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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가장 비싼 권리, 주거권 이정훈 필립보 네리(신문취재부 기자) 가톨릭평화신문 2018.12.25 발행 [1495호]
‘지옥고’.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의 줄임말이다. 어쩌다 이런 말까지 나왔을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 주거권은 그 불평등 정도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다. 주머니 가벼운 청년들, 근근이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숙인과 어르신 등 주거 약자들에겐 주거권이 없다.
본지가 대림시기 동안 만난 이들도 대부분 주거 약자들이었다. ‘비주택’으로 분류된 쪽방, 고시원, 판잣집, 비닐하우스까지. 그들은 의식주 중 어느 하나도 인간답게 누릴 수 없었다. 정부는 주거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면서 높은 보증금 청구서부터 내민다.
모든 국민에겐 안정된 집에서 최소한의 삶을 일굴 주거권이 있다.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주택 상품화’ 풍조에 따라 집은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가장 비싼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소득 상위 1%가 소유한 주택은 90만 채가 넘고, 은행은 ‘집 담보 전당포’로 전락했다. 서울 전역에서 ‘새집’ 공사 중인 정비 촉진 구역들은 가난한 이들에겐 강제 퇴거지일 뿐이다. 비주택에 사는 인구가 40만 명이 넘고, 지옥고에서 나 혼자 사는 빈곤 청년(19~34세)도 전체의 46%(2016년)에 달한다.
부동산 정책은 집값을 잡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있는 사람’들만 집 사도록 부추기는 분양 정책, ‘없으면 저리 가라’는 식의 강제 퇴거 조치같은 구시대 제도는 폐기처분할 때다. 도시 야경에 화려한 불빛만 보인다고 해서 그게 다 발전상이고, 희망이지만은 않다. 사이사이 불 꺼진 절망과 고독과 소외도 볼 때다. 우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주거권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일하려면 따뜻한 곳에서 밥 한 끼라도 제대로 먹고 지내야 할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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