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8)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하> 빛나는 왕관 쓰고 예수님과 나란히 왕좌에 앉으신 성모님 가톨릭평화신문 2021.04.25 발행 [1610호]
최초의 성모대관 도상
로마의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성당 내부의 중앙 앱스(apse, 반원형 내부 공간)인데, 이 앱스 중앙에는 ‘성모대관(聖母戴冠)’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최초의 성모대관이라는 도상의 출발점이 어디냐는 논쟁은 20세기에 와서 본격화된다. 논쟁은 197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 학자들의 충돌로 시작되지만, 여기에 영국 학자들이 개입해 자신들이 처음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성당은 더욱 유명해졌다. 마지막에는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성모대관 도상이 최초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의견이 모아졌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왕관을 씌워 장식하는 관습은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동·서방 교회 모든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은 주님의 영화로우신 어머니를 묘사하기 위하여 여왕의 표지를 두르고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왕좌에 앉은 모습으로 그렸다. 그 성화상들 가운데에는 어머니께 빛나는 왕관을 씌워 드리는 거룩하신 구원자가 그려진 것도 드물지 않다.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화상 대관 예식’으로 성모 마리아를 합당하게 모후로 고백하고, 동정녀는 마땅히 ‘천주 성자의 어머니요 메시아 임금의 어머니’, ‘구세주의 존귀하신 동반자’,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자’, ‘교회 지체들의 으뜸’으로 불린다.
3랑식 구조의 성당 내부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3랑식 구조로 총 22개의 이오니아식 기둥들로 공간들이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사용된 기둥들은 고대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浴場) 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공간을 살피고 고개를 들어 성당의 천장을 보자. 일명 도메니키노(작은 도메니코)라 불리는 도메니코 잠피에리(Domenico Zampieri, 1581~1641)가 1617년에 장식한 격자무늬 천장은 아직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나뭇조각에 금박을 입혀 장식했으며, 그 중앙에 성모 승천을 그렸다. 이 성당의 바닥은 중세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13세기의 코스마테스크(기하학적 장식의 석조 조각) 스타일로 장식된 것이다.
대성당 중앙 앱스의 작품
이 대성당의 중앙 앱스는 총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상단에는 12세기 모자이크, 중간에는 피에트로 카발리니(Pietro Cavallini, 1240~1330)의 13세기 모자이크, 하단에는 아고스티노 참펠리의 16세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모자이크는 단연 12세기의 모자이크다. 이 모자이크는 1140~1143년 인노첸시오 2세 교황(재위 1130~1143)이 주문한 것이다. 먼저 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어깨를 감싸고 있고, 한 손에는 ‘VENI ELECTA MEA ET PONAM IN TE THRONUM MEUM(오라, 내가 택한 자여, 내가 너를 나의 옥좌에 앉게 하리라)’라고 적혀있는 책을 한 권 들고 있다. 나란히 앉은 성모님은 양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LAEVA EIVS SVB CAPITE MEO ET DEXTERA ILLIVS AMPLEXABITVR ME(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답니다- 아가 2,6)’라고 쓰여 있다. 이는 12세기부터 아가서의 필사본이 유행했는데 이곳의 앱스도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앱스의 좌측에도 이와 연관된 모자이크화가 있는데 예언자 이사야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ECCE VIRGO CONCIPIET ET PARIET FILIUM(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사 7,14)’이라는 구절이 쓰여 있고, 우측 예언자 예레미아의 두루마리에 ‘CHRISTVS DOMINVS CAPTVS EST IN PECCATIS NOSTRIS(기름 부음 받은 이, 주님은 우리 죄에 붙잡혀 있네)’라는 내용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는 저들의 구덩이에 붙잡혀 있다네(애가 4,20)”라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또 예레미아의 두루마리 윗부분에는 새가 갇혀있는 새장이 보이는데 이것은 ‘붙잡혀 있네’ 구절의 상징이다.
황후의 의상을 입은 성모님
이 도상이 특이한 점은 성모님의 의상이 약 100여 년 뒤에 제작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앱스에 나타난 튜닉을 입고 있는 성모님의 의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성모님의 의상은 비잔틴 황후의 모습으로 표현되 어 있다. 이 모든 모자이크화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 앱스에서의 성모님 모습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며, 다시 그 아들인 예수의 선택으로 천상 모후의 관을 쓰셨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최초의 성모대관 도상은 성모님의 일생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앙에 성모대관 중심으로 성모님 왼편으로는 인노첸시오 2세 교황, 성 라우렌시오, 성 갈리스토 1세 교황이 자리하고 있고, 예수님 오른편에는 사도 베드로, 성 고르넬리오 교황, 성 율리오 1세 교황과 성 칼레포디오가 보좌하고 있다. 이 앱스 하단 부분에서 또 한 번의 모자이크화의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성모님의 탄생, 주님 탄생 예고, 주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성모 승천 등의 내용으로 피에트로 카발리니가 1290~1291년에 제작한 모자이크화다. 그의 작품은 150여 년 전에 제작된 앞서 언급했던 앱스 부분의 모자이크화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앱스부분의 모자이크가 비잔틴의 전통 도상을 따랐다면 카발리니의 작품들은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 즉 르네상스의 태동을 알리는 새로운 시도들을 느끼게 해준다. 공간감은 살아나고 인물들의 사실적인 묘사와 직선보다는 곡선의 사용 등이 그렇다.
놓치지 말자 ‘자비의 성모 마리아 소성당’ 이콘화
이 성당을 순례할 때 절대 지나치면 안 되는 곳은 ‘자비의 성모 마리아 소성당’이다. 이곳은 ‘알템스 경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소성당 조성을 의뢰한 알템스 독일인 추기경의 이름에서 기인한다. 그는 1580년~1595년까지 이 성당의 추기경이었고, 그의 의뢰로 1587년에 완공된 소성당이다. 이 경당에는 로마에서 유명한 6세기 성모님 이콘화가 있다. 이콘화를 자세히 보면 성모님의 모습은 비잔틴 시대 도상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반면, 성모님 양쪽에 위치한 천사들은 고대 로마의 사실적인 묘사로 고대 로마의 고전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동방의 비잔틴 이콘화의 전통이 로마에 와서 로마의 전통과 결합된 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로마에 현존하는 6세기경의 이콘화들은 많지 않다. 쉽게 볼 수 있는 이콘화가 아니니 이 성당을 순례할 때 놓치지 말고 찾아보자.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
'<가톨릭 관련> > ◆ 가톨릭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의 향기 with CaFF] (111) 힐빌리의 노래 (0) | 2021.04.29 |
---|---|
[영화 칼럼] ‘미나리’ - 2020년 감독 리 아이작 정(정이삭) (0) | 2021.04.28 |
[성가의 참맛] 가톨릭성가 136번 ? 예수 부활하셨도다 (0) | 2021.04.27 |
[박노해 사진 에세이 길] 혼자 남은 할머니가 (0) | 2021.04.27 |
[시사진단]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대로 해결하라 (0) | 2021.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