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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경용 시인 / 메리 앤 모의 비창ㅡ여성 시인보 100년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19.

메리 앤 모의 비창

ㅡ여성 시인보 100년

한경용 시인

 

 

시몬

바람소리 낙엽 우수수 100년을 적습니다. 아프리카 숲 속에서 홀로 우는 새, 렌(ren)은 기도를 합니다.

국권침탈 된 해 탄생한 아기는 이미 운명교향곡을 들었으리오.

 

만주로 가면 조선말을 가르칠 수 있다기에 희망자가 없는 용정, 명신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습니다.

신여성 선배들의 불행한 애정 행각이 싫었습니다.

얼마나 사무쳤으면 등단작이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이었을까요.

 

시몬

당신은 사랑에 수줍은 지도자, 식민 조국의 허약한 지식인,

'렌의 애가'는 어둠의 시대 어떤 소나타로 불러야 하는지요,

당신은 '시몬 베드로'였나요.

진리 탐구자로서의 용감성과 예수를 배반하는 비겁성에 달의 뒷면에서 괴로워했습니다.

 

시몬,

나는 그대의 발자취를 따라 먼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단 한 번도 내 생애 사랑을 받아 보질 않았습니다.

부름과 명령만 받아 왔습니다.

그윽한 눈빛, 사랑의 로망에게 이가 시리도록 사랑을 받고 싶은 적이 왜 없었겠습니까.

 

올가미 텃밭에서 제국의 태양을 숭배한 게 부끄럽습니다.

꽉 익은 까만 시로 여물어 갈수 없던 슬픈 우리 젊은 날,

당신은 나의 '빛나는 지역' 머리말에서 꿈꾸었지요.

 

화관을 머리에 이고 떨군 당신의 모습.

지난여름 무수히 영근 수치의 관이 해질녘 텃밭에서

고개 숙여 있습니다.

나팔수인들 나름, 녹색 영토로 짙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시몬

빙글빙글 돌던

울안의 모가지를 부러뜨리기에는

우리는 너무 힘이 약했습니다.

 

창공을 나르다

유황도의 모래에 묻힌 청년들이여,

꺼이꺼이 새가 되어 내 죄를 씻느라

여성인재가 없는 신생 공화국

외교일선에서 한 짧은 영어,

헬프 코리아, 오, 피스 코리아

 

시몬

산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보았습니다.

그를 보자 급히 혈로서 하얀 치마에 써 내려 갔습니다.

초목도 우는 국토를 부여안고

혼자 살아 나온 생명이라,

"당신의 애무를 원하기보다 당신의 냉담을 동경해야 할 저입니다.

용서하세요. 그러나 당신의 빛난 혼의 광채를 벗어나고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 위로 흐르는 구름

영운(嶺雲)

 

1990년 6월 7일 별세했고, 6월 8일 대한민국 금관문화상이 추서되었다. 1996년 ‘영운(嶺雲) 모윤숙 문학 산실’의 문학비가 한남동 자택에 건립되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한경용 시인

2009년 시집 『잠시 앉은 오후』로 등단. 2010년 《시에》, 2014년 《현대시》로 작품 활동. 2014년 시집 『빈센트를 위한 만찬』 출간.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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