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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1.13 발행 [1498호]
▲ 한민택 신부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죄 없으신 분께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루카 3,3)를 받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우리도 요한처럼 그분을 만류해야 하지 않을까요?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전하며,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향해 귀를 기울이도록 초대합니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세례는 무엇보다 그분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명백히 드러내 보이는 사건입니다. 그분께서 ‘사랑하는 아들’로 불린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 많은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죽을 운명, 비천함과 나약함을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들인 그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또한 그분께서 장차 선포하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미리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하느님 나라란, 정치적 혁명을 통해 실현할 나라도, 마술과 같은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악으로 물든 세상으로부터 구해내는 환상의 나라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나라입니다. 죄와 악이 난무하고 온갖 위험과 시련이 도사리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바로 우리의 삶 안에서 실현될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인간의 가장 깊은 열망에 맞닿아 있는 나라입니다. 온갖 종류의 속박으로 인간을 옭아매고 무거운 짐으로 내리누르는 죄와 악의 현실로부터 근본적으로 해방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간절한 바람에 답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죄 많은 인류의 역사 한가운데로 뛰어드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세례는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도록 합니다. 세례는 단순한 예식적 절차도, 지나온 과거를 마술처럼 깨끗이 씻는 정결례도 아닙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며, 그분과 함께 묻히고 그분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로마 6,3-4 참조) 세례를 통해 신앙인은 죄로 각인된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죄 속에서 간절히 열망하던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은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이 아름답고 장엄한 ‘탈출기’를 상기시켜줍니다. 죄로부터의 탈출이며 ‘자유와 평화’라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단 한 걸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물에 잠기는 세례가 죽음을 의미하듯,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을 죽이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그 길이 기쁜 이유는, 우리가 찾아 나선 자유와 평화를 그 길 위에서 미리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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