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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7주일 - 자녀의 바람에 귀를 기울이시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9.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7주일 - 자녀의 바람에 귀를 기울이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07.28 발행 [1525호]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자신의 바람을 말씀드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자기의 바람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와 바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어떤 것도 하지 못하십니다. 그것은 신앙이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란 인간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저 먼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분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의 친교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 몸소 인간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새로운 사랑을 나누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자유로운 두 주체 사이의 인격적 관계이기에 강요할 수도, 무력을 행사해 얻어낼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상대방이 그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랑은 외면당하고 상처 입을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상처 입은 모습은 바로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다른 한편 십자가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에게 다가가 무작정 묻지도 않고 그들을 치유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군중에게서 떨어져 나와 당신 앞에 서도록 하셨고, 그에게 물음을 던지며 그의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에게 중요했던 것은 치유나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과 만나는 그 사람이었고, 그와 만나 이루는 새로운 관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도록,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이 담긴 소망을 청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 안에 신앙이 회복됨을 깨달았으며, 삶을 향한 새로운 희망이 솟아남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만남이 그에게 생명력을 선사하였고, 삶의 열정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느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사도들이 선포한 하느님은 주님의 기도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 자녀로 누리는 자유와 평화, 기쁨과 환희를 경험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삶을 멋지게 설계하고 꿋꿋하게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종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 받는 자녀로서 그 사랑 안에서 기뻐 뛰며 능동적으로 삶을 기획하고 설계하며 찾기를 바라십니다. 안주하지 않고 길을 떠나기를, 길 위에서 겪는 여러 일들,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하기를, 나날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당신 나라가 실현되기를, 두려움과 의기소침, 폭력과 억압, 죄와 악, 죽음이 지배하는 곳에 가서 당신의 사랑과 평화, 용서와 자비가 다스리기를 바라십니다.

 

무엇을 청할까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청하는 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그 영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8,15; 갈라 4,6 참조)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