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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의 병적 징후] 편의성에 감춰진 위협, 개인건강정보 유출

by 파스칼바이런 2021. 5. 29.

[정형준의 병적 징후] 편의성에 감춰진 위협, 개인건강정보 유출

정형준 토마스 아퀴나스(재활의학과 전문의)

가톨릭평화신문 2021.05.30 발행 [1615호]

 

 

 

 

개인정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수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우선 국민등록체계(주민등록번호)하에서 금융거래부터 휴대폰 개통까지 연계되어 있고, 편의성을 위해 정보제공동의서에 쉽게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다 수차례 수천만 명의 개인 로그인 정보들이 유출되었지만, 기업이 받은 처벌수준이 낮고, 가족 친지를 언급하는 보이스피싱을 경험하면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다.

 

편의성을 앞세워 구글 등 검색 서비스나 각종 소셜미디어 등은 가입자의 조회 정보, 위치 정보 등을 받으며 데이터채굴로 큰돈을 벌고 있다. 전방위 데이터수집이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다 못해 이제는 이런 것들을 집적해서 연결해 더 큰 사업거리로 만들려 한다. 다름 아닌 ‘빅데이터’ 사업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정보축적은 광고시장에 내 정보가 팔려나간 수준이지만, 개인건강정보는 강도가 다르다. 검색엔진이 축적한 정보로 맞춤형 광고와 뉴스를 띄어주는 수준이라면, 건강정보는 직접적인 의료 이용, 보험가입, 개인 식별화 등에 직접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구글, 애플 등 IT 선도 기업들도 건강정보수집에 혈안이 되어 각종 생체정보와 건강정보를 모을 수 있는 앱 등의 플랫폼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우선 빅데이터 산업으로 포장된 데이터 댐 사업과 이미 통과된 데이터 3법으로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들이 비식별화되면 민간기업으로 팔려나가게 허용된다. 아마도 이들 정보는 민간보험사에 제공되고, 이 정보로 보험사는 보험상품의 손해율을 줄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정보가 휴대폰 사용 내역, 위치정보, 금융정보와 결합되면 생길 부작용에 대해서는 낮은 처벌수준으로 보완하려 한다.

 

거기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월권으로 허용한 정책을 보면, 보험회사는 데이터사업체를 자회사로 가질 수 있고, ‘건강관리서비스’라는 포장으로 개개인의 건강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업모델도 국회 입법이 아니라 금융위 허가사항으로 편법 허용한다. 거기다 병·의원의 개인건강정보도 실손보험 청구자료 전산전송화 법안 개정을 통해 손쉽게 수집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무차별적 건강정보수집 및 집적화를 산업계와 전문가, 언론은 국민 편의성 증가로 지지해왔다. 물론 실손보험 청구가 편해지고, 합병증이 없는 사람들은 민간보험료가 인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편리함에 비해 집적화된 건강정보로 생길 부작용은 매우 크다. 근거 없는 건강기능식품과 약품 구매 광고가 범람하고, 추가로 건강상품화가 가속화되는 게 시작이다. 이후로 보험 가입 거절, 보험금지급 변경이 다음 단계라면 최종 단계는 채용, 결혼, 인사제도 등 전방위에 건강정보가 적용될 것이다. 끝으로 정보량이 많아지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배제될 것이다.

 

건강정보들을 축적하면 맞춤형 의료가 제공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심전도 판독 같은 수준에서도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진실은 쓰디쓰다. 이는 건강정보수집으로 인한 당장의 이익이 기업들의 돈벌이 사업에만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각종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유출되어도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통용되는 시대다. 하지만 질환 내용, 투약내용, 가족력, 임신횟수 등이 포함된 건강정보만큼은 그렇지 않다. 부디 빅데이터, 데이터 댐, 정밀의료 같은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아니라 ‘개인건강정보유출’이라는 위험성이 더 강조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경고를 하면 할수록 데이터채굴산업의 일탈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