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까요] 헌재의 낙태 합법화 판결의 문제점과 가톨릭교회의 입장 (1) 박정우 후고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형법상의 ‘자기낙태죄’(형법 269조 1항)와 ‘의사낙태죄’(형법 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형법의 ‘자기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의사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를 시술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낙태죄 위헌 여부는 지난 2012년 8월에도 헌재에서 심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재판관 8명의 의견이 4대 4로 갈리면서 낙태죄가 합헌으로 유지됐으나, 7년 후인 이번에는 재판관 2명은 ‘합헌’, 3명은 ‘단순위헌’, 4명은 ‘헌법불합치’로 의견을 냄으로써 최종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것입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고자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헌재의 결정을 말합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형법의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성이 있지만,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헌재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개선된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1일부터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후 형법 개정과 관련된 정부와 국회의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다가 2020년 10월7일 헌재가 정한 시한을 불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 되어서야 법무부는 임신 14주까지 전면 낙태 허용, 임신 24주까지는 상담을 전제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허용’을 골자로 하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사회경제적 사유’란 돈이 없어서, 미혼이라서, 혹은 직장생활에 방해가 되어서 등과 같은 이유를 말합니다. 현재 모자보건법은 강간이나 근친상간, 유전병, 전염병, 산모의 건강 등을 이유로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한편 작년 11월 말까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자는 권인숙 의원 법안부터, 낙태의 허용범위를 임신 10주 이내로 제한하자는 조해진 의원 법안까지 총 6개의 낙태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데, 국회는 결국 헌재가 정한 시한을 넘기고 법안 논의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2021년 1월1일부터 형법의 낙태죄 처벌조항의 효력이 상실됨에 따라, 현행 모자보건법상 허용하지 않는 24주 이상 태아에 대한 낙태나, 사회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행하는 낙태에 대해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태아의 생명권이 근원적 가치이자 권리임을 지적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입법 공백을 초래하여 현재 법적으로 태아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국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태아의 어느 발달 단계에서의 낙태도 반대하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일정 기간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의 입법 활동을 촉구하는 것도 모순일 수밖에 없기에, 이 문제를 대처하는데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물론 최소한 낙태죄를 유지하고 낙태의 한계를 정하면, 적어도 22주 내외 이상의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입법 활동을 촉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형법의 처벌조항은 태아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로서, 또 최소한의 윤리적인 원칙을 선언하는 의미에서도 반드시 개정 법률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 일정 기간 낙태를 합법화해버린 2019년 4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자체가 법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재는 이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동등하게 조화를 이루기 위한 판결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태아의 생명권을 회복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박탈해 버린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2017년 12월부터 헌재의 낙태죄 위헌 결정을 앞두고 ‘낙태죄 폐지반대를 위한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태아의 생명권이 근원적인 가치이자 권리임을 지적해 왔습니다. 2018년 3월22일 천주교 주교회의는 헌재에 서명지를 전달하며 발표한 탄원서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생명의 시점을 늦추려고 하는 시도가 있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 존재의 시작은 당연히 유전자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라는 것을 생물학적, 발생학적, 철학적, 신학적 근거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권은 한 인간 생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생명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등이 인간답게 살 소중한 권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들이 생명권과 충돌된다면 당연히 생명권이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 2012년 낙태죄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현행 낙태죄가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판결문에서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임부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판단이었습니다.”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행사의 기본적인 조건
이러한 교회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2019년 4월 헌재는 현행 형법상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여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임신 14주까지는 낙태 전면 허용, 그 이후는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태아의 독자생존이 가능한 22주 내외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새로 만들라고 주문하였습니다. 2020년 10월7일 법무부가 제출한 형법 개정안도 헌재의 결정과 주문에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와 같은 헌재 결정에 대한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반박 논증은 전체 재판관 중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두 명의 재판관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소수의견은 다음 호에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헌재의 결정을 마냥 무시할 수 없기에 국회는 머지않아 낙태를 일정 기간 허용하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교회는 신자들에게 먼저 양심에 따라 낙태 대신 출산 선택하라고 호소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되기에, 낙태는 시기를 불문하고 무고한 인간 생명을 고의로 죽이는 행위이므로 사회가 용인해서는 안 되는 부도덕한 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자연법과 교회법, 그리고 양심에 따라, 낙태라는 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출산과 태아 보호라는 생명의 문화를 선택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간 생명은 그 자체로 다른 어떠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존엄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행사의 기본적인 조건이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판결은 언젠가 재판관 구성과 사회의 도덕적 인식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 있는 판결입니다. 계속해서 이 지면을 통해서 헌재의 각종 판례에서 밝힌 태아의 생명권, 2019년 헌재 판결에서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두 헌법재판관의 소수의견,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2019년 헌재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낙태 합법화 시대에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생명 운동의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4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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