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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이사야 (1)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3)
이 환호는 우리가 미사 때마다 외치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주님을 직접 모시는 천사들 - ‘사랍’들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룩하시다!’를 외칠 때마다 우리는 천사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11,1)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7,14)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9,5)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52,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42,7)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53,5)
이사야 예언자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며 이사야서를 자주 읽었습니다.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은 이사야서를 인용해 복음을 전했고, 교회 초기의 교부들은 그 안에서 성탄부터 수난까지 예수님의 생애를 예언한 말씀들을 발견했습니다. 교회도 전례 안에서 대림시기와 사순시기에 독서로 이사야서를 집중적으로 읽습니다. 이 위대한 예언자 이사야에 대해 드디어(!) 나눌 때가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는 1-39장, 40-55장, 56-66장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 중에서 제1부는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제1 이사야)이고, 제2부는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던 시절(기원전 6세기 중반)의 예언자(제2 이사야)이고, 제3부는 그 이후의 시대에 활동한 다른 예언자(제3 이사야)라고 합니다. 200년이 넘는 간격이 있는데, 한 예언자가 그토록 오래 산 것이 아니라, 뒤의 예언자들이 앞선 위대한 예언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활동했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이 이를 한데 묶어 전한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기원이 되는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결혼도 했고(8,1-4), 제자들도 있었습니다(8,16). 임금이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37,2) 그가 임금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7,1-17; 38,1-8) 임금에게 가서 따져 묻기도 합니다(39,3). 또한 그가 활동한 곳이 예루살렘(6,1; 7,3; 38,1; 39,3)이라는 점, 사제나 고위 관리들과 직접 만나고 그들을 언급하는 말씀을 남겼다(8,2; 22,15-24; 37,2.5)는 데서 우리는 그가 상당한 지위를 가진 자(귀족 가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지위를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임금부터 관료들과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잘 나가던 젊은 귀족 이사야를 이러한 예언자의 길, 때로는 성공하지만 실패를 더 많이 겪어야 하는 질곡의 삶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소명)을 받는 장면 이사야 6장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라는 말로 소명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때 이사야는 성전에서 ‘어좌에 앉은 주님’(6,1)을 뵙습니다. 천사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2-3절) 성전의 문지방이 흔들리고 그 안은 연기로 가득 찹니다(4절). 이는 그가 뵙고 있는 분이 주님이라는 확인입니다. 그분 앞에서 이사야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5절). 그러자 천사 하나가 불타는 숯으로 그를 깨끗하게 만듭니다(6-7절). 그때에 주님이 묻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해 가리오?”(8ㄱ)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8ㄴ) 이사야는 사명을 부여 받고 예언자로 파견됩니다(9-13절).
이 안에는 하느님이 진정한 임금이라는 고백부터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요 우리와 무관한 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삶 안으로 개입하시는 분이라는 것까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백성과 현인들의 어리석음, 그들에 대한 징벌,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임금의 역할을 새로운 ‘씨앗’(임금)이 설 때까지 수행해야 하는 예언자의 책임 등, 예언자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언자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임에도, 그 버거운 책무를 이사야는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놀라운 체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않고, 하느님을 찾지 않으며 주님을 찬미하지 않는 세태(5절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비판적 생각은 그의 심장에 주님을 향한 열정이 가득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그를 주님의 말씀에 응답해 예언자의 삶을 기꺼이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이사 29,3; 마태 15,8; 마르 7,6) 우리 시대도 주님을 외면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주님을 찾는다고 성전에 모였지만, 주님의 말씀은 흘려들으면서 우스갯소리나 소문에는 쫑긋하는 귀, 사랑에는 메마르나 비난에는 풍요로운 입술, 자선에는 인색하고 욕심엔 한없는 손, 주님의 가르침은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살겠다는 굳은 마음,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며 그 말씀을 전할 사람을 찾습니다. 오늘도 ‘거룩하시도다!’ 외치는 ‘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019년 3월 31일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5-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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