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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미카엘의 순례일기] (11) 예루살렘 무덤성당의 밤샘 기도

by 파스칼바이런 2021. 3. 24.

[미카엘의 순례일기] (11) 예루살렘 무덤성당의 밤샘 기도

주님이 누우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1.03.21 발행 [1605호]

 

 

 

 

세상을 바꾼 숱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고 때론 그 주인공이었으며, 사방으로 둘러싸인 성벽 안에 여전히 천 년, 이천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예루살렘! 예루살렘 안에는 과거와 현재가 기묘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햄버거 가게가 자리한 모퉁이는 중세 십자군의 장터였고, 구수한 빵 내음을 내뿜는 빵집 옆에는 로마의 카르도(로마식 도시에서 중심이 되는 동서로 뻗은 길)가 있어 골목 곳곳에 걸려 있는 간판만 사라진다면 이천 년 전 제자들과 함께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묵상과도 같은 순례를 원하신다면 사순 시기는 피하셔야 합니다.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이지만 특히나 이맘때에는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가장 실망하는 것 중 하나가 실제로 예수님이 이천 년 전 직접 걸으셨던 수난의 발자취를 따르며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입니다. 보통 십자가의 길은 성당 내부에서 고요한 묵상과 함께 예절이 진행되지만,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길은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이슬람 구역에서 시작하는 1처부터 주님 무덤성당에서 마치는 14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침묵이나 고요를 바랄 수 없습니다. 호객하는 상인들의 소란함, 군복을 입고 실탄을 장전한 기관총을 들고서 순례자를 지켜보는 유다인 군인들, 그 유다인들을 경멸하면서도 무시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이슬람교도들의 적대적 눈빛,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서 순례자를 밀치며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까지….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은 소란스러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어수선함은 십자가의 길 끝에 있는 무덤성당 내부까지도 이어집니다.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틱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총 6개의 종파가 구역을 나누어 관리하는 ‘주님의 무덤성당’은, 제각기 고유의 관할지역과 시간에 따라 제구와 예절을 따로따로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촛불 하나를 켜고 끄는 것도 각자 정해져 있는 탓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무덤 안의 나뭇조각조차 섣불리 건드리거나 치우지 못합니다. 그 긴장감은 때로는 유대교와 이슬람 사이의 긴장감을 훨씬 뛰어넘기도 해서,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품고 있는 거대한 어수선함이 성당 안에 모두 농축된 듯합니다. 저는 예루살렘을 들어서기 전에 순례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이 도시는 우리가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할만한 장소는 아니라고 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만나는 이러한 모습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매우 세속적인 신앙의 현실, 이천 년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마주했던 바로 그 모습일 것이라고….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순례를 떠나기 전에 특별한 옵션을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무덤성당에서 밤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부 유럽의 순례단은 예루살렘에서 하루 간 순례를 멈추고 휴식한 뒤 다음 날부터 밤샘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 정도는 준비해야 무덤성당에서의 밤샘을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샘 기도를 할 수 있는 순례자들의 숫자는 30여 명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나마 종파별로 정해진 비율에 따라 가톨릭 신자들은 오직 14명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무덤성당은 밤새 문을 닫아 놓기 때문에 중간에 숙소로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돌벽의 냉기 탓에 밤새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지만 그렇다고 따로 두꺼운 담요를 들고 가서 몰래 잠을 청하기도 어렵습니다. 6개의 종파가 시간을 나누어 계속 전례를 거행하며 노래와 분향이 이어지는 데다, 잠에 빠진 순례자를 깨우러 다니는 무서운(?) 성직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장소에서 거룩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잠을 자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말이지요.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 담긴 장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절망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하느님이 되신 역설의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 무덤성당입니다. 그 장소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장소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주님께서 누우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묵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언젠가 꼭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올 그 날을 기다리며, 그와 같은 마음으로 거룩한 성주간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