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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시(詩) 읽어주는 신부] 시를 쓰며 자신의 운명과 삶을 견뎌낸다는 것은

by 파스칼바이런 2018. 11. 29.

[시(詩) 읽어주는 신부]

시를 쓰며 자신의 운명과 삶을 견뎌낸다는 것은

정희완 요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 안동교구)

 

 

천양희 시인

 

 

정직한 고백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시인을 선택하고 그의 시집들을 다시 읽는 일은 즐겁습니다. 이번 달에는 천양희 시인과 그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정했었습니다. 천양희 시인의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 2017)가 작년에 읽었던 시집들 가운데서 꽤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천양희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직소포에 들다』, 문학동네, 2004)을 다시 읽었습니다. 한 시인의 시집을 전체적 맥락에서 조망하며 다시 읽으면, 예전에는 잘 간파하지 못했던 그 시인의 사유와 정서의 궤적들이 조금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한 시인의 시에 대한 집중적인 읽기를 통해 사람과 삶에 대한 어떤 비의를 엿보는 것 같아 살짝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답답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인의 사유와 정서의 논리를 읽어내지 못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뭔가 강하게 와 닿은 느낌과 인상이 없었습니다. 시인의 문학적 성취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시인의 사유의 결이 단순하고 단조로워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시인에 대해서는 잘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천양희 시인을 선택했지 하는 후회마저도 들었습니다. (시인을 선정할 때 조금은 의도적으로 남자 시인과 여자 시인의 비율을 맞추려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시인들인 허수경, 김명인, 이성복, 최승자를 먼저 다루고 그 다음부터는 그때그때 제 마음에 떠오르는 시인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남녀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남자 시인 둘, 여자 시인 둘의 패턴으로 시인을 선정해왔습니다.)

 

시인의 시집을 다 읽고 나서(보통 한 시인의 시집을 세 번 정도 다시 읽기 한 후, 시인에 대해 글을 씁니다.) 한 주간의 시간이 지나도 쓰지 못하고 그냥 있었습니다. 왜 쓰지 못하고 있는지, 왜 쓰기를 자꾸 주저하고 있는지, 명쾌한 이유를 잘 찾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읽으니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해서인지. 아니면 시 읽기에서 감정과 정서의 측면보다는 사람과 삶에 대한 사유와 인식의 깊이라는 측면에 더 강조점을 두는, 제 안에 뿌리깊이 내려있는 일종의 지식인중심주의라는 악습 때문인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엊그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김소연 시인의 새 시집 『i에게』(아침달, 2018)를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한숨에 다 읽었습니다. 시에 드러나는 시인의 사유와 감정과 정서가 친숙하고 정겨웠습니다. 쉽게 공감의 반응이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왜 천양희 시인의 시들에 대해 제 반응이 처음에 그러했는지 말입니다. 아마도 제가 천양희 시인(1942년생) 세대의 여성들의 문법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세대 여성의 사유와 정서를 드러내는 글을 잘 읽지 못했습니다. 그 세대 사유와 정서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천양희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사유와 정서가 조금 낯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자의식과 자신의 사유와 정서를 본격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천양희 시인의 다음 세대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시대와 세대의 한계를 넘어 선구자적으로 자신의 사유와 정서를 표현한 여성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천양희 시인 세대 여성들의 글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 세대 여성들의 사유와 정서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과 정서보다는 사유의 인식에 더 많은 무게중심을 두는 제 성향 때문에 천양희 시인의 시에 대한 읽기가 저에게는 꽤 어려웠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당연히 내용의 부족함은 제 읽기의 미숙함에서 오는 결함들이지 천양희 시인의 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천양희 시인의 시 안에는 삶에 대한 직설적인 사유와 시에 대한 순정(純情)이 가득합니다. “모든 작품은 자서전이자 반성문이라”(「바다시인의 고백」)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어쩌면 이 직설과 순정이 저에게 어떤 불편함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시는 시와 삶에 대한 묵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의식이 시와 삶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삶에 대한 사유는 늘 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이숭원) 천양희 시인 역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만일 그들[책과 시]이 아니었다면 마음의 결가부좌를 어떻게 풀고, 마음의 빗장을 어떻게 열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나는 아직도 시를 믿습니다. 믿음으로 시에 순정을 바치고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고, 시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직소포에 들다』, p.69) 시인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쓰는 일이라고”(『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시인의 말에서) 믿고 있습니다.

 

시인의 개인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시와 글에 드러난 것으로 추측컨대, 시인은 여성으로서(아니 한 사람으로서) 평탄치 않은 삶을 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시선집 『단추를 채우면서』(시인생각, 2013)에 실린 시인의 연보에 한 시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사랑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으나 생활고로 나는 열망하던 문학마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뒷바라지 한 보람도 없이 모든 것을 잃고 결핵으로 각혈까지 할 정도로 참담한 시절이었다. 몇 년 동안 아이나, 나이드라지드를 먹으면서 투병했지만 32세에 혼자 몸이 되었다.” 그 이후 시인은 평생을 전업시인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혼자 살면서 시를 쓰는 여자”(『직소포에 들다』, p.51)로 규정하면서 책을 읽고 생각하며 시를 쓰는 일에 순정을 바치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천양희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운명의 무게를 버티고 견뎌온 것 같습니다.

 

천양희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조금은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단추를 채우면서」) “‘나에게 세 가지 한이 있으니/ 여자로 태어난 것과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니······’// 여자로 태어난 것이 세상이 오그라드는 한이라 하심에/ 여자로 태어난 나도 오그라들고/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회의라 하심에/ 조선의 후예로 태어난 나도 어찌할 수 없고/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 심장을 토해내는 일이라 하심에/ 누구의 아내가 되었던/ 내 심장도 함께 토해낼 듯하여”(「허난설헌을 읽는 밤」) 힘이 든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시에는 “불행한 출발,” “겨우겨우 헤쳐 나온 세월,” “실현하지 못한 삶에 대한 통절한 후회”에 대한 어두운 정서가 그늘져 있습니다.(『새벽에 생각하다』에 실린 김명인 시인의 발문에서) 시인은 “아픔은 늙을 줄도 모른다”(「독신녀에게」)고 “운명이란 누가 쓴/ 잔인한 자서전”(「운명」)이라고 탄식하기도 하며, “세상이 잘못 읽은 나의 生/ 수몰된 生/ 암매장된 生/ 누가 읽기도 전에 나를 써버렸다”(「아침마다 거울을」)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또 “우리들 생이 그렇듯/ 삐뚤삐뚤하거나 비틀비틀한 것이라고/ 중얼거”(「진로를 찾아서」)리며, 생은 눈물로 단련된다고 믿으며(「마음의 경계」),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사람같이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기도 합니다.(「물에게 길을 묻다 3」) “제 이름 부르며 스스로 울어봐야지/ 제 속의 비명을 꺼내 소리쳐봐야지”(마음의 지진) 다짐하면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 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바람을 맞다」)고 노래하며 생에 대한 자신의 결의를 다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고단한 운명과 생을 헤쳐가려는 의지적 애씀이 시인의 시들 도처에 직설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책과 시(시쓰기)에 의지하여 자신의 생을 건너가는 시인에게 자연은 또 하나의 위로며 구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직소포에 들다」와 「마음의 수수밭」은 시인이 거친 운명의 파도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자 떠난 여행 안에서 만난 마음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때 만난 수많은 산들, 강들, 들판들, 바다들, 어장들, 절간들, 오솔길들, 시내들, 골목길들, 촌부들··…· 그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낯선 세계로 남아, 낯설게 하기를 가르칩니다. 그들은 나를 일깨워준 고마운 선생이었습니다.”(『직소포에 들다』, P.14~15) 여행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자연을 통해 치유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물길에도 절망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고갯길을 내려오면 바닥이 다 보이는 시냇물 속 웅크리고 있는 조약돌에도 아픔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논둑길을 걷다 보면 하늘 한번 못 보고 고개 숙인 벼이삭에도 고뇌가 있을까 생각하면서”(「생각하면서」) 자연을 거닐다 보면 자연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앉는” 느낌도 들며 그래서 때때로 “맘속 수수밭이 환해”지는 느낌도 들기 때문입니다.(「마음의 수수밭」) 시인에게 자연은 “누구도 받아쓸 수 없는 대하소설 같은 것”이며 “활짝 펼친 눈부신 책”이기 때문입니다.(「불후의 명작」)

 

웃음과 울음이 같은 음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

빛이란 걸 알고 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

 

어둠이 얼마나 첩첩인지 빛이 얼마나

겹겹인지 웃음이 얼마나 겹겹인지 울음이

얼마나 첩첩인지 모든 그림자인지

 

나는 그림자를 좋아한 탓에

이 세상도 덩달아 좋아졌다

 

「생각이 달라졌다」는 시의 전문입니다. 노년의 천양희 시인은 조금 더 원숙해진 것 같습니다. 고통과 운명을 담담히 긍정하고 생의 그늘을 인정하고 수락하는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뒤편」) 거라는, “힘든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물에게 길을 묻다 2」)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그때가 절정이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지불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인은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년의 시인은 자신이 오직 시만 쓰면서 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문득”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란/ 나뭇잎 한 잎과 햇빛 한 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쓰고 쓰고 또 쓰는 일”(「한글비석로54길에서」)이라고 가난한 고백을 합니다. 자신의 평생이 그저 “생각에 기대 시를 생각”(「생각은 강력한 마약」)하며,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살아 온 생임을 절감하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시가 보여주는 것은 마음의 지도”(「시는 나의 힘」)라고 믿기 때문에, 그 마음의 지도를 그리며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으며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시인은 새벽에 홀로 깨어 숱한 생각을 하다가 시를 쓰며 살아온 자신의 평생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합니다.(「새벽에 생각하다」) 시집 도처에 시와 시쓰기에 대한 헌사가 가득합니다.

 

“시에 대한 엄숙주의와 자연에 대한 경건함”(이숭원)과 정신의 고귀함을 믿는 태도가 점점 두드러집니다. 시인에게 “시는 정신의 지문입니다.”(『직소포에 들다』, p.162)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시를 쓰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 어쩌면 제가 왜 조금은 불편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엄숙주의, 경건주의, 정신의 고귀함, 이런 고전적 미덕들이 저에게는 조금 어색하고 낯설었는가 봅니다.

 

천양희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드는 약간의 아쉬움은 시인의 시가 주로 자기 삶의 운명과 고통에 대해, 자신의 슬픔과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타인과 세상의 일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부재를 자주 발견합니다. 물론 자기 생의 무게와 운명의 중력이 버겁고 힘들어서였을 것입니다. 시인의 시 속에 첫 운명의 엇갈림에 대한 회한이 가끔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 간에 그자는 시인이다.”(「그자는 시인이다」) “정작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변명은 구차하고 사실은 명확하다는 것을.”(「정작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몇 번이나/ 그 사람 만나지 말았었기를 바란 적 있나.”(「시가 나를 시인이라 생각할 때까지」) 시인의 시 속에서 운명을 버티고 견디는데서 오는 고집스러움을 살짝 엿봤기에 제가 조금 답답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천양희 시인의 시 가운데서 타인의 삶에 대해 담담한 형식으로 서늘하게 서술한 「다행이라는 말」이 최고의 절창입니다.

 

시만 쓰며 평생을 살아온 천양희 시인의 장인의식은 분명 아름답고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깊이 천착하며 그 일을 통해 자긍심을 갖는 것은 매력적인 모습입니다. 가끔 신학생들에게 저는 말합니다. 우리 생은 일과 사랑과 놀이(취미)를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입니다. 사제의 삶 역시 어떻게 사제직을 수행할 것인지, 사랑의 변주와 확장성에 어떻게 기댈 것인지, 어떤 소박하고 건강한 놀이를 즐기면서 살아갈 것인지에 달려있다고 말입니다. 사제직에 대한 자긍심을 현실에서 사제가 갖는 신분과 지위와 권위에서 얻기보다는 사제직의 본질을 수행하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타인을 희생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놓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사제직의 본질이며 자긍심의 원천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 시대의 사제들이 사제직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바른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를 천양희 시를 읽으면서 뜬금없이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사제직 수행이 자신의 운명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 되고 또 시를 쓰는 일처럼 아름답기를 감히 희망합니다.

 

[월간빛, 201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