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어른은 진보다] 희생이나 솔선수범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김경집 바오로(인문학자) 가톨릭평화신문 2021.04.18 발행 [1609호]
아들 둘을 키웠다. 어느 부모가 자식 소중하지 않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 심정을 조금은 이해한다. 지위 높고 돈 많을수록 그 ‘무슨 수’에서 유리할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국회의원, 고위관료, 재벌가 자녀들 병역 기록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재벌 가운데 제대로 군대 갔다 온 사람 찾기 쉽지 않다.
고맙게도 아들 둘 모두 군대에 다녀왔다. ‘안 보내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아비를 원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마울 뿐이었다. 큰아들은 동부전선 최전방 휴전선 코밑에서, 작은아들은 서부전선 비무장지역을 드나들며 복무했다. 동쪽 끝과 서쪽 끝에, 그것도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걸 투덜대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훈련소에 입소할 때도 따라가지 않고 집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며 작별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훈련소까지 따라가서 서로 짠하게 이별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 나도 훈련소에 혼자 갔고 위로 형 셋 모두 그랬다. 어른이 된 것이고, 당연히 이행해야 할 국민의 의무였으니 따랐다. 큰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집에서 작별인사를 나눴지만 제 동생이 갈 때는 훈련소까지 따라가서 밥을 먹여 보낸 걸 보면 딴에는 섭섭했거나 동생이 소외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왔다.
미국의 부모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버락 오바마는 징집제가 해제된 뒤였으니 예외로 친다 해도, 빌 클린턴은 베트남전 징집을 피하고자 영국으로 유학 갔고, 조지 W. 부시는 주 방위군에 복무했으며, 도널드 트럼프는 베트남전 징집을 꺼려 네 차례 징병을 유예했고, 조 바이든도 다섯 차례 입영을 연기하다 25세에 건강을 이유로 병역에서 면제되었다. 훗날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에 징집된 병사의 80%는 블루칼라 출신이었다. 대학 재학 중 참전한 청년은 20%에 그쳤는데 당시 대학진학률이 50%이었음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그나마 이들은 대부분 장교로 근무했고 전투병과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하버드대학교 재학생 가운데 베트남 파병자는 단 둘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베트남에 가서 죽을지 모르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은 게 부모 심정이었을 것이다. 부모로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정치인들 가운데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징집을 회피했던 사람들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군 통수권자가 된 것은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힘든 군대생활도 가능하면 꺼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내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 힘든 훈련과 병영생활뿐 아니라 유보된 2년의 시간 할애는 쉽지 않다. 모두 다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힘세고 돈 많은 집 자식들(누구 말에 따르면 ‘자제분들’)은 요리조리 빠지고 힘없고 돈 없는 보통사람들의 자식들(누구는 ‘애들’이라 부르던)만 그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면 과연 그 사회가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한국전쟁 때 미군의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과 중국의 마오쩌둥의 아들이 전사했다. 한국전쟁에 미군 현역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했고, 그 가운데 35명이 죽거나 다쳤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위력에 의한 비대칭성은 사회의 안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린다. 당장은 내 자식이 상대적으로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안으로 곪는 병든 사회가 된다. 강자가 희생과 솔선수범의 실천은 고사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위기의 상황에서 아무도 나서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 강자가 되면 군림하고 싶고 부자가 되면 우쭐대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게 자신에게도 독이 되는 걸 곧 겪게 된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를 새겨듣지 못하는 강자와 부자는 복음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 교회의 잘난 사람들부터 겸손해지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나저나 두 아들은 병역의무를 다했는데 아비는 아무런 자리 욕심이 없으니 그 값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묵묵히 자신들의 의무를 다한 아들들이 고맙다. ‘아빠 카드’로 병역의무 내뺀 친구들 부러웠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잘 다녀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녀석들이 대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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