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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사도직현장에서] 종교를 왜 믿어야 할까요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2.

[사도직현장에서] 종교를 왜 믿어야 할까요

김종화 신부(작은형제회 정의평화창조질서보전위원장,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가톨릭평화신문 2020.07.19 발행 [1573호]

 

 

▲ 김종화 신부

 

 

몇 달 전 어느 중학생과 성당에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던진 첫 질문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다. “신부님, 성당에 꼭 가야하나요?” “저는 무신론자인데, 부모님께서 성당에 꼭 가야 한다며 계속 화를 내세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이 학생의 집안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신심 깊은 부모는 처음에는 부드럽게 말했을테지만, 자녀는 더 이상 종교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심지어 무신론이라는 사상까지 대화의 주제로 끌어들인다. 부모는 무신론과 진화론 등을 비롯한 교리논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자녀에게 윽박지르고 강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을 살아가는 가정에서도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대해서 얼마나 대화할 수 있을까? 논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종교의 사상에 대해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우리나라 교육은 철저히 시장 자본주의의 이념 아래 기능주의 관점으로 작동되고 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교육이 무엇인지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정답을 비워놓고 누가 빨리 맞추는지 대결하는 형국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사유는 교육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정답을 맞추는 것이 곧 교육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 원리는 교육이념에도 그대로 들어와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강요하며 서열문화를 양산해내고 있다. 수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과 놀이문화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우열을 가려 열등한 사람으로 구분하는 입시경쟁은 청소년 자살률을 갈수록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학교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지만, 교리 논쟁에 대해서 교수와 학생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할까? 대학은 한 사회의 유토피아를 실험하고,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연구하는 진리의 전당이지만, 교수와 학생 모두 스펙을 쌓고 취업을 위한 기능적인 도구로 전락되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 비판 기능은 이제 더 이상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사유와 통찰 없이 정보와 지식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

 

“엄마, 왜 종교를 믿어야할까요?” 식탁에 앉아 종교의 교리를 논쟁하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교육에서 질문이 사라지면 희망은 없다. 답은 중요하지 않다. 질문 그 자체만으로도 이성의 빛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화 신부(작은형제회 정의평화창조질서보전위원장,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