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사도직현장에서] 준비해야 되는데…

by 파스칼바이런 2020. 11. 9.

[사도직현장에서] 준비해야 되는데…

김호균 신부(대구대교구 노동사목부장)

가톨릭평화신문 2020.11.08 발행 [1587호]

 

 

 

 

“사과를 가지고 왔는데 어디 놓아 드릴까예?”

 

(사무실 직원분은 고개로 방향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놓이소.”

 

예전에 몇 년 동안 신자분이 팔아달라고 한 사과를 가까운 신부들에게 연락해서 팔곤 했습니다. 그 시기가 농번기였기에 대부분 바쁘신 신자분들을 대신해서 제가 배달했습니다. 한번 갈 때마다 100여 상자 넘게 트럭에 실었기에 한 군데에서 다 소화할 수 없어서 몇 개 본당을 돌아야 했습니다. 사과를 팔아달라고 한 교우분은 그것을 고스란히 본당에 봉헌하는 것이었기에 외면할 수도 없었습니다. 농촌에서 돈을 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눈으로 보고, 듣고 있었기에 그것 또한 저로서는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배달할 때마다 로만 칼라를 하기보다 작업복을 입고 갔는데 제 얼굴을 아는 사무실 직원분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서 함께 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모르는 분들은 고개만 끄떡이곤 상자 개수만 확인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상황은 내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정의 밑바닥에서 일렁이는 생각은 당연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내가 나중에 이 본당에 오기만 해봐라’였습니다.

 

사실 좋아서 했던 일이고, 신자분의 노고를 덜어드리고자 한 일인데도 뭐가 아쉬운지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못했던가 봅니다. 신부로서 권위의식, 혹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허영심, 그것이 아니라면 뭔가 거지처럼 보여지는 그 묘한 눈길에 감정이 일렁거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하느님과 동료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고 스스로 우뚝 서고 싶은 우월감은 버리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 죽을 때까지 씨름해야 할 상대일 것입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너를 드러내지 마라. 드러나야 할 것은 네가 아니라 나다. 너의 선행이 이 세상에서 드러났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그 선행은 지워질 것이다. 잊지 마라. 문을 두드릴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