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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월 평화칼럼] 바보처럼 사는 당신이 고맙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5. 15.

[김승월 평화칼럼] 바보처럼 사는 당신이 고맙다

김승월 프란치스코(시그니스서울/코리아 회장)

가톨릭평화신문 2021.05.16 발행 [1613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30년 전에 나온 해묵은 노래지만 어제 들은 듯 익숙하다. 가수 김도향이 묵직한 음색으로 맛을 살려낸 멜로디도 괜찮지만, 마음을 짚어낸 노랫말이 잊히지 않는다. 남보다 뒤처진 내 모습을 볼 때, 지워버리고 싶은 실수가 떠오를 때면 생각나기도 한다. “흘러 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을 때 ‘영끌’ 해서 집 한 채 장만한 사람들이 돋보였다. 정부 말만 믿고 따랐다가 기회를 놓친 분들은 스스로 바보라고 자책하진 않았을까. LH 사태가 터지고 고위 공직자들의 투기 사례가 하나둘 벗겨지고 있다. 자리를 이용해 이득을 취한 이들의 영악함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목돈을 움켜쥔 그들 눈에는 세상이 저 아래로 보이고, 손 놓고 있던 사람들이 다 바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손 놓고 당한 사람 역시 벼락 거지 된 기분으로 지난 세월을 후회했을 수 있다.

 

투기 광풍이 몰아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분들이 많다. 세칭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 묵묵히 올곧게 살아온 분들도 적지 않다. LH 사태 전까지 만해도, 왜 이리 바보처럼 사느냐고 답답해 하는 소리 좀 들었을 거다. 벌어진 자산 격차를 두고 씁쓰레했을 수 있었겠지만, 손가락질받는 저들과 비교하면서 위안받았을지 모르겠다.

 

지난 보궐 선거에서 일부 정치인들과 후보들이 했던 빈말들이 귀를 의심하게 했다. 눈앞의 표 계산에 별것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유권자를 바보로 얕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뻔한 거짓말이다. 당장은 뜻한 바를 이루어, ‘신의 한 수’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드러나는 뒤탈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려고 그랬을까.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생각해보았을까?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로마 1,22)

 

코앞의 이익에 급급해 약삭빠른 짓을 해대는 이들은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 바보다.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바보들이 바보라고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바보 같아 보인다. 스스로 바보라고 여기고 바보의 길을 간다.

 

“늘 배고픈 듯, 바보인 듯, 끊임없이 추구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애플 창업자의 한 사람인 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졸업생들에게 강조한 정신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사람처럼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제품을 계속 만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우직하게 살았다. 혁명적으로 인류의 삶을 뒤바꾼 미디어, 스마트폰은 그렇게 산 사람 덕분에 세상에 태어났다.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 ‘바보’라 했다. 그분의 뜻을 이어가는 재단 이름은 ‘바보의나눔’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자세를 깨우치게 한다. 바보는 내 것을 내어주거나 빼앗긴다. 남의 약삭빠른 재주를 보면 눈 돌린다. 남의 실수는 알아채지 못하거나 눈감아 준다.

 

영악한 사람만이 넘치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살까. 눈 뜨고 코 베일까 두렵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살 만한 것은 바보스럽게 원칙을 지키며, 제 자리에서 제 할 일 하는 분들 덕분 아닐까. 바보 소리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도리어 못나 보인다. 바보처럼 사는 당신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