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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전례 & 미사

전례 탐구 생활 (10) 미사는 '언제' 시작되는가?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9.

전례 탐구 생활 (10) 미사는 ‘언제’ 시작되는가?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본당 주보나 홈페이지에는 매일 거행하는 미사의 일정이 공지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우리가 함께 모여 미사를 거행하기로 ‘약속한’ 시간이지, 미사 시작의 ‘절대 기준’이 되는 시간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이는 만큼 정해진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사가 제대로 시작되기 위해서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매일 미사」의 앞부분에는 모든 미사 거행의 뼈대가 되는 ‘미사 통상문’이 실려 있는데(「미사 통상문」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출판되기도 합니다), 미사가 시작되는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나아간다. 교우들은 그동안 입당 노래를 한다.

 

새로울 것이 없는 설명입니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정 작업을 주도했던 이들은 문구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폈고, 쇄신된 전례의 근본 정신을 거기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공의회 이전 미사 경본은 “사제가 준비를 마친 다음”(Sacerdos paratus)이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교우들이 모인 다음”(Populo congregato) 미사를 시작한다고 선언합니다.

 

거룩한 미사 거행은 두 사람 이상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마태 18,20), 우리가 그분의 현존 안에서 하느님 앞에 나와 있음을 인정하면서 시작됩니다. ‘교우들이 모이는 것’은 이 거룩한 현존에 이끌린 결과입니다. 미사 통상문의 첫 세 단어(라틴어로는 두 단어)는 교우들 스스로 모임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를 이끄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사의 참 집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제단인 당신의 백성을 불러 모으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1베드 2,9 참조).

 

이 모임 안에서 우리는 죄인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사에 참여할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은총의 샘이신 하느님입니다. 미사는 바로 이 간단하지만 어마어마한 의미를 지닌 전제 위에서 출발합니다.

 

미사는 단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고 사제가 준비를 마쳤다고 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이 하느님 백성으로 모였을 때 시작합니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이므로(「전례 헌장」 10항), 백성은 지난 한 주간의 사건들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교회로 모입니다. 그러므로 「미사 통상문」을 시작하는 단어들은 “백성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의 “충만한 사목적 효과”를 추구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전례 헌장」 49항).

 

미사를 드리고자 우리가 모인다는 사실이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보니 자칫 이 모임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맺는 교류가 직접적인 대면보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 전화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특히 익명화된 대도시 안에서, 미사의 이러한 가장 뚜렷한 특징을 재발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를 주례하는 사제와 거기에 참여하는 신자들 모두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민감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품 사제들과 전례 봉사자들은 기도로 합당하게 준비하고, 거행되는 거룩한 신비에 전념함으로써 주님의 식탁을 중심으로 모인 회중 전체에게 평화로운 묵상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신자 회중 역시 침묵과 기도를 통하여 성찬례 거행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사제를 도와 거룩한 신비를 품위 있게 거행하고 성찬 전례를 위한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2020년 3월 8일 사순 제2주일 제주주보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