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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돋보기 - 한반도에 평화를] 평화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조한범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8년은 한반도 평화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을 시작으로 9월의 평양 남북 정상 회담까지 약 6개월여 동안 한반도와 관련된 일곱 차례의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남북과 북미 정상 간에는 특사와 친서 교환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현안에 해당하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협상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2018년 한반도 연쇄 정상 회담 평가
2018년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이다. 4·27 회담을 통해 남북의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한국 전쟁을 종식하려는 입구를 마련했다. 남북 관계 발전의 의지를 표명하고 그동안 채택한 남북한 간의 모든 선언과 합의를 이행하기로 한 점도 의미가 있다. 7·4, 6·15, 10·4 남북 공동 성명, 남북 기본 합의서 등 기존의 모든 합의가 이행될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청으로 전격 개최된 5·26 통일각 남북 정상 회담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난기류를 해소하는 계기이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 성사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는 한반도 운전자로서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된 계기였다.
9월 평양 남북 정상 회담 또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연기로 초래된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을 해소하고 2차 북미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자 여건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특히 남북 정상 간 공동 성명에 구체적인 비핵화의 내용이 담긴 것은 최초의 일이며, 지난날 북 핵 협상에서 한국을 철저히 배제해 온 북한의 태도와 비교할 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6·12 북미 정상 회담은 최초의 양국 정상 간 회동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북한의 최대 위협이자 적이었으며, 반미·반제국주의는 북한 정권의 정체성이었다는 점에서 북미 정상 회담의 성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근본적인 변화를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 성명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한반도 비핵화의 주체로 명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미 간 합의 내용에 다소 다른 의견이 있어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시대의 서막
한반도의 평화를 모색하는 노력은 2018년이 처음은 아니다. 남북한은 이미 1970년대 냉전 체제에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끌어낸 바 있으며, 1991년에는 남북한 간의 화해와 불가침 그리고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곧,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1992년에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도 도출했다. 2000년에는 역사적인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여 6·15 공동 선언을 도출했으며, 2007년에는 10·4 선언에 합의했다. 특히 6·15 공동 선언 이후 남북한은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 공단 사업으로 대표되는 남북 관계의 일상화 시대를 열었다.
이와 같은 성과에도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진전이 없었다. 동해에서 유람선이 금강산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서해 북방 한계선(NLL)에서는 남북 해군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 결국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는 냉전 체제 수준으로 돌아갔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 회담에도 북미 간에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2017년 말까지 북미 관계는 극단적 대립 상태를 유지했다.
2018년 한반도의 정세 변화는 지난날과 다른 중요한 특성을 담고 있다. 먼저 안보와 교류의 불균형이 해소되었다. 지난날 남북 관계는 안보적 대립 관계가 해소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8년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의 증진으로 교류 협력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지체에도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9월 평양 남북 정상 회담에서 남북의 국방부 장관은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으며, 공동 경비 구역(JSA)의 비무장화, 철원 화살머리고지 지뢰 제거, 소초(GP) 시범 철거 작업 등 후속 조치들이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날과 달리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발전이 병행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18년 남북 관계 발전은 미국과 긴밀한 공조 체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북미 협상의 교착 국면을 타개한 것도 한국 정부가 노력한 결과였다. 2018년 한반도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지난날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2018년 한반도 정세 변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전략적 변화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2018년 4월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3차 전원 회의를 개최하여 경제·핵 병진 노선의 결속(종료)을 선언하고 경제 발전에 방점을 둔 새로운 전략 노선의 선택을 공식화했다. 2017년까지 핵·미사일 개발의 가속화를 통해 자위력 확보를 도모한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미사일 개발과 연동되어 부과된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 전반에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수출의 90% 이상이 중단된 상태이며, 석유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주요 외화 수입원인 노동자 해외 송출 사업도 중단된 상태다. 대북 제재 국면의 해제 없이 북한의 국가 발전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으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비핵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의 악마’ 딜레마
2018년 한반도 평화 정착의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디테일의 악마’(문제는 세부 사항 속에 있다는 뜻-편집자 주)딜레마도 점차 가시화했다. 6·12 북미 정상 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2차 북미 정상 회담도 2019년 초로 연기되었다. 연내 목표로 추진된 종전 선언은 도출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대북 제재는 위기 국면이었던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 회담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 사업의 재개, 경협의 활성화 등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조치들은 대북 제재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비핵화 프로세스가 지체된다는 점이며, 특히 북미 양국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단계별 이행안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동결 → 신고 → 검증 → 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사찰 매뉴얼 방식의 비핵화이다. 그 반면 북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델인 자발적 비핵화 방식을 원한다. 매뉴얼 방식은 초기에 북핵 프로그램의 전모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북한에는 부담이 되며, 자발적 비핵화는 투명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미 간 빅딜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협상의 단계마다 난항이 반복될 개연성이 있다.
비핵화 과정의 지체는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북 제재 국면이 지속되는 한 획기적으로 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는 없으며, 남북 정상 간의 합의를 이행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한미 간 견해차도 있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며, 따라서 남북 관계의 발전도 이와 연동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비핵화와 남북 관계를 병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핵화를 넘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를 통해 궁극적인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11월 가동된 한미 실무위원회는 양국 간 대북 정책의 조율이라는 순기능과 함께 남북 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자율성에 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전망과 과제
‘디테일의 악마’ 딜레마에도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관계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미 불가역적인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으며, 북미 모두 협상의 파기로 발생할 고비용 구조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실패할 경우 대내외에 비핵화 약속을 공언한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권위의 추락은 불가피하며, 대북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가중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정치적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 게이트 특검과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라는 벽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을 반전시키려면 비핵화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 회의를 통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선택하고 인민들에게 경제 발전을 약속했다. 새로운 전략 노선을 관철하려면 비핵화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의 발전도 필요하다. 북한 경제 발전의 전제 조건에 해당하는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의 현대화와 경제 개발구 정책이 성공하려면 남북의 경제 협력은 필수적이다.
지금은 비핵화와 평화 정착, 그리고 남북 관계 발전이라는 한반도 문제의 세 가지 핵심 영역 간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우리의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자가 아니라 주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하며,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관철하는 촉진자 구실을 해야 한다.
평화는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조한범 -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센터 소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경향 돋보기 - 한반도에 평화를] 한반도 평화의 대장정 백장현 대건 안드레아 한신대 교수
한반도 평화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몇 년째 전쟁의 위기를 넘나들던 한반도 정세가 지난해 초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세 차례의 남북 정상 회담과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 회담을 치르며 평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북한 핵 폐기와 체제 안전 보장의 맞교환 논의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깃들게 하자는 논의는 역설적으로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 간 탄도 유도탄(ICBM) 개발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의 시원은 한국 전쟁 직후이다. 북한 지도부는 전쟁 기간 내내 미국의 핵 공격을 두려워했고 이는 전쟁 직후 핵무기 개발 시도로 나타났다.
북한은 오랜 준비를 거쳐 2006년 10월 1차 핵 실험을 단행하였고, 연이어 2차(2009년 5월), 3차(2013년 2월), 4차(2016년 1월), 5차(2016년 9월), 6차(2017년 9월) 핵 실험을 추가해 국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북핵 문제가 국제적 문제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닫다가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뒤 제네바 합의가 폐기되면서 다시 국제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주체로 북미 양자 회담 대신 남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6자 회담을 주장했다. 6자는 오랜 진통 끝에 2005년 9·19 공동 성명과 2007년 2·12 합의와 10·3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6자 회담이 무력화되면서 다시 미궁에 빠졌다.
그 뒤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하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북핵 폐기를 위해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기존의 입장인 ‘선(先)북핵 폐기, 후(後)대화’의 정책을 폐기하고, 지난해 6월 북미 정상 회담 합의문에서 ‘적대 관계 청산과 새 북미 관계 수립’,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며 대화로 해법을 찾아냈다. 그러나 정상 회담 합의문을 이행할 후속 협상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기존 징크스를 깨지 못한 채 6개월째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 평화 체제
한반도 평화 체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2005년 9·19 공동 성명부터이다. 6자의 합의인 9·19 공동 성명의 주요 내용이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의 동시 추진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란 전쟁을 법적으로 종결시키고,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는 한편, 한반도에서 상호 적대적 긴장 관계를 초래했던 요인들을 해소하여 항구적 평화가 실현되는 상태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 체제는 법적 측면에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고, 군사적 측면에서 남북한 간 신뢰 구축과 군축을 이루어 평화의 물리적 조건을 성숙시키며, 국제 정치적 측면에서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를 정상화시켜 한반도 주변의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관련국 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1953년 7월 한국 전쟁을 끝내면서 체결했던 정전 협정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협정하였음에도 남북한의 군사 충돌이 계속되었다. 1953년 7월부터 1994년 4월까지 국제 연합(UN)이 집계한 북한 측의 협정 위반은 42만 5,271건이고, 북한이 주장한 한미 측의 위반 건수는 83만 5,563건에 달한다.
둘째, 협정의 주요 내용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전 협정은 5개 조 63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개 항 2개 목 정도만 유효한 상태이고, 그마저도 북한이 1992년부터 군사 정전 위원회를 거부하여 무력화되었다. 군사 정전 위원회가 열리지 않자 이를 대체하려고 4자 회담과 장성급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4자 회담은 1999년 이후 중단되었고, 장성급 회담도 중단과 개최를 반복하다가 2009년 3월 이후 중단된 상태이다.
셋째, 군사적 긴장과 충돌이 남북 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민족 공동체 의식을 진작시키고 남북한 간 상호 의존도를 높여 통일 구심력으로 작용할 교류와 협력이 군사적 충돌로 중단되는 등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할 실효성 있는 협약 체결이 절실한 형편이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
북미 관계 정상화도 한반도 주변의 냉전을 해체하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북한과 미국은 한국 전쟁 이후 지금까지 적대하였으며 핵 문제가 쟁점이 되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대화조차 없었다. 북미 간 첫 번째 고위급 접촉은 1992년 1월 미국 뉴욕에서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과 캔터 국무부 정무차관의 회담이었다.
두 사람은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핵 사찰 문제와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협의했으며,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서 정치적, 경제적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2002년 2월 핵 위기 발생으로 무산되었다.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 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고 울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한반도에서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군사 정전 협정을 공고한 평화 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것이었는데,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백지화되었다.
2005년 9·19 공동 성명에서는 북미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관계 정상화를 조치하기로 약속했고, 2007년 2·13 합의에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 그룹 설치에 합의했지만 이후 6자 회담이 무력화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한반도 평화의 과정은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 맞물리면서 선순환하여 완성된다. 북핵 폐기는 완성된 핵무기와 플루토늄 · 농축 우라늄 등 핵 물질의 폐기, 핵 시설물의 폐기, 핵 개발 인력의 재배치 등이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평화 체제는 북미간 국교 수립과 평화 협정 체결 등인데, 두 사안 모두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북미 사이에는 오랜 기간 인내심을 갖고 합의를 이행할 상호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간 몇 차례의 합의가 무산된 이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정상 회담 합의문 발표 뒤 기자 회견에서 북한 핵 시설의 핵심 20%를 없애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핵 폐기라면서 자신의 임기 내에 실현하겠다고 언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 회담에서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으면 영변 핵 시설까지 영구 폐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낙관적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인 2020년 말까지 북한 핵 시설의 핵심 20% 폐기와 그에 상응한 북미 간 연락 사무소 설치, 종전 선언,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철회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평화를 가로막는 몇 개의 장애물
한반도 평화의 대장정을 가로막는 몇 개의 장애물이 있다. 첫째, 동북아시아에서 현상 변화를 꺼리는 미국의 태도이다. 한미 군사 동맹은 한국 전쟁 이후 북한의 남침에 대한 방어와 억지를 위해 체결된 것이었다. 따라서 평화 협정 체결, 북미 간 국교 수립 등이 이루어지면 큰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미국의 처지에서는 평화 체제를 구축한 주한 미군 주둔과 전진 배치가 위협받을 것으로 우려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이래 미국은 주한 미군의 감축 재배치와 함께 역할 확대를 꾀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게는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 통일 한국이 어떤 외교적 태도를 취할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깊은 경제적 의존 관계, 같은 유교 문화권으로서 오랜 역사를 함께한 문화적 유대 때문에 장차 통일 한국이 중국에 편향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미국은 상대적 쇠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본격화할 경우 통일 한국이 중국의 부상에 편승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불안감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으로 동북아시아 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기피하는 요인이다.
둘째,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이득을 얻는 ‘군산 복합체’이다. 지지난해 북한 위협 억지를 명분으로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실시되면서 대표적 군수 업체인 보잉의 주가는 60%, 레이시언, 록히드 마틴, 노스럽 그러먼 등은 20% 이상 상승했으며 매출액 또한 증가하였다.
대규모 군수 산업체들이 미국 50개 주 전역에 포진하면서 고용과 경기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며 긴밀한 결탁을 통해 행정부와 의회의 의사 결정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셋째, 분단 체제의 기득권자인 내부 냉전 세력이다. 이들은 분단 이후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 왔기에 한사코 ‘적대적 공생 관계’의 유지에 집착하며 평화 체제 구축에 반대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평화와 통일로 가는 데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장애물을 넘는 방법은 오직 남북한이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의 구심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민족의 지혜를 모아 9·19 평양 합의를 빠르게 실천하고 국제적 평화 세력과 연대에 힘써야 한다.
* 백장현 대건 안드레아 - 한신대학교 초빙 교수로 가톨릭동북아시아평화연구소 연구 위원이다. 고양파주 통일시민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남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경향 돋보기 - 한반도에 평화를] 십자가의 평화 김연수 스테파노 신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루카 19,41-42).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예루살렘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의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잔인한 죽음으로 몰았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한반도를 바라보고 계실까? 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에 무엇을 바라실까? 더 나아가 한국 교회는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려는 평화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이며, 어떤 평화를 바라고 있는지 살펴보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교회가 말하는 평화
히브리 문화에서 ‘샬롬’은 ‘온전한’, ‘완성’, ‘번영’, ‘물질적이고 영적인 안녕’을 의미한다. 「성경」의 시편 저자는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85,11)라며, 평화는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32,17)라며, 정의가 실현된 세상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평화로운 거처에, 안전한 거주지와 걱정 없는 안식처에 살게 되리라.”(32,18)라고 선포한다. 성경은 하느님의 평화는 정의와 분리될 수 없음을 천명한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실현하려고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훼손하는, 곧 정의를 위협하는 모든 불의에 저항하셨다. 그 저항은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인 동시에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역사의 현장에서 변두리로 쫓겨난 억압받고 착취당했던 이들과 함께 아파하며 그 불의에 저항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인간이 서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모든 이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이 온전히 보존되며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선포하신 평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사목 헌장을 통하여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에 국한할 수 없고 사람들 사이에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이룩하는 것’(78항 참조)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부하신 ‘더 완전한 정의의 실현이 평화’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꾸준히 수고로운 노력으로 실현된다.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사실 개인들 안에 평화가 없다면, 곧 각자가 자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165항)고 천명했다. 이처럼 평화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가 바라는 평화
예수님께서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시다가 가장 잔인하고 평화롭지 못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이로써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시면서 세상이 하느님과 화해할 가능성을 열어 주셨다. 또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평화는 함께 아파하는 것이며 용서와 화해의 산물임을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에서 용서와 화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하는 사명을 지닌다. 사회 교리는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용서와 화해는 창조주의 본디 계획에 따라 인간의 다중적인 관계망을 회복하려는 진실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성숙한 용서와 화해가 주는 열매가 평화이다.
교회는 평화를 이루는 길로 용서와 화해를 제시한다. 교회는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며 파편화된 세상에서 평화를 촉진하는 가교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다. 이 사명을 이루고자 교회는 인류가 화해하여 평화로운 가족이 되도록 수고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한 이와 함께 정의를 위한 투신으로 하나의 인류 가족을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부름받는다. 교회는 모든 인류가 마음을 열어 타인을 환대하고 적대자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평화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일치시키셨던 것처럼, 더 이상 서로를 적대하지 않고 한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지금 한반도는 평화와 공동 번영의 시대로 나아갈 것인지, 여전히 휴전 상태로 남아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기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교회가 적개심으로 분열된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고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성찰할 때이다.
그러려면 첫째, 회심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는 지난날 한반도 분단에 어느 정도 일조했지만 이에 대해 아직 설득력 있는 사과나 용서를 청하지 못했다. 분단을 조장하고 형제를 적대시하게 했던 지난날을 성찰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참회와 속죄를 통해서만 지난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전쟁이 가져온 상처로 남북이 상호 적대감과 증오를 넘어 분노와 보복의 심리로 증폭해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그 상처를 넘어 ‘형제적인 사랑으로 십자가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이다.
둘째, 한국 교회는 어머니요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 신자들은 통제된 사회에서 전교의 자유 없이 하느님을 목말라하고 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성직자와 수도자 없이 사제를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 신자들은 한국 교회와 전 세계에 흩어진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발행한 교리서에 따르면 “교우들은 천주께 어린양들을 위하여 하루빨리 훌륭한 사제를 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빌어야 한다.”고 밝힌다.
이제 교회는 북녘 신자들을 돌봐야 한다. 그들의 진위 문제로, 또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북녘 신자가 하느님을 목말라하다가 늙어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에 함께 아파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하느님을 깊이 만나고 깊은 영적 갈망을 채워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 교회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북한학을 전공한 성직자와 수도자가 많다. 한 가지 방안은 각 교구 본당에서 대림 시기나 사순 시기에 북한학을 전공한 성직자, 수도자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것이다.
분명 북한은 변하지만, 천주교 신자 가운데도 여전히 북한을 이념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면서 판단하는 이가 있다.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시점에서 변화하는 북한을 이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언제나 평화를 이야기했던 교부들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야 한다. 또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 맞서도록 세상을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연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대화가 절실하다. 자주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대화는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함께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무엇보다 대화를 강조한다.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 정상이 만나 대화를 통해 용서와 화해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서로가 품은 오해를 풀어 갈 의미 있는 기회이다.
십자가 없는 평화는 예수님의 평화가 아니다
오랫동안 이 땅의 많은 이가 분단된 한반도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평화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눈물이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받으며 고통받는 이와 함께 아파하셨다. 곧 평화는 서로가 함께 아파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평화로운 가운데에도 평화를 침해받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평화는 가장 약한 이를 배려하며 이룩되어야 한다.
또한 ‘평화’는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단어일 수 있다. 예수님 시대에 평화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지배 권력이나, 내부적으로는 헤로데, 착취와 폭력을 일삼던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에게는 위험한 단어였을 것이다. 결국 그 위험을 제거하려고 역설적으로 평화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평화를 거부하고 파멸을 선택했다.
평화를 향하여 가는 길은 참혹한 고통과 죽음으로써 불목하고 분열하는 세상과 불균형을 타파하시려고 했던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동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2018년 10월 17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면서 “십자가 없는 평화는 예수님의 평화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를 주시고자 몸소 십자가를 지셨다. 한국 교회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참평화를 이루는 길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꼭 이루어야 하는 사명임을 인식해야 한다.
* 김연수 스테파노 - 1998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2008년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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