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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영화의 향기 with CaFF] (8) 말모이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5.

[영화의 향기 with CaFF] (8) 말모이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한 걸음

가톨릭평화신문 2019.01.27 발행 [1500호]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영화관에 팝콘 냄새가 가득했다. 얼마나 바삭바삭할지, 얼마나 달달할지 짐작된다. 영화 ‘말모이’도 팝콘처럼 가볍게 ‘누구나 아는 맛’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하고 치솟아 올랐다. ‘이렇게 촌스러운 영화에 가슴 먹먹해지다니….’ 살짝 마음 상했지만, 영화가 주는 묵직한 울림을 인정해야 했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영화는 우리말 하기와 글쓰기가 금지되었던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판수(유해진 분)는 가방을 훔치려다 실패한다. 가방 주인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 분). 며칠 후 판수는 면접을 보러 가는데, 하필 그곳에 정환이 있는 게 아닌가! 정환은 까막눈 판수가 영 내키지 않지만, 한글을 떼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배우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을 떠간다. 조선어학회는 ‘말모이’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럴수록 일제의 탄압은 점점 더 거세져 온다.

 

영화는 암울한 시대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장면들로 그려내고, 판수의 능청스런 연기로 잘 버무려냈다. 어쩌면 평범한 영화로 그칠 뻔했던 이 작품이 관객을 감동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비밀리에 전국의 ‘말’을 모았던 ‘말모이 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주시경이 초안을 잡은 ‘말모이’를 완성하기 위해 학자들은 1929~1942년 전국의 말을 비교ㆍ분석하고 표준어를 기록했다.  비밀이 누설돼 사전이 압수되지만, 1945년 경성역 창고에서 기적처럼 말모이 원고가 발견된다. 이 원고를 토대로 「조선말 큰사전」이 편찬되고 1957년 총 6권이 완성된다. ‘말모이 작전’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이룬 민족의 승리였다. 영화는 우리말을 지켜온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가슴으로 느끼게 만든다.

 

또 다른 감동은 김판수에서 시작된다. 판수가 목숨 걸고 우리말을 지키려고 한 이유는 거창한 ‘애국심’이 아니었다. ‘그저 떳떳한 아버지,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었다. 영화는 판수의 진심이 민들레 홀씨처럼 한 사람 한사람에게 퍼져 모두 함께 ‘말모이’에 동참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의 역사를 만든 건 결코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민중임을 강조한 것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는 진리를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공감과 울림으로 전한 것이다.

 

‘말모이’는 많은 숙제를 안겨준 작품이다. 앞으로 한 글자, 한 단어를 어떻게 선택해서 써야 할지 조심스럽다. 그나마 영화를 보며 엉덩이와 궁둥이를 구별하는 법 하나는 확실하게 배웠으니 조금은 다행이랄까?

 


 

김연정 첼레스틴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