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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장욱 시인 / 기울기가 사라진 뒤에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17.

이장욱 시인 / 기울기가 사라진 뒤에

 

 

막 떨어지는 나뭇잎이 허공을 구성하는 각도

새벽의 꿈에서 깨어나자 스며드는 생시의 각도

추락하는 사람에 대한

사후의 각도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기울기가 있어?

영원에는 기울어진 것이 없습니다.

수평과 수직이 사라진 뒤에

비스듬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을 뿐

 

저기 전화를 하는 저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갸우뚱히 바라보는 이유는

그림자 안에 해가 지고 있어서

조용한 말이 그이의 귓가에 스며들어서

그건 그렇게 갸우뚱한 상태로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 뒤에 나무가 스르르 기울었다.

거리의 행인들과 지금 듣는 음악의 각도가 바뀌었다.

수평선과 쏟아지는 빗줄기의 기울기가

오늘의 초침이 분침에서 멀어지려고 미친 듯이

 

당신이 고개를 기울이자 나뭇잎이 다른 곳으로 떨어졌네.

당신이 생시에서 사라지자 내가 깨어납니다.

그림자가 일어나 혼자 걸어가는 세계에서

 

분침과 시침이 겹치는 순간

날카로운 알람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 나의 아주 가까운 곳으로 추락하고 있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4월호  발표

 

 


 

이장욱 시인

1968년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 노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1994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등과,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과 소설집 『고백의 제왕』 과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이장욱의 현대시 읽기』가 있음. 2005년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로 제3회 '문학수첩작가상 및 2010년 제3회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상 등을 수상.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현재 〈천몽〉 동인이며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