록 갈망하던 천상의 삶으로 넘어간 하느님의 사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도 모세와 함께 등장하는 엘리야,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야의 첫 일성은 가뭄의 선포였습니다.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1열왕 17,1) 이 가뭄은 삼 년 동안 지속됩니다(18,1). 샘과 시내가 마르고 풀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릅니다(18,5). 지독한 가뭄이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임금 아합의 죄 때문입니다. 아합은 단과 베텔에 세운 금송아지 앞에 나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아내 이제벨을 따라 우상 ‘바알’을 섬기고, 여신상 ‘아세라 목상’을 세워 주님의 분노를 샀습니다(16,31-33). 게다가 왕비 이제벨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하기까지 했습니다(18,4.13). 임금과 왕비의 이러한 행위는 백성마저 죄악의 길로, 곧 주님을 버리고 예언자들을 해치게 만들었습니다(19,14). 결국 주님의 분노가 그들이 사는 땅 위에 가뭄으로 내렸습니다. 주님을 저버리고, 비와 폭풍우의 신이라 불리는 바알을 찾는 이들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바알에게 아무리 빌어도 해갈의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그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분노’는 파괴와 파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일 전자라면, 땅이 아니라 사람에게 직접적인 재앙이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선택한 이들을 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이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누구신지 알게 하려고, 이 사건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참으로 주님을 알고 그분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가뭄을 선포한 엘리야는 곧장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몸을 숨깁니다. 크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그에게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날라다 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말라버리고 더 이상 거기서 지낼 수 없게 됩니다(17,1-7). 그러자 주님은 그를 시돈 지방의 사렙타라는 마을의 과부에게 가서 지내라고 하십니다. 가뭄으로 모든 것이 메말랐지만, 엘리야가 머무는 집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습니다(17,8-16). 엘리야가 머무는 개천이나 마을은 모두 이스라엘의 세력권 바깥입니다. 이스라엘의 배신은 주님의 분노를 불러왔고, 이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지역까지 고통에 시달리게 만들고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 예언자가 머무는 곳에는 빵과 고기가 있고, 밀가루와 기름이 있습니다. 게다가 죽음의 위협마저 거두어집니다. 사렙타의 과부의 아들이 숨을 거두자, 엘리야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 목숨이 되돌아오게 만들어 주십니다(17,17-23). 이스라엘이, 임금부터 백성까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살해하고 있을 때, 시돈 - 이민족의 땅, 바알이라는 우상의 본고장 - 에서는 주님의 예언자가 공경을 받고 주님께 대한 신앙이 고백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아니고, 당시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잃어버리고 천대 받던 여인, 바로 사렙타의 과부 입에서 그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야 저는 어르신께서 하느님의 사람이시며, 어르신의 입으로 전하는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17,24)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백성을 돌보아야 하는 임금에게 고통 받는 백성들은 관심 밖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과 노새’를 위해 물을 찾아 나섭니다(18,5).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재산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아, 언제나 사람들은 돌처럼 단단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찾는 부드러움으로 자신을 채우게 될까요? 아, 언제나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바라보게 될까요? 그런 기회가 올까요? 도대체 그 기회는 어디서 어떻게 얻어지나요?
이 상황을 바꾸어, 모든 고통을 거두고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주님은 당신의 예언자를 다시 파견하십니다. “가서 아합을 만나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18,1) 주님의 개입으로 모든 것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예언자 엘리야가 주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것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 유명한 카르멜 산 위에서의 대결(18,20-40)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2018년 9월 23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의정부주보 5-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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