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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무너지는 지구환경] 기후 위기, 누구의 책임인가 선진국 탄소 배출 ‘먹튀’ 말고 ‘생태적 빚’ 갚아야 가톨릭신문 2021-03-28 [제3237호, 8면]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하면 지구 생태계 전멸 위험 처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0%가 부유한 선진국에서 기인하지만 피해는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 ‘차등적 책임’ 올바로 인식하고 무너진 기후 정의 바로잡아야
전 세계 탄소 배출 주요 기업들에 대한 2017년 보고서(Carbon Majors Database)에 의하면, 1988년 이래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가 100개의 화석 연료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사진은 코소보 오빌릭의 석탄발전소.
■ 사태는 긴박하다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 안타까운 일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좀 더 쉽고 안전하게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파국을 막기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늦었다. 위기를 멈출 시간은 불과 10년이 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는 비관적인 추정이 아니라 전 세계 과학자들의 엄정한 연구 결과다.
2018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지구 온난화 1.5도씨 특별 보고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로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인간이 배출한 만큼 다시 흡수해서 실질적 배출량을 순 제로(net-zero)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배출할 경우, 2100년 지구 평균 기온은 1986~2005년 대비 2.6~4.8℃나 상승할 것으로 IPCC는 예상했다. 이 정도면 지구 생태계는 전멸 위험에 처한다.
■ 누구 책임인가?
누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지구 생태계의 비상 상황을 누가 책임져야 할까? ‘공동의 집’을 망가뜨린 책임을 어느 한 나라나 기관, 조직, 사람에게 묻기는 힘들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소용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가 온실 가스를 배출했다고 해서 꼭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깨끗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기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디젤 발전기를 사용했고 탄소를 배출했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아마존강 유역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벌채를 했다고 해서 산림 파괴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의 책임을 따져 보는 일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연구와 지각 있는 이들은 기후 위기에도 분명히 ‘불평등’이 존재하며, 따라서 이는 윤리, 나아가 정의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 불평등 구조
탄소 배출량이 책임의 양과 그대로 비례한다고 하지 않더라도 누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 따져 볼 만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선진국, 부유한 나라가 압도적이다. 1951년 이래 전체 배출량의 4분의 1이 미국에서 나왔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 거주하는 10억 명이 배출하는 양은 미국 인구 평균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세계 인구의 20%인 선진국 사람들은 지구 자원의 86%를 소비하고, 전체 온실가스의 70%를 배출하지만 피해는 온실가스의 3%만 배출하는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된다.
1992년 최초의 기후변화협약은 국가마다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이 다르고 향후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이 다르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각국은 탄소 배출 책임을 지는 데에 있어서 공정한 태도를 지키지 않고 있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면서, 1.5도 이하가 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별반 없다.
배출량을 계층으로 나눠 봐도 불평등 구조는 명백하다. 옥스팜과 스톡홀름 환경연구소의 2020년 보고서 ‘탄소불평등에 직면하다? 기후정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에 의하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탄소 배출량 중 전 세계 인구의 가장 부유한 상위 10%가 누적 탄소배출량의 52%, 최상위 1%의 부유층은 15%의 누적 탄소배출량에 책임이 있다. 반면 하위 50% 빈곤층의 책임은 오직 누적 탄소배출량의 7%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탄소 배출이 부유한 사람들의 소비 확대를 위해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연료를 추출하고 사용하는 기업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전 세계 탄소 배출 주요 기업들에 대한 2017년 보고서(Carbon Majors Database)에 의하면, 1988년 이래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가 100개의 화석 연료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기업들은 탄소 배출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 활동을 효과적으로 펼쳐 왔다. 2015년 미국 웹사이트 ‘인사이드 클라이밋 뉴스’(Inside Climate News)는 석유회사 엑손이 수십 년간 기후변화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배출가스 감축 대책을 저지해 왔다고 폭로했다.
과학자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시작하면서, 화석 연료 기업들은 과학자들의 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격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했다.
기후 위기의 큰 책임은 이윤 창출을 위해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소수 기업과 부유한 사람들과 부유한 나라들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 기후 정의
지난해 10월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이 발간한 ‘2000~2019년 세계 재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7384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해 40억 명이 피해를 입고, 매년 6만 명이 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재난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선진국에 비해 저소득국가에서 무려 4배나 많다. 재난재해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고 재난과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한 가난한 사람과 나라들에 더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재난 상황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는 국가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7~31% 감소시킨 반면, 선진국의 국내총생산은 10%나 더 증가시켰다. 기후 위기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사이의 간극이 좁아지는 것을 가로막았다. 선진국이 유발한 기후 위기가 국가 간 불평등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 우리들의 책임은?
이와 관련해 가톨릭교회는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하여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찬미받으소서」 52항)고 말하면서 ‘생태적 빚’을 지적한다. 특히 교회는 환경 파괴에 대해 큰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대 기업과 부유한 나라와 사람들에 의해 무너진 기후 정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특히 개인적으로, 아주 미미한 탄소를 배출할 뿐인 개인들의 노력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우리 모두, 개인들이 자기 몫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사실 적지 않은 위험성을 갖고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정의롭지 않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이들의 책임을 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협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나라들이 사실 기후 체제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한 것은 그 가장 극명한 사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기후 행동은 개인을 뛰어넘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스웨덴의 한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이를 증명했다. 그가 시작한 기후 행동은 전 세계에 기후 위기에 대한 무거운 메시지를 던졌다.
한 사람의 행동은 다른 이를 이끌고, 이끌어진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이끈다. 나의 행동이 가족과 친구를 이끌고 정부와 기업에게 대책을 마련할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개인의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기후 위기, 무너지는 지구환경] 기후 위기와 가난한 이들의 고통 날마다 더워지는 지구, 갈수록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 가톨릭신문 2021-03-28 [제3237호, 7면]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등 기후 변화는 세계적인 문제 환경·사회·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에 심각한 영향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피해 기후 변화로 인한 난민 증가 2050년엔 1억4300만 명 예상 각종 연구·조사 보고서마다 암울한 세계 기후 현황 예측 온난화 막기 위한 노력 절실
기후 위기라는 말은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들어왔기에 ‘위기’라는 단어가 가진 절박함과 긴박함이 많이 희미해졌다. 아직도 기후 위기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거나 혹은 자신과 무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통계와 수치를 통한 기후 위기의 과학적 증거를 알게 된다면 계속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최신 연구 자료인 지난해 전 세계 기후 현황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를 통해 지금이 진짜 위기 상황임을 알리고, 기후 위기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삶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 2020년 지구는?
202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코로나19의 창궐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상 기후로 인한 고통도 코로나19에 비견될 만했다.
이상기후 발생은 대륙과 나라를 가리지 않았다. 2020년 북극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이례적으로 높았고, 특히 북극의 여름 기온은 평년보다 3~5℃ 높게 나타나 1881년 이후 가장 높게 기록됐다. 6~8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기록적인 긴 장마와 집중호우, 많은 강수 등이 이어져 큰 피해를 남겼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서부지역에 6~8월 산불이 지속됐고, 북대서양에서는 11월 17일 기준 30개의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해 2005년 28개였던 최다 발생 기록을 경신했다.(출처: 세계기상기구(WMO) Provisional Report ‘State of the Global Climate 2020’)
이 모든 비극의 가운데에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가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지구 평균기온은 14.9℃로 산업화 이전 대비 1.2℃ 높았다. 산업화 이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오래도록 거의 변화가 없었다. 환경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파리기후협정과 ‘1.5℃’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서 채택된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약이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해 국제사회에 약속하고 이 목표를 실천해야 하며, 국제사회는 그 이행에 대해서 공동으로 검증하게 된다.
■ 왜 ‘1.5℃’인가
그렇다면 왜 ‘1.5℃’를 강조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것일까?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는 각종 자연 재해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며,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가난한 이들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하고 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진다. 이는 결국 농림수산업 등 1차 산업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다시금 식량 문제와 실업, 원치 않는 이주로 이어지게 된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2℃ 상승하면 북극해 해빙(海氷)이 10년에 한 번 모두 녹으며, 산호초의 99%가 소멸하는 반면, 1.5℃ 상승하면 해빙은 100년에 한 번 모두 녹고, 산호초의 10~30%는 살릴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라고 말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없는 개발도상국들과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 2050년 기후 변화로 12억 인구가 이동
2018년 세계은행이 내놓은 ‘국제 기후 난민 준비과정’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세계 기후 난민이 1억43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보고서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8600만 명, 남아시아에서 4000만 명, 남미에서 1700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보다 훨씬 더 비관적인 내용의 보고서도 있다. 국제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 Peace, IEP)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자연재해가 지난 수십 년과 같은 비율로 발생한다면, 205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2억 인구가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157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9개국은 해수면 상승의 위험이 있으며, 이들 국가 전체 인구 중 적어도 10%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앞으로 30년 이내에 중국, 방글라데시,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및 태국의 저지대 해안 지역에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았는데, 이들은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생태 난민·기후 난민들은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보호나 원조도 받을 수가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기후 난민들은 임시 거주지나 도시로 향하게 되는데, 제대로 된 생활 여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 탓에 무분별한 벌목으로 자연을 훼손해가며 땔감을 마련하기도 하고 때로는 폐타이어와 같은 쓰레기를 태워 난방을 하는 탓에 또 다른 환경오염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자리 또한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실업자나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에서는 800만 명 이상의 농민들이 기후 위기로 농사를 포기하고 중앙아시아, 유럽, 북미 지역으로 이주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수백만 명의 농촌 인구가 해안가나 도시로 주거지를 옮기고 있다. 또한 과테말라만 해도 수십만 명의 농민들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기후 위기의 또 다른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의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로 인해 생기는 피해를 가난한 국가들이 고스란히 겪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IEP 보고서를 보더라도 유럽, 미국 및 기타 선진국의 경우에는 당면하는 생태 위협 건수가 더 적고, 위험에 대응하는 회복탄력성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는 선진국으로는 스웨덴, 노르웨이, 아일랜드 및 아이슬란드 등이 있다.
■ 한국은 기후 위기 ‘가해국’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부끄럽게도 한국은 세계 7위의 탄소 발생국(출처: 세계에너지통계, 2019)이자 G20 국가 중 네 번째인 화석연료 투자국으로 대표적인 가해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벌써부터 이상 기후로 인해 농사를 망치거나 어종이 바뀌어 어업에 큰 피해를 입는 등 사례가 날이 갈수록 많이 생기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에 한국은 아열대 기후로 변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암울한 예측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지구 온도 상승을 막는 것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외 없이 ‘어머니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동참해야 할 것이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창간 94주년 기획] 기후 위기, 무너지는 지구환경 마지막 행동의 기회… 놓쳐선 안 돼 가톨릭신문 2021-03-28 [제3237호, 1면]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장관 피터 턱슨 추기경은 2020년 12월 9일 파리기후협약 5주년을 맞아 유엔과 영국이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피조물 보호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긴급한 호소에 대해서 신자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거나 느리다고 지적했다. 턱슨 추기경은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모든 형제들」뿐만 아니라 많은 성명을 통해 “환경 문제와 구체적인 연대 행동의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지만 신자들은 무관심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모든 일에 대해서 지도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실천에 옮길 것을 기대할 수 없지만 지구 환경과 생태계 파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예민하고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은 오늘날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백종연 신부는 2019년 6월 가톨릭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우리의 작은 실천이 기후 변화라는 큰 문제와 맞닿아 있기에 신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기후 ‘변화’라는 용어가 기후 ‘위기’로 바뀐 것은 우리가 대응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태의 긴급성이 이미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2020년 추계 정기총회를 마치며 특별 사목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를 발표했다.
특별 사목교서에서 주교단은 코로나19 사태를 “의학적, 경제적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현대문명 전체의 구조와 균형 안에서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연을 무제한으로 개발하고 소비하고 폐기해도 되는 소유물로만 보고 피폐시키고 약탈해 온 결과”라고 선언했다.
주교단은 「찬미받으소서」가 강조하는 ‘생태적 회개’의 자세로, 선교적이어야 하는 교회가 “기후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과 피조물들의 고통에는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고, 힘 있는 이익 집단이 주도하는 개발사업에 희생되는 가난한 이들과도 연대하지 못했다”며 “생태계 파괴 현장을 보면서도 피조물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기후 위기’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복원되지 못할 정도로 파괴된 자연과 생태계는 다시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 마지막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어머니 지구의 울부짖음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 사명과 사목 활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라는 한국 주교단의 호소를 잊어서는 안 되는 시점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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