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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때 그 순간"..그림으로 그린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기억

by 파스칼바이런 2018. 12. 29.

"아, 그 때 그 순간"..그림으로 그린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기억

한겨레신문사 l 2018.12.21. 16:26

 

 

민주화운동 기록화 21일 오후 광주YMCA 전시

김경남·나상기·정상용·윤기현 4명 고희연 겸해

광주전남6·10항쟁기념사업회·광주민예총 등 추진

 

 

나상기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른 뒤 1975년 2월 석방됐을 때 모습을 그린 작품. 조정태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전두환 신군부의 5·18 학살에 맞섰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기억을 담은 그림들이 전시된다.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사단법인 광주·전남6·10항쟁기념사업회, 광주민족예술단체총연합은 21일 오후 4시 광주와이엠시에이(YMCA) 무진관에서 ‘2018 민주인사 합동 고희연’을 연다. 고희연의 주인공은 김경남(광주기독교연합·목사)·나상기(농민운동가)·윤기현(동화작가)·정상용(전 국회의원) 등 4명이다.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들이 네 명의 동갑내기 민주인사들의 고희를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고희연엔 4명의 민주인사들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담은 그림(기록화) 4점을 전시해 눈길을 모은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담은 2점은 구치소 안의 기억과 석방 당시의 추억을 담았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2점은 당시 시민군 항쟁지도부의 중요한 회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조정태(52) 화가는 민청학련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나상기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의 기억을 담았다. 나 고문은 20대 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회장을 맡아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이듬해 2월 대통령 특별조치로 석방됐다. 1970년대 후반 기독교농민회를 조직하고 농민운동에 참여해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작품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나 고문을 이광일 목사 어머니가 안아주는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1980년 5월 24일 밤 5월항쟁에 참여했던 와이팀 인사들이 김상집이 모는 스클버스를 타고 보성기업으로 이동해 도청 수습대책위를 민주투쟁위로 전환하기 위한 대책을 짜는 회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 조정태

 

조정태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요한 역사적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또다른 작품은 1980년 5월24일 밤 5월 항쟁에 참여한 와이(Y)팀 가운데 주요인사들이 모여 김상집 상임이사가 모는 대학 통학버스를 타고 보성기업으로 이동해 회의를 여는 순간이다. 김 상임이사는 “당시 시민군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 수습대책위원회를 장악해 민주투쟁위원회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을 짜는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조정태 작가는 “옛날 사진이 남아 있는 경우엔 인상착의를 잡아내기가 쉽지만, 5·18 당시 대책회의 등은 개인의 젊었을 때 모습을 담은 사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역사와 동행했던 민주인사들의 개인의 삶을 미시적으로 복원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26일 오후 6시께 시민군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 3층에서 열렸던 시민학생민주투쟁위원회의가 대책을 논의하던 모습을 그린 작품. 김상집

 

정상용 전 국회의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을 하루 앞두고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마지막 날 밤 회의 모습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김상집 사단법인 광주·전남6·10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80년 5월26일 오후 6시께 옛 전남도청 3층에서 정상용 선배를 위원장으로 하는 시민학생민주투쟁위원회의가 결사항전을 결의하기 위한 회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림 속 참석자는 오른쪽 앞에서부터 정해직(민원실장), 김종배(수습대책위원장),구성주(보급부장), 이양현(기회위원),김영철(기획실장)이다. 중앙이 정상용 위원장, 탁자 왼쪽 앞에서부터 윤강옥(기획위원), 허규정(부위원장),박남선(상황실장),윤상원(대변인),김준봉(조사부장)이 보인다. 창문 앞 엠16(M16)을 들고있는 이는 윤석루 기동타격대장이다. 또 한사람은 윤기현으로 당시 회의장을 오갔다. 윤씨는 농촌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린 <서울로 간 허수아비>(1982), <보리타작 하는 날>(1999) 등을 낸 동화작가이자 농민운동가다.

 

김 목사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가담자로 체포돼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돼 문국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상임이사와 인연을 담은 장면. 김상집

 

김경남 목사는 서울대 법대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김 목사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가담자로 체포돼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던 당시 창문 밖에서 문국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상임이사가 “경남이 형, 경남이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목사는 “당시 ‘통방’을 하며 여러가지 소식을 듣게돼 그 때부터 징역이 살만해졌다”며 당시 순간을 인생의 가장 강렬한 추억으로 담길 원했다. 김상집 상임이사는 “독재에 항거하고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기억을 기록화 형식으로 그려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낼 생각이다. 우선 올해 고희를 맞으신 선배들의 기억을 담은 기록화를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